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이야기 /이런저런이야기

블로그 글쓰기에 대한 짧은 소견

가끔 블로거들끼리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가질 때면 듣는 말이 있습니다. “파비님은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시나요? 술술 읽히는 게 보통 실력이 아닌 거 같아요.” 심지어 글쓰기가 밥벌이인 어떤 분은 “황구라보다 더한 구라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 뿌듯하기도 합니다. 내 맘속은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는 글을 잘 쓴다는 칭찬에 대한 긍정이요, 다른 하나는 그렇게 칭찬받을 정도는 아니라는데 대한 불안감입니다.

사실, 블로그를 하기 전에는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여태껏 글쓰기에 대한 정규적인 교육을 받아본 바가 없습니다. 중학교 때 ‘작문’ 과목이 있었던 기억이 나지만 제대로 배우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연합고사’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과목(국어의 부속과목이었던 듯)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지금처럼 대학입시에 논술이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지만 ‘작문’ 시간은 피곤한 선생과 학생이 함께 쉬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기계공고는 일반 공고와도 달라 수업시수의 절반이 실습(공장에서 쇠를 깎아 공작물을 만드는 훈련)이었으며 이론수업의 절반이 또 전기일반이니 재료역학이니 하는 실기전공과목이었으므로 글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공부는 하지 못했습니다.

십여 년을 공장에서 쇠를 깎는 일에 종사하던 내가 서른 몇 살이 되어 전문대학에 진학해 세무회계학을 공부했는데 이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늘그막(?)에 대학에 들어간 목적은 공부가 아니라 인맥형성이었습니다.

야간수업을 마치고 술집에서 회포를 푸는 일이 더 중요했으니 이 시기가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 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냐? 술술 잘 읽힌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까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그래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별다른 교육도 받지 않았고 경험도 없던 내가 어떻게 이만큼이라도 글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아주 잘 쓴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영 못쓰는 것도 아니니 신기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 결론 중 한두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공상과 사색을 즐겨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걸으면서 혹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의 바다에 빠져 헤엄치는 것은 살아가는 큰 즐거움입니다.

둘째는 책읽기를 매우 좋아하는데 특별히 마음에 드는 책은 매우 천천히 그리고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입니다. 인상적인 문장이 있으면 몇 번을 되새겨 읽어본 다음에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한 열 번 정도는 읽었을 것입니다.

이런 성격은 영화보기도 마찬가지여서 <벤허> 같은 영화도 마찬가지로 열 번 정도는 보았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줄거리뿐 아니라 대사까지도 기억할 정도가 됐는데 혼자 가만히 앉아 영화를 머릿속으로 필름 돌리듯 돌리면 장면과 느낌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나는 책을 읽을 때나 영화를 볼 때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도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봅니다. 하나의 문장과 장면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그 순간마다 엉뚱한 상상들이 나래를 펼치기도 합니다.

<무진기행>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

누구나 좋아하는 구절일 테지만 나도 이 구절을 특별히 좋아해서 언젠가 내 블로그에다 인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꼭 그렇게 했습니다. 이런 성격은 시간도 많이 잡아먹고 피곤할 것 같기도 하지만 가끔 유용할 때도 있습니다.

언젠가 회사에서 일할 때 힘들여 작성한 A4용지 3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기획서가 컴퓨터 고장으로 날아간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당황했지만 곧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작성했는데 처음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내가 쓴 기획서가 마음에 들어 수십 번을 읽고 또 읽는 중에 그만 외워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도 몇 차례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가끔 티스토리 내에서 문서작성을 하다 날아가는 경우가 있었던 것입니다.

남의 블로그를 볼 때도 이런 성격은 그대로 드러나서 좋은 글이 발견되면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습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물론입니다. 어떤 때는 종이와 볼펜을 꺼내 써보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훌륭한 문장만큼 아름다운 것도 잘 없습니다.

실은 엊그제 만난 동료 블로거의 분에 넘치는 칭찬에 대한 답으로 쓰기 시작한 글이 글쓰기보다는 책읽기에 대한 개인적 감상으로 흐른 듯한 느낌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글쓰기에 대한 내 생각은 그렇습니다. 글을 잘 쓰려면 남의 글을 잘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으로 읽지만 말고 마음으로 음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다면 아름다운 시를 외우듯 외워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창조물은 인용과 응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블로그가 있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기회도 됐으니 여간 반갑고 고마운 게 아닙니다. 하지만 과분한 칭찬을 들으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군요.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써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래 글은 내가 제일 처음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글 주소가 http://go.idomin.com/1 입니다. 끝에 1번 보이시죠? 그만큼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블로그는 문장으로만 글쓰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도 있고 다른 무엇도 있을 테지요. 그럼 이만...  

어느 슈퍼아저씨의 나라사랑

마트에서 수육용 제주도산 도야지 600g을 100g당 500원에 구입했습니다. 냄비에 물과 된장을 풀어 섞고 다진 마늘과 파, 무를 썰어 넣은 다음 생강이 없어서 못 넣는 대신 단감 반쪽을 싹둑 잘라 넣어 가스렌지에 올려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먹다 남은 소주도 반병 부었습니다. 아들놈이 옆에서 “아빠, 감은 왜 넣는거야?” 걱정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어. 이런 걸 창조정신이라고 하는 거야. 혹시 모르니까 너는 먹지 마.” “......, !” 그리고는 동네 슈퍼에 소주를 한 병 사기위해 쓰레빠를 끌고 찬바람을 맞으며 내려갔습니다.

내가 소주병을 들고 여기저기 살피고 있으니 주인장 왈, “손님, 뭘 살피시는 김미까? 그거 유통기한 아직 안 지났어요.” 내가 왈, “아, 네. 유통기한 살피는 게 아니고 도수 살피는 겁니다. 몇도 짜린가 볼라고요. 요즘 술이 도수가 너무 낮아서... 19.5도짜리가 제일 높은 거네.”

“하하 손님, 16도 짜리도 있심다. 요즘 말임미다. 알콜 도수 낮춰가지고 소주회사들 배 터졌슴미다. 주정 적게 들어가니 원가 절감돼서 돈 벌지, 도수 떨어지니 많이 쳐 먹어서 돈 벌지, 여자들도 인자 부담 없이 마신답디다.” 주인장께서 일장 연설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나도 거들었습니다. “네, 나도 어쩐지 요즘 소주 주량이 많이 늘었다 했더니. 더 싸게 만들어서 더 비싸게 더 많이 판다, 이런 말이로군요. 그러면서 부드러운 술 팔아 국민보건에 앞장선다고 자랑도 하고요. 앉아서 비싼 월급 받고 이런 거만 연구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리고 한 발 더 나갔습니다. “요즘 삼성 문제로 시끄러운데요. 바로 이런 게 문제에요. 소비자들, 국민들, 일하는 사람들 등골 빼가지고 이런 잔머리 굴리는 놈들한테 수십억씩 연봉 바치고, 뇌물 바치고 하니 사회가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그러자 슈퍼 아저씨, 내 말을 잽싸게 끊더니 침을 튀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슈퍼 장사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도, 그건 아님미더. 잘 하는 놈은 더 많이 주고 못하는 놈은 굶어 죽어야 됨미더. 그게 경쟁사회고, 그래야 나라가 발전 함미다. 김용철인가 하는 그놈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요. 완전 파렴치한 놈 아임미까. 삼성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으예...... 삼성은 뭔 짓을 해도 용서해줘야 됩미더...... (중략) 삼성에서 이건희 다음이라카는 이학수 실장 있다 아임미까. 요 옆에 밀양 사람 아임미까. 마중 출신 아이요. 그라고 삼성기획실에서 실장 다음 차장이라카는 김인주 사장인가 그사람도 우리 마산(마중, 마고 출신)사람 아임미꺼. 이 사람들 얼마나 대접받는지 암미까. 삼성이 그래서 잘하는 김미다...... (후략)”

가스렌지에 올려놓은 냄비는 들끓고 있을텐데 우리의 슈퍼엉클 열변이 지칠 줄도 모르시고, 아 열라 불안해지기 시작하네. 슈퍼 아저씨가 숨고르기를 위해 잠시 멈춘 순간, “아저씨, 오늘 말씀 참 잘 들었습니다. 날씨가 엄청 춥네요. 어유 춥다.” 냅다 집으로 뛰어 올라왔습니다.

맛있게 익은 돼지수육을 왕소금에 찍어 소주를 한 잔 들이키며 드는 생각. “오늘은 작전상 후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