무신. 오랜만에 사극 같은 사극을 보는 듯해(물론 더 지켜보아야겠죠. 광개토태왕도 처음엔 그랬지만 엉터리사극이 됐습니다) 매우 흐뭇합니다. 주인공 김준은 노예 출신입니다. 최충헌의 가노였던 김준의 아버지는 아마도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김준은 핏덩이 때 절에 맡겨져 수법스님의 손에 자랐습니다.
김준은 절에서 행복했습니다. 그곳은 속세에서 벗어난 무릉도원 같은 곳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그저 고요하고 평화로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곳에는 사랑하는 월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은 오누이처럼 자랐지만 그들의 가슴속엔 오누이 이상의 감정이 싹텄습니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최향의 군대가 들이닥친 것입니다. 고려의 정예군은 마치 점령군처럼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오, 세상에.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습니다. 고려군이 아니라 마치 거란군이나 일본군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김준(절에서는 무상스님이라 불렀음)과 월아는 고려군에 끌려갔습니다. 김준은 모진 고문을 받고 처형될 위기에서 최우의 딸 송이의 도움을 받아 죽음만은 면한 채 노역장으로 끌려갑니다. 월아 역시 최우 집안의 가노가 됐습니다.
▲ 격구. 알고보니 사람 죽이는 경기.
김준이 이 격구경기에 자원했습니다. 경기장 가운데에 공을 놓아두고 이 공을 먼저 상대편의 골대에 집어넣으면 이기는 격구는 그러나 말이 경기이지 두 팀으로 나뉜 전사들이 상대편을 모두 죽여야만 이길 수 있는 전쟁터보다 더 지독한 죽음의 시합입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말을 탄 선수들이 노리는 것은 공이 아니라 상대편 선수들입니다. 장대를 높이 들어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선수의 목과 가슴과 머리를 향해 일격을 가합니다. 내가 먼저 적을 치지 않으면 내가 죽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나마 자원한 자들로만 격구경기가 치러진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검투사들처럼 자의와는 상관없이 목숨을 내놓고 경기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원자들로만 격구팀이 구성됩니다. 경기에서 살아남아 한 가지 소원을 얻기 위해 자원하는 노예들.
김준이 격구대회에 나선 이유도 한 가지 소원을 얻기 위해섭니다. 무슨 소원? 바로 월아를 다시 수법스님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함입니다. 그와 더불어 노예로서의 삶이 아니라 자존감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고 싶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송이의 어머니가 월아를 기억하고 월아의 어머니와 막역한 사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오호 통제라! 김준의 이 눈물겨운 구원행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던져 구원하고자 하는 월아가 노예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어엿한 사대부가의 여식이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당대 최고권력자 최우의 부인과 절친한 가문의 딸.
이럴 수가. 무신에도 출생의 비밀이 끼어들고 말았습니다. 김준과 월아, 송이의 삼각관계가 만들어진다면 고려 최씨 무신정권의 고명딸과 노비가 벌이는 연적관계가 참 볼 만하겠다 생각했는데, 김준이 상대할 것으로 보이는 두 여인이 모두 양반가의 여식들입니다(하긴 뭐 김준 자신도 무상스님이 아니라 노예 김준으로 밝혀져 초장부터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 월아, 김준, 송이
무신 다음 시간대에 배치된 신들의 만찬에도 역시 이 출생의 비밀은 등장합니다. ‘실제역사가 스포일러로 작용해 흥미들 돋우고 있는’ 빛과 그림자에도 이 출생의 비밀이 등장했습니다. 카이사르의 말을 한번 흉내 내볼까요? “빛과 그림자, 너마저도!”
아마도 월아를 최우 부인의 곁에 두어 장차 김준을 두고 송이와 경쟁관계를 만들려는 의도로 보이긴 합니다만 출생의 비밀 같은 거 말고 뭔가 다른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없을까요? 노예 출신인 김준이 노비가 아닌 양반귀족출신 여자들과 엮여야만 멋있어지는 걸까요?
월아의 처지에서는 자신의 출신성분이 사대부귀족이 아니라 김준과 마찬가지로 노비였다면 김준의 바람대로 수법스님 곁으로 돌아가 편안한 여생을 마칠 수 있었을 것을…… 안타깝게 됐습니다. 왜 애꿎은 나를 사대부가의 딸로 만들어 피곤하게 하는 거야, 나 그냥 노비 할래!
아무튼 250억대의 대규모 자금이 투입됐다는 대작 무신도 출생의 비밀은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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