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이야기

국가변란을 떳떳이 말하는 돈키호테

어제 중앙일보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풀려나온 오세철 교수에 대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오세철 교수는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사노련) 운영위원장입니다. 또 과거에 민중정치연합 대표, 한국경영학회장,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장 등을 역임한 이력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피카소의 돈키호테


그는 김문수, 이재오, 이우재 등과 함께 민중당 창당의 주역이기도 합니다. 중앙일보는 그가 인터뷰에서 다음과  주장했다고 보도했군요.

오 교수는 “운동권 안에서도 나는 원칙을 굽히지 않는 ‘꼴통’”이라며 한때 같은 꿈을 꿨던 현 여권 인사들을 비판했다. 그는 “나 빼고 1990년 민중당 창당 인사들이 지금은 다 이명박 밑에 가 있다”며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에 대해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이명박 대통령) 오른팔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레닌 책 몇 권 겨우 읽은 사람들이 소련 붕괴로 우상이 무너져 버리니까 바로 변절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한국 사회엔 가짜 사회주의자들이 너무 많다”고도 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대해 “국회의원 몇 명 더 만들어서 집권해 보겠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오 교수는 “사노련과 나는 혁명에 실패한 북한이나 러시아 뒤꽁무니를 좇지 않는다”며 “유럽의 사회주의 운동사를 더 공부해 이론을 실천에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말 촛불 시위대가 청와대 앞까지 나갔을 때 시위대와 함께했던 그는 “그 같은 해방의 날이 또 올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10/25일자 기사 중 인용>


그러면서 구속적부심 판사에게 다사 잡혀가더라도 사회주의 활동을 계속하겠으며 국가변란이 목표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착잡한 생각이 드는군요. 돈키호테 생각이 난 겁니다. 돈키호테는 메마른 세상에 꿈과 용기를 줄 수는 있겠지만, 거기까지인 거지요. 둘시네아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거대한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돈키호테가 산초와 로시난테에게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젊은 날의 이상을 버리고 변절하여 서로 이명박의 오른팔 되겠다는 김문수, 이재오나  뉴라이트를 대표해 국회의원이 된 신지호 같은 사람들보다야 오세철 교수가 훨씬 아름답습니다. 민중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던 자들이 소련의 붕괴로 우상이 무너져 내리자 바로 자본과 권력의 개로 둔갑하는 기괴한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사실 이 나라의 병폐가 아니던가요?
 
그래서 고집스럽게 자기 사상을 지키며 솔직하게 말하는 그가 신선해 보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겠지요. 말하자면 그는 아직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순수한 돈키호테와 같은 사람이지요. 더욱이 국가보안법의 그늘에 숨어 자기 신념과 정체성마저 숨기는 비겁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의 태도는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이 결코 돈키호테 같은 이상주의자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돈키호테가 설령 꿈과 용기와 웃음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세상을 바꾸는 데는 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미 철지난 혁명타령이나 하는 오세철 교수의 꿈과 용기로는 웃음조차 주지 못한다는 게 더 큰 문제지요.  

혹시 둘시네아 공주라면 세상을 향해 떳떳하게
국가변란이 목적이라고 말하는 돈키호테를 이해해줄 수 있을까요?

2008. 10. 26.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