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그러면 그렇지. 진시황은 실명한 것이 아니었다. 자작극이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아니 아무리 그렇기로 천하의 천하그룹 회장 진시황이 갑자기 실명을 하다니. 뭔가 석연찮은 점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진실이 드러났다. 아, 물론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다. 다만 두 가지 정도로 카메라가 진시황이 자작극을 펼치고 있다는 암시를 주었을 뿐이다. 하나는, 임시주주총회에서 직접 컵에 물을 따르는 장면.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완벽하게 해냈다.
그 장면이 나오는 순간, 나는 진시황의 자작극을 보여주려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물론 아직 극중 인물들은 모른다. 브라운관 밖의 우리만 알 뿐이다. 그러나 이때도 진시황은 비서실장인 모실장에게 “어제 여치(손녀딸)와 연습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다른 또 하나는, 여치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일순간 선글라스를 벗은 진시황이 여치의 어깨 부근에 묻은 자그마한 티끌 하나를 집어낸다. 예사롭게 보아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티끌이었다. 여치조차도 눈치 채지 못했다. 맙소사!
진시황은 최측근 모실장조차도 따돌리고 여치와 함께 유방을 만나러가는 길이었다. 진시황이 유방에게 큰손이 되어주려는 것. 자, 아무튼, 천하에 부러울 것 없는 천하그룹 회장 진시황이 왜,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했을까?
사람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니 돈이 많기 때문에 사람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최항우, 박범증, 심지어 자신의 비서실장조차도 자신을 속인다. 그리고 예측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의심은 맞아떨어졌다.
아마도 조만간, 모실장부터 작살이 나겠지. 지금 그녀는 눈이 먼 진시황을 속이고 회사를 가로챌 생각에 행복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진시황이 자리를 비운 사이, 회장 의자에 앉아 한껏 공상에 심장이 부푼다.
최항우, 박범증, 소하 등 거의 모든 중역들이 작살이 나겠지만 유방의 적수 항우와 그의 측근들이 미리부터 작살이 나면 드라마가 진행될 수 없으므로 이들은 대충 위기를 넘기는 방식으로 살아남겠지. 어쨌거나 진시황은 실명을 한 덕에(비록 자작극이라도) 유방을 얻는다.
아직 진시황이 유방을 확실히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얻을 게 틀림없다. 눈을 감고 잠시 관망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보다 탁월한 인재라고 생각했던 항우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기묘한 매력이 유방에게서 느껴진다.
대체 유방에게서 느껴지는 매력이란 무엇일까? 사람, 바로 사람냄새다. 유방에게선 항우에게선 맡을 수 없는 사람냄새가 난다. 유방은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없으면 기술도, 제품도 있을 수 없고 필요도 없다. 그저 사람만이 희망이다.
진시황은 비록 자작극이긴 했지만 실명을 함으로써 진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진짜 알맹이가 무엇인지 찾아냈다. 뭐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오유방은 진시황의 후계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진시황의 유일한 혈족인 외손녀 백여치와 결혼도 하겠지.
너무나 빤한 이런 스토리는 그러나 우리에게 극적 긴장감과 재미를 준다. 장량, 소하, 한신, 범증, 번쾌 등 초한지의 인물들이 주군을 찾아 편성되는 과정도 재미있다. 장량과 범증이 각각 자기 주군을 찾아 정리된 거 같고 한신도 항우를 떠나 유방에게 붙었다. 아직 차우희가 좀 헷갈리지만.
아무튼 이드라마 나름 의미가 있는 드라마다. 유방은 이렇게 외친다.
“함부로 해고시키지 마라. 회사 너 혼자 키운 거 아니다. 그리고 번만큼 나누어 가져라. 돈 너 혼자 번 거 아니다. 사람보다 중요한 거 없다. 기술? 그거 개발하면 된다. 제품? 그거 만들면 된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사람, 바로 사람이다.”
시력을 잃은 폭군 진시황은 마음의 눈으로......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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