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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갯벌기행, 갯벌을 보면 떠오르는 것들

갯벌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글쎄요, 우선 게가 떠오릅니다. 순천갯벌에서 보았던 짱뚱어도 떠오르는군요. 그리고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6시 내고향’인가 어디서 보았던 갯장어도 떠오르네요. 네, 맞습니다. 주로 먹는 게 떠오릅니다.

장흥 어디 갯벌에서 잡힌다는 장어는 크기가 거짓말 조금 보태 제 팔뚝보다 크더군요. 그걸 팍팍 끓여서 장어탕을 만드는데, 어휴, 거기서 커다란 솥에서 나는 김만 봐도 침이 꼴딱꼴딱 넘어갑니다. 청정 갯벌 속에서 잡히는 장어라 영양도 만점이랍니다.

맛있는 이야기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기다랗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그칠 줄 모르는 사이렌 소리. 11월 15일. 그렇군요. 오늘이 민방위훈련 하는 날인가봅니다. 민방공훈련인가? 아무튼 각설하고….

△ 하동 술상갯벌

지난 11월 4일 갱상도문화학교를 따라 하동과 사천의 갯벌에 다녀왔습니다. 갱상도문화학교가 9월에는 문경새재, 10월에는 우포늪과 화포천 탐방에 이어 세 번째로 기획한 행사였습니다. 12월에는 창녕지역 문화를 둘러볼 예정이라고 합니다.

먼저 간 곳은 하동 술상갯벌이었습니다. 관광버스가 사람들을 내려놓았을 때 햇살이 바다 저편으로부터 거무튀튀한 갯벌을 타고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갯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예전엔 미처 하지 못했을까요? 갯벌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갯벌이 아름다운 것은 단지 햇빛 탓은 아니었습니다. 아, 물론 햇살에 반짝이는 검은색의 갯벌이 신비롭기는 했습니다. 햇빛은 만물을 가꾸는 타고난 능력을 지녔습니다. 햇빛 때문에 나무들은 여름에는 녹색의 옷을 입었다가 가을이면 빨강노랑의 옷으로 갈아입는 요술을 부릴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한낮의 햇빛을 마주한 갯벌이 아니라 저녁나절 석양의 햇빛을 보듬는 갯벌을 보았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아직 그런 갯벌의 색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무척 아름답겠지요. 갯벌 위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게떼들이 갑자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천 종포갯벌

이쯤에서 잠깐 외도. 개떼가 맞나요, 게떼가 맞나요? 국립국어연구원이 인정하는 바에 의하면 개떼가 맞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 순간, 개떼가 아니라 게떼가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개벌은 온통 게떼 천지였습니다. 까만 갯벌에서 까만 게떼들이 들끓는 광경이라니.

한참 갯벌을 바라보며 걷다가 가이드로 온 윤미숙 푸른통영 21 사무국장으로부터 설명도 들었습니다. 윤 국장의 설명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밟고 선 잔디는 갯잔디라는 것이었습니다. 윤 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갯잔디는 기수역에서만 자란다고 합니다.

기수역? 곽재구 시인의 시에 나오는 사평역과 같은 역이 아니고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역을 일컬어 기수역이라고 한답니다. 갯벌들은 흔히 민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통로에 많이 형성되어 있는 듯합니다. 나중에 만나게 될 사천의 갯벌에서도 갯잔디는 수없이 보았습니다.

갯잔디들 사이에는 칠면초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갯잔디에서만 서식하는 기수고동이란 것이었습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 깨알처럼 자그마한 것이 앙증맞기가 이를 데가 없습니다. 마치 잘 다듬어낸 고대의 장신구 같습니다. 귀걸이 같은.

△ 기수고동

△ 생태.문화투어 참가자들이 술상갯벌의 기수역에서 칠면초, 갯잔디, 기수고동 등을 살펴보고 있다.

관광버스는 다시 사람들을 사천의 갯벌로 실어 날랐습니다. 버스는 사천시내에서 종포갯벌로 들어가는 길을 잘 찾지 못해 한동안 헤매는 바람에 우리는 잠시나마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거대한 버스가 과연 이 좁은 마을의 골목길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역시 선수는 선수. 노련한 버스기사는 그 좁은 골목에서 몇 차례 전진후퇴를 반복하더니 급기야 그 거대한 버스를 반대로 돌려놓고야 말았습니다. 사천 종포갯벌을 둘러보기 전에 우리가 할 일은 ‘금강산도 식후경’을 실천하는 것.

연화정. 음식이 너무 맛있었던 고로 전화번호를 남깁니다. 절대 광고비를 받았다거나 추가로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 없습니다. 055-834-3111입니다. 연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 외에도 동동주가 맛있었는데 양이 너무 적었습니다. 한상에 앉은 사람들이 전부 술꾼들이었을까요?

갯벌을 따라 사람들은 기다랗게 걸었습니다. 나중에 종아리에 알이 밸 정도였으니 꽤나 많이 걸었지 싶습니다. 역시 갯벌은 게떼들 천지였습니다. 게떼들의 천국. 그것이 바로 갯벌이었습니다. 저속에 무수한 생명체들이 숨을 쉬고 있다고 생각하니 검은 갯벌이 더없이 반갑습니다.

만약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이 갯벌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모르긴 몰라도 아무 생각도 없을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까마득한 산골마을에서 살았지만, 혹시 이처럼 갯벌이 드넓게 펼쳐진 어촌마을에서 자랐다면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꿈에서라도 앞뒤로 우뚝우뚝 솟은 산들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나는 매일매일 꿈속에서 갯벌을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이날 우리가 만난 갯벌은 밀물이어서 그렇게 넓지는 않았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기다랗게 펼쳐진 모양에서만 그 거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을 뿐.

썰물에 갯벌이 온전하게 그 실체를 드러내는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탄성을 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라도 좋았습니다. 거의 밀려들어온 밀물 끄트머리에 살짝 드러낸 검은 피부만으로도 사람들은 충분히 감동했습니다.

갯벌을 잘 알지 못하는 대개의 사람들은 그 정도가 갯벌의 전부인 줄 알고 있었지만, “이건 잠자려고 거의 이불을 덮은 모습이고 썰물에 잠을 깨면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니랍니다. 저기 보이는 저기까지가 모두 갯벌이라는군요. 규모가 엄청나죠?” 이렇게 말하면 더욱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아쉬워하는 것입니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갯벌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하고 있다가 좁은 폭에 내심 실망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답니다. ‘그럼 그렇지.’ 하하, 내가 무슨 사천 종포갯벌 대변인도 아니고, 우습지요?

△ 사천 종포갯벌에서 갯잔디를 관찰하고 있는 투어 참가자

△ 칠면초

만약 해가 질 무렵 붉은 석양 아래 활짝 펼쳐진 갯벌을 볼 수 있는 물때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 기쁨을 안고 우리는 바로 삼천포 바닷가의 어느 횟집으로 달려가 싱싱한 회를 안주삼아 소주를 거나하게 마시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삼천포에 있는 코끼리바위와 인사를 나눈 다음 공룡발자국이 무성한 고성군 하이면 상족암을 둘러본 다음 리아스식 해안을 실컷 즐기면서 돌아오는 겁니다. 중간에 굴 양식장에서 굴을 까는 할머니들을 만나면 한 포대 사서 트렁크에 싣는 여유도 부리면서 말이죠.

시간이 좀 남았다면 오늘 길에 옥천사에 들러본다면 금상첨화겠지요. 하지만 이날 우리는 그런 호사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관광버스는 곧장 고속도로에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우리를 다시 마산에 내려놓았습니다. 아쉽지만 이날의 갯벌탐방은 그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어때요? 기회가 된다면 방금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코스 괜찮지요? 사람에 따라 사천 갯벌이 압권이 될 수도 있겠고 또는 사람에 따라 고성 상족암을 들러 돌아오는 길이 압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저 같은 주당에겐 삼천포 횟집이 압권입니다만.

이제 그만 마무리를 하기 전에, 이 글의 제목 ‘갯벌을 보면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답이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특별한 사람들이 있어서 소개를 하는 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이 특별한 분들은 갯벌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정답은 ‘매립’입니다. 땅 만드는 돈이 적게 들거든요.

그분들이 어떤 분들인지에 대해선 따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