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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고시원 방화현장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오늘 뉴스를 보니 서울에서 끔찍한 사고가 났습니다. 한 남자가 방화를 하고 화재를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답니다. 그리고 여섯 명이 죽었으며 앞으로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자기를 무시한다는 망상으로 ‘묻지마’ 식의 살인행각을 벌였다고 하는군요. 개인적 비관으로 인한 범행치고는 너무나 잔혹합니다.   

 
2년 전 잠실에서 일어난 고시원 건물 화재

저도 화재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2년 전 7월 19일, 저는 서울 잠실의 한 4층 건물 2층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전날 거래처 사람들과 과음한 탓으로 사무실에 앉아 비실대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방 유리창 옆으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지하로 연결된 닥터 같은 곳에서 검은 연기가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더군요.


     2층이 제가 있던 회사고요, 제 사무실은 건물 오른쪽 끝에 있었는데 그리로 최초 연기가 올라왔습니다. 
     왼쪽 무전기 든 경찰 아저씨 안면이 있군요. 그 옆으로 난 문이 지하 노래방 출입문인데 화재 당시엔 이문
     은 굳게 잠겨 있었고, 덕분에 안에서 완전히 타오른 거센불길이 건물 가운데로 몰리면서 중앙계단을 타고  
     건물 전체로 번졌습니다. 저와 일행들은 작은 창문을 간신히 빠져나와 숯불갈비라 쓰인 간판을 밟고 매달
     려 있었습니다. 사진으로 보기보다 높이가 상당해서 그냥은 절대 뛰어내릴 수 없었습니다.  

마침 건물 1층 식당 주인아저씨와 몇몇 사람들이 건물 앞 도로에서 웅성거리며 “저게 뭐지?” 하면서도 막상 겁이 나는지 연기가 새어나오는 곳에는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뭡니까? 무슨 일이죠?” 

창문을 열고 연신 물어도 잘 들리지 않는지 제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겁 먹은 표정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슨 일인지 살피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다급해진 저도 가운데 사무실로 나가니 다른 직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전반기 결산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출입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아래쪽 계단으로 조금 내려가니 불빛이 약간 비치는 게 보였습니다. 순간 불이 났구나 하고 직감을 했지요.

소스라치게 놀란 제가 다시 돌아오는데 윗층에서 고시원 총무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던지 살펴보러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3층 위로는 고시원이었거든요. 그는 나중에 3층 계단 입구에서 두개골이 파열된 사체로 발견됐습니다. 사자처럼 덤벼드는 연기를 피하지 못했나 봅니다.

아비규환, 그야말로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생지옥

얼른 올라와서 사무실마다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불이 났음을 알리고 피신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현관 입구까지 불길이 치솟고 있었습니다. 불과 1~2분 상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시커먼 연기가 마치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지요.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앨범 두개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창문을 간신히 빠져나와 건물 벽에 매달려 뛰어내리거나 사다리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건물 벽에 매달렸을 때 이미 위에서는 떨어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시원에서 잠을 자다가 날벼락을 당한 어떤 여성은 옷도 입지 않은 채 뛰어내리다 2층과 3층 사이에 설치해놓은 유리 천정으로 떨어져 와장창 소리와 함께 피투성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고 놀란 우리 사무실에 있던 어떤 사람도 얼떨결에 뛰어내리다 건물 옆 주차타워에 부딪쳐 눈 밑에서 턱 부위까지 뼈가 보일 정도로 찢어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답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우리는 다행히 2층 사무실이라 다들 무사히 빠져나왔지만(다들 약간의 부상이 있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무사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불길은 계단을 타고 건물 옥상을 넘어 하늘로 치솟고, 사람들은 창으로 몸을 내밀고 살려달라고 아우성만 칠뿐이었습니다. 창밖엔 몸을 의지할 만한 아무런 턱도 없었으므로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정도 뿐이었을 겁니다.

하늘에선 어떻게 알고 왔는지 방송국 헬리콥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건물 위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 헬기 아래 어떤 사람이 자다가 탈출했는지 벌거벗은 모습으로 건물 옥상에 간신히 매달려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불길이 치솟고 있었습니다.   유독성 연기를 내뿜으며 건물 전체로 번진 불길 때문에 소방관들도 어쩌지 못하고 그 사람을 향해 불길이 번지지 못하도록 물만 뿌려댔습니다. 


그때도 홧김에 벌어진 ‘묻지마’ 방화사건이었다

이날 현장에서만 8명이 사망하고 중태에 빠진 이가 또 13명이라고 했습니다. 이후에 사망자가 더 늘었을 겁니다. 그리고 방화 용의자는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었습니다. 방화를 저지른 범인이 현장을 이탈했다가 다시 돌아와 4층에 있던 자기 애인을 구출하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결국 자기 애인을 구출했다고 합니다. 나도 보았지만, 그래서 그가 범인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화재가 나기 불과 30여 분 전에 1층 갈비집에서 자기 애인과 술을 먹으며 다투고 있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우리 사무실 손님 차량을 막고 있는 그의 차를 빼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가 술이 너무 취했다고 하면서 여자가 대신 차를 빼 주었습니다. 참 우스운 일이지요. 그러고 나서 30분 있다가 지하 노래방 소파에다 석유를 붓고 불을 지른 겁니다.


  
     방화하기 전 3~40분 전 이곳에 있던 손님 차를 빼기 위해 방화범의 차를 치웠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많이 나갔고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 사무실도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저 차도 제가 아는 분 차 같군요.

저는 불을 최초로 발견한 증인이 되어 몇차례 사건현장검증으로, 경찰서로, 검찰로 조사를 받으러 불려 다녔습니다. 그러나 워낙 사건의 충격이 컸고 희생자가 많았기에 나름대로 성실히 임했고 어떤 경우엔 제가 자청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엔 사건 담당 형사계 계장이 제게 고맙다고 인사도 했지요.
 
연이어 벌어진 ‘묻지마’ 살인

그 형사는, 잠실이니까 송파경찰서겠지요? 매우 지능이 좋은 형사였습니다. 외모도 말쑥한 게 과거에 제가 알던 (조폭같은) 형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말하자면 인텔리 형사처럼 보였습니다. 화재가 채 진압되기도 전에 잠깐의 탐문으로 범인을 잡아냈습니다. 어이없게도 범인은 도망을 가지 않고 현장에 있었고요. 

나중에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이미 석유통과 불을 지핀 종이 기타 증거들이 확보됐다고 했습니다. 그는 1심에서 사형을 구형 받고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습니다.(ps; 그러나 항소심에서 용의자가 계속 자백을 번복하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고 불법영업만 인정, 징역10월에 집유를 선고했다고 한다. 대법원은 확인하지 못했다.) 
그 방화사건 현장에서 우리나라 톱 탤런트 G모 씨의 매니저 부인도 친구에게 놀러왔다가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참 어이없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사고 후 일주일쯤 지나서 경찰서에 참고인 조사 받으러 갔을 때였습니다. 


또 자기 관내에서 살인사건이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돌아가는 멀쩡한 여학생을 아무런 이유없이 흉기로 수차례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것도 고시원 화재 현장에서 불과 2~30m 떨어진 곳에서 말입니다. 그 형사가 분개하며 제게 말했습니다. 

“범인이 사실은 바로 불난 그 고시원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애꿎은 사람들은 다 죽고 다치는데 왜 이런 자는 멀쩡하게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나왔을까요? 차라리 다른 사람 대신 거기서 죽었으면 이런 억울한 피해자도 없었을 거 아닙니까?”

사건을 마무리하고 허탈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무는 그를 보며 착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일개 권력의 시녀 노릇이나 하는 경찰을 안 좋아했지만, 이렇게 일선에서 온갖 풍상을 다 겪는 형사들을 보노라니 착잡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자들의 천국, 화려한 강남의 막장에서 벌어지는 비극들 

오늘 ‘묻지마 방화에 살인행각’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불황의 끝에 벌어진 불행한 사건으로 규정한 심층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회적 부적응자나 사이코패스에 대한 진단도 나옵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어떠하든 결국 피해자는 모두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강남 귀족들의 귀에 이런 일은 먼 남의 나라 일로 들릴 것입니다.   

저는 그때의 화재로 모든 것을 잃고 가족이 있는 시골도시의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사무실은 완전 불탔고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보험에 들어있던 건물주인은 오히려 돈을 벌게 됐을지도 모르지만, 제게는 탈출할 때 입고 나온 옷가지와 맨발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한 동안 밀폐된 건물에는 들어가지도 못했고, 항상 퇴로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는 버릇까지 생겼습니다.  

그러나 방화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보살펴줄 가족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화재가 난 시각이 오후 3시 40분 경이었는데 이 시간에 고시원에서 잠을 자고 있던 사람들은 대개가 밤업소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시골에서 올라와 일용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오늘 화재가 난 고시원도 강남구 논현동이라고 하는군요.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소위 강남 3구라 불리는 곳에서 주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아리러니한 일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자기 시체하나 치워줄 사람 없는 사람들이 막장같은 고시원에서 불길 속에 죽어가는 모순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무사히 살아남아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그나마 행복한 편이었지요. 벌써 세월이 두 해나 흘렀군요.
 
2008. 10. 20.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