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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섹시하다의 북한말은 '박음직스럽다'?

엊그제 우리 동네의 어느 선배와 차를 함께 타고 가다 뜬금없는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야, 너, 섹시하다를 북한말로 뭐라 그러는지 아냐?”
“잘 모르겠는데요. 뭔데요?”
“박음직스럽다.”
“네?”
“‘박음직스럽다’라니까.”
“헉~ 먹음직스럽다도 아니고 박음직스럽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잠이 깨 심심하던 차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섹시하다의 북한말’, 그랬더니 정말로 그렇다는 이야기들이 뜨는군요.

‘박음직스럽다.’

이거 정말일까요? 이럴 때 이런 말이 생각나는군요.

“직접 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 이런 경우에 "○○직스럽다"라고 해야 되나요?

언제 서울 갈 기회 있으면, 동대문 근처 어느 식당에서 일하는 한 탈북여성을 아는데 그분께 가서 한번 물어볼까요? 실례일까요? 거기 단골인 서울에 사는 한 선배와 함께 그 집에 갔다가 “남한에 오니 북한 살 때 비해 살기가 어떤가요?”하고 물어보았다가 선배에게 혼났답니다.

“얌마, 너는 안 그래도 고향 떠나 마음 괴로운 사람한테 그 무슨 질문이고? 오죽했으면 이까지 내려왔겠나? 앞으로는 북한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 큰 실례고 아주 싸가지 없는 짓이다.”

아무튼 우리말과 북한말, 많은 차이가 있군요. 한 동영상-동영상이 어느 방송 프로인지는 모르겠음-에서 제가 하나하나 발췌한 건데요, 어떻게 다른지 잠깐 한번 보실까요?

괜찮다=일없다, 비스킷=바삭과자, 빨래=날래, 삿대질=손가락총질, 소프라노=녀성고음, 썬텐=햇빛쪼이기, 파마머리=볶음머리, 수중발레=예술헤엄, 투피스=나뉜옷, 미니스커트=양복치마, 도시락=곽밥, 채소=남새, 피망=사자고추, 수화=손가락말, 지문=손가락무늬, 비밀번호=통과암호, 경찰=안전원, 헬리곱터=직승기, 병사=전사, 군인가족=후방가족

북한에선 남편을 세대주라 부른다는 얘기를 어떤 방송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 말은 안 보이네요. 만약 남편이 세대주라면 아내는 세대원인가요? 하하, 아무튼 우리 입장에서는 참 재미있는 말입니다.

남한의 언어사용이 무분별한 사대주의에 경도된 문제점이 있다면 북한의 언어사용은 지나치리만치 주체적이라 불편한 점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언젠가 서평블로그 ‘로자의 저공비행’으로 유명한 이현우 씨가 쓴 <책을 읽을 자유>에서 읽은 말입니다.

“오늘날 (남한의) 사대주의적 태도는 중화주의에 물들어 세종의 한글창제를 극력으로 만류했던 당시 대신들의 태도를 떠올리게 하므로 뿌리가 깊다. 알다시피 그렇게 중국을 숭배하다가 일제 때엔 일본에 고개를 숙이고, 해방 후엔 코쟁이들의 말과 문화에 사족을 못 쓴 것이 우리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한국의 번역 실태에 대해 비판하기 위해 했던 이 말은 제게도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실은 저도 오랫동안 우리나라 사람이 번역한 책들에서-심지어 직접 쓴 책들조차도-서양식 언어습관을 보았던 것이고 그 습관이 제게도 깊이 배었음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현우 씨 말처럼 “‘굉장히 바쁜데도 일부러 와주었다’라고 옮기면 훨씬 더 한국어다운 아름다운 표현이 될 터인데도 굳이 ‘굉장히 바쁨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와주었다’라고 직역하는 습관”이 “접속사가 발달한 영어에 비해 어미가 발달한 한국어”를 왜곡시킨 것은 아닐까요?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고장의 유명한 시인 이원수가 쓴 시 중에 <고향의 봄>입니다. 이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로 짐작이 됩니다만, 이 노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가사가 이렇게 나가지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최근 창원시가 이원수 기념관을 혈세를 들여 짓고자 하다가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 바가 있는데요. 이원수가 친일파라는 이유 때문이었죠. 하지만 박완수 창원시장은 이원수가 친일파인 것이 무슨 사소한 문제라도 되느냐며 강행의지가 확고한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원수가 친일파여서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첫 구절 ‘나의 살던 고향은’은 우리말 표현이 아니라 일본식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일본말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 ‘내가 가보지 못한 금강산’도 모두 ‘와다시가’가 아니라 ‘와다시노’로 시작합니다.

일본말에 우리말의 ‘~의’에 해당하는 이 ‘노’가 빠져서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이원수가 왜 “내가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라 하지 않고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라고 했는지에 대해선 모르니 더 할 말이 없지만, 아무튼 잘못된 것은 분명합니다.

뜻있는 사람들은 온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노래가사를 아래처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합니다만, 그렇다고 남의 저작물에 함부로 손대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내가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섹시하다의 북한말이 무언지 얘기하다가 너무 멀리 오긴 했는데요.

우리말의 소중함을 알고 지켜야 한다는 데 대해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위에 든 예처럼 말의 앞자락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같은 말을 써야만 뭔가 유식하기도 하고 강조하기도 쉬웠지만 요즘은 세태가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우리말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 훨씬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쓴다는 평가를 받는 시대가 된 것이지요. 물론 아직도 영어가 ‘중화주의에 물든 사대주의적 태도’에 찌든 왕년의 귀족 사대부들을 대체한 사람들에겐 대세이긴 합니다만 곧 극복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이른바 주체적 언어사용은 매우 눈물겨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억지스럽게 만들어낸 우리말이 매우 불편하다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네요. 예를 들면 세대주도 그렇고 예술헤엄도 그렇습니다.

특히 박음직스럽다가 그렇습니다. 그냥 섹시하다라고 하는 게 훨씬 더 좋게 보이는데요. 굳이 그걸 박음직스럽다라고 새로운 말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말의 원형을 잘 살리면서도 외래어나 외국어를 적절하게 잘 활용해서 우리말로 만드는 것도 좋은 일 아닐까 싶어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남한의 사대주의도 문제지만 북한의 주체주의도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무조건 우리 것만 고집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섹시하다, 물론 북한 입장에선 미제의 말인데다 특히 퇴폐적인 자본주의 냄새가 나는 용어라 그냥 갖다 쓰기 불편한 점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박음직스럽다’가 좋은 말일까요? 에혀~ 이런 말을 어떻게 그렇게 아무 거리낌 없이 쓸 수 있을지, 아니 어쩌면, 제가 성교육을 안 받은 세대가 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요. 별 거 아닌 걸 가지고 터부가 너무 많은 건 아닌지…. 암튼^^ 여러분, 새해 복 MONEY 받으세요.

그리고 혹시 이 글에도 곳곳에 숨어있을지 모를 일본식, 영어식 표현에 대해서도 널리 용서를 구하는 바입니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