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이 있습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두 개의 명제가 그다지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보수는 늘 부패했지만, 그렇다고 보수가 망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바는 없습니다.
진보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흥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분열로 망한다’는 예정론이 그저 허망하기만 할 뿐입니다. 물론 흥하기 위해선 ‘닥치고 단결’ 해야 한다는 깊은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선 더 많이 분열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저로선 ‘대략 난감’입니다.
게다가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 보수도 분열하고 진보도 부패하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는 바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그러면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보수는 누구이고 진보는 또 누구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보수는 밀본이며 진보는 이도를 중심으로 한 왕당파입니다.
▲ 밀본의 수령인 본원 정기준에 맞서 재상총재제의 체계를 강조하는 심종수. 그러나 그의 속셈은?
사실 이러한 규정은 어폐가 있습니다. 정치사상적인 차원에서 밀본이 대의로 내세우는 재상총재제를 공화정으로 본다면(물론 이는 사대부들만을 시민으로 본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진보적인 것이며 이도 등 왕당파가 밀실에서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방법이야말로 아주 보수적인 것입니다.
아무튼 체계에 관한 문제는 따지지 않기로 하고 양쪽의 한글창제에 대한 태도만을 놓고 보자면 분명 밀본은 보수파를 넘어 수구세력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자, 그런데 보수파 밀본이 분열하고 있습니다. 진보파인 왕당파는 더욱 더 단결이 강화되고 있는데 말입니다.
밀본은 왜 분열하고 있는 것일까요? 분열은 진보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왔는데 오히려 보수파가 분열하고 있다니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밀본이 분열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밀본의 구성원들이 이른바 재상총재제를 중심으로 굳게 단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 재상총재제란 것이 안정된 정치시스템으로 민생을 안정시킨다는 대의보다는 사대부 귀족들이 권력을 나누어가질 수 있다는 매력에 더 이끌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죠.
실제로 우의정 이신적이나 직제학 심종수를 보면 그런 생각은 확고해집니다. 이들은 동상이몽을 하고 있습니다. 이신적은 늙은이답게 현재의 자리에 만족하며 나락으로 떨어져 기득권을 잃는 일이 없기만을 바랍니다. 젊은 심종수는 밀본의 수장이 되어 권력을 쥐고 싶습니다.
늙었거나 젊었거나 이들의 목표는 한가지입니다. 권력욕. 기득권을 놓치지 않거나 쟁취하는 것. 바로 보수파의 전형인 부패한 모습 그대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밀본을 통해 우리는 ‘보수파가 부패를 통해 분열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정리해서 다시 말씀드리자면, 보수파에게 대의는 기득권이며 이를 통해 얻게 되는 부패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들의 대의인 기득권과 부패로 인해 분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서 말한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명제는 바꿔야할 것 같습니다.
‘부패로 망하는 것도 보수고, 분열로 망하는 것도 보수다!’
그럼 ‘분열로 계속 망하고 있는 진보’는 뭐냐고요? 제가 보기에 진보는 분열한 적이 없습니다. 제대로 단결해본 바가 없는데 어떻게 분열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 제대로 된 단결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대의, 곧 이념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것이죠.
한글창제를 중심으로 굳게 단결한 왕당파는 진보의 단결이야말로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글창제가 단순한 하나의 사안인 것 같지만 이 속에는 만민평등이라는 거대한 대의가 숨어있는 것입니다. 왕당파들은 이 대의에 동의하고 단결한 것입니다.
그럼 오늘날 진보는? 대의가 무엇인지 정립한 바가 없으니 단결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대의는 한가지일 수가 없겠죠. 세상엔 수많은 대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에서 좀 엉뚱하긴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더 많이 분열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다양한 대의를 중심으로 단결한 다양한 세력이 출현하는 것, 다원주의, 그것이 곧 민주주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북쪽에는 붉은색만이 존재하고 남쪽에는 흑과 백만이 존재합니다. 그 외의 색깔은 이단으로 취급하며 찍어 누릅니다.
자, 그건 그렇고 밀본이 분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미 말씀드렸듯이 그들의 대의란 것이 고작 기득권의 유지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의가 갈 길은 부패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 구성원들의 개인적 기득권이 침해받게 된다면?
바로 분열하는 것이죠. 그들이 가진 대의란 조직보다는 개인적 이익이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런 분열을 막기 위해 쓴 고육책이 바로 밀본지서에 첨부한 연서명(일종의 창당발기인 명부)입니다. 이탈을 막기 위한 일종의 협박문서인 셈입니다.
▲ 이신적에게 정기준을 넘기고 밀본 붕당의 수장으로 편하게 살아보라며 회유하는 이도.
그러나 이런 협박문서가 그 효력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 휴지조각이 되는 거죠. 이도의 전략이 바로 그겁니다. 밀본지서에 붙은 연서명지를 휴지로 만들어버리는 것. 세종 이도는 밀본원이 양지로 나오면 붕당으로 인정하겠다고 공표합니다.
이도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밀본의 대의란 것이 사실은 사대부들의 기득권을 향한 욕망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 기득권은 부패를 향해 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 이들의 욕망에 살짝만 금을 그어도 곧바로 분열로 연결된다는 것.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은 어떻습니까? 제 보기엔 21세기 대한민국에도 밀본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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