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한계를 느낀다.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늘 상처받는다. 상처 주는 상대를 향해 그러지 마라고 큰소리로 항의하면 상대방은 그 소리에 상처받았다고 항변하며 달려든다. 졸지에 주객이 전도되고 종래엔 시점과 종점도 헷갈리게 된다.
페이스북이란 곳도 그렇다. 어떤 유저가 “오늘 우리 집에 잔치가 있어요. 축하해주세요” 하고 멘트를 올리자 축하한다는 댓글도 올라오지만 “당신 친구 중에 아주 성질 더러운 놈이 하나 있어. 그놈과 절교하든지 아니면 대신 사과 안하면 그 잔칫집 초상집 될 줄 아시오” 하는 협박도 들어온다.
보다 못한 한 유저가 따진다. “당신 남의 잔칫집에 와서 그런 식으로 깽판 치면 되겠어? 그리고 그건 이 집 주인장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얘기잖아. 왜 쓸데없이 관련도 없는 얘길 끄집어내서 남의 행사 망치는 거요? 나도 당신네 집에 가서 그런 식으로 깽판 쳐볼까요?”
잔치 축하얘기는 뒷전으로 밀리고 원래 누가 더 성질 더러웠는지 따지는 것으로 지극히 우호적이었던 이 공간은 난장판이 된다. 마치 야밤에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가 함께 턱을 어루만지며 나는 아무 짓도 안했는데 느닷없이 맞아 매우 고통스럽다며 엄살을 부리는 꼴과 같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뜯겨져나간 윗옷 단추를 보여주며 저놈이 얼마나 성질이 더러운 놈이었는지 가증스럽게도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하소연한다. 이건 우리 주변에서 어쩌다 볼 수 있는 추악한 현실 중의 하나지만 페이스북이 생기고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페이스북의 특징 중 하나인 개별그룹에서 이런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페북그룹은 특정 경향을 가진(혹은 특별히 친한) 사람들이 주도하게 되고 이들의 세에 의해 집단적 최면과 폐쇄적 공황상태로 빠져든다.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보던 폐인들을 여기에서 만난다.
아, 그랬다. 페이스북이 에스엔에스 중에서도 첨단을 달리는 소통의 도구라 생각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고 불편한 구석이 있다 했더니 바로 게시판이었다. 게시판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필요한 도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요즘 대세인 페북을 떠나기는 좀 그렇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 오늘 조개구이 먹었어”라든가 “나 지금 치맥에 신나게 달리고 있어” 같은 시답잖은 모호함으로 자신을 위장하며 소통하고 있다는 만족감이나 만끽하는 정도로 행복하다고 자족해야 할까?
뭐 그것도 괜찮기는 하다. 세상이란 게 그런 거다. 욕 먹어가며 정의감에 떨어봐야 남는 게 무에 있겠는가. 미친개가 짖는다고 따라 짖어봐야 목만 아플 뿐이다. 미친개는 왜 짖는지도 모른다. 그저 짖을 뿐이다. 이유도 목적도 없다. 오로지 무턱대고 행할 뿐이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둘은 다르다. 하나는 미디어요 하나는 네트워크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달랐다. 페이스북은 마치 하나의 교실과도 같다. 집단 린치도 있고 왕따도 있다. 그리고 물론 친구들끼리의 즐거운 놀이가 더 많다.
아마도 그래서 때때로 속상하고 짜증나고 불편하면서도 감수하면서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페이스북에 대해 생각해본다. 무엇일까? 김주완 기자 말처럼 소통과 유통의 도구? 별로 썩 효과적인 것 같지는 않다. 아직은. 사실은 김 기자의 그 말에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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