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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한국경제는 IMF 유령으로부터 안전한가?

아이슬란드 지도= 위키미디어공용

유엔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아이슬란드가 휘청거리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인구 30만이 조금 넘는 자그마한 나라이다. 우리에게 아이슬란드는 세계 최북단의 추운 섬나라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 탓인지 지난여름에는 KBS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란 프로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아름다운 나라였다. 녹색으로 빛나는 오로라 속을 떠다니는 빙하와 화산 활동으로 지천에 널린 유황냄새 짙은 온천들이 한가로운 평화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위도 상으로 가장 북쪽에 있으면서도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포근한 그런 나라다.

  게다가 아이슬란드는 작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1인당 GDP가 6만3000불에 이르는 부국이다. 유엔이 주도한 투표에서도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뽑혔다.
아이슬란드는 우리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그런 나라였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는 유럽에서는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였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어업이 전체 생산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가난한 어업국에 불과했다. 1970년대 만해도 세계은행은 아이슬란드를 개발도상국에 포함시켰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를 도입해 성장을 꾀했고 이것이 주효했다.

  아이슬란드는 자본규제를 완화하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 등 세계화 정책에 힘입어 유럽의 금융허브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금융시장 자유화의 명분을 내세워 규제를 없애자 외국자본의 투자가 줄을 이었다. 규제 완화 바람을 타고 러시아의 검은 돈도 흘러들어와 투기자금으로 변질되었다. 
           

  아이슬란드는 10년 만에 가난한 어업국가에서 금융강국으로 떠오르며 부자가 되었다. 2003년에는 최초로 억만장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는 한껏 날아오른 아이슬란드를 여지없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아이슬란드의 겨울, 사진= 위키미디어공용


외국자본에 의존한 성장은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했다. 아이슬란드는 이미 예금지급불능 사태를 맞았으며 이웃 러시아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모라토리엄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나 1988년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에 빠진 러시아도 제 코가 석자다. 지구상에서 북극에 가장 가까운 수도 레이캬비크는 지금 폭풍전야다. 넘치던 수입자동차 판매점은 개점휴업상태며 슈퍼마켓은 사재기에 나선 시민들로 북새통이다. 아이슬란드는 천연자원도 없고 식량도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경향신문 구정은 기자의 기사 중 일부를 보자.

  『경제학자 가우티 크리스트만손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온 국민이 거대한 카지노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다”며 “무비판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받아들인 아이슬란드인들은 새로운 공산당선언이라도 내놓아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와 지주회사 규제의 완화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

  아이슬란드는 우리가 결코 넘보아서도 안 되고 배워서도 안 되는 반면교사였다. 절대 미국을 따라가서는 안 되는 이유를 처절한 실패의 교훈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온통 미국식으로 나라를 개조하려는 이명박 정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명박 정권은 들어서자마자 모든 정책의 종착점을 미국으로 정했다. 금융시장 규제완화, 민영화, 소비자 주권을 빙자한 교육자유화, 이 모든 정책의 상징적 출발로 최근엔 대다수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일제고사를 강행했다. 

  이미 방송을 장악하고 언론통제에 시동을 건 이명박 정부의 눈과 귀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고통스럽게 반면교사를 보여주는 아이슬란드가 아니라,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대한민국의 정부의 무능과 고집이다. 

  미국의 유력한 시사잡지 「뉴스위크」는 최신호에서 한국경제를 분석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에 IMF 유령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천국에 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유령 따위가 보일리가 만무하다. 그게 걱정인 것이다. 

  2008. 10. 20.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