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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나는 '자주파'에게 그를 뺏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주파'에게 그를 뺏기지 않을 것이다
[독자투고-권영길 지지] 인민노련 출신 내가 권후보를 지지하는 이유

이 글을 보내온 필자는 자신을 "노동자 출신으로 창원지역에서 82년도부터 공장생활을 시작해서 80년대 노동자 대투쟁을 경험했으며, 인민노련-한노당-진정추로 이어지는 조직활동을 하며 노회찬 후보와도 인연이 있는 사람"이며 "자율과 연대 회원"이라고 소개했다.

필자는 이 글이 "최근 자율과 연대 총회에서 ‘뜻밖에’(?)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지가 다른 후보보다 많이 나온 이유에 대한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편집자 주>

오늘 <레디앙> 기사에서 자주파가 집단적으로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는 그들이 왜 권영길 후보를 집단 지지하기로 하였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개인이든 정파든 특정후보를 지지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자주파는 권영길에게 그리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 자주대오란 곳에서 작성한 「대선후보 보고서」라는 그들 내부 문건을 보면 오히려 권영길 후보에 대해 반주사적 행태를 보이는 반북 인사로 낙인찍고 있다. 권영길의 반북 콤플렉스는 그가 빨치산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라는 자체 분석까지 달면서 말이다. 오히려 노회찬 후보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권영길을 집단적으로 지지하기로 결의한 것일까. 거기엔 권영길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지역적 대중적 토대, 민주노총에 대한 영향력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정치적 결정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대선∙총선 이후 당의 재편기를 노린 포석이 아니라고 그들 스스로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대선후보 3인에 대한 평가’란 문건에서 밝힌 그들 스스로의 표현처럼 권영길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통해 내년 총선 이후 당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다.

나는 노동자 출신으로서, 또 좌파적 당원의 한사람으로서 민주노동당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더욱이 권영길을 자주파의 대통령 후보로 만드는 것에 결사 반대하는 사람이다. 권영길은 어떤 정파도 아닌 민주노동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자주파가 집단적 지지 결정을 한 것보다 여기에 알레르기를 보이며 예민하게 반응하고 심지어 권영길을 배척하는 소위 좌파들이 더 걱정스럽다. 그래서 대단한 문필가도 아니고 그저 노동자 출신이며 평당원에 불과한 내가 두서없이 떠들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권영길을 빼앗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의 질문 “니는 인민노련 출신이니 노회찬 밀어주겠네?”

얼마 전에 친구로부터 질문을 하나 받은 적이 있다. 이 친구는 나와는 공고 동기생인데 이미 전두환 정권 시절에 노동운동에 투신해서 감옥을 안방처럼 들락거린, 운동으로 말하자면 대선배이다. 그래서 친구로서 갖는 친근감과 더불어 대선배에 대한 존경심으로 항상 조심스럽기도 한 친구이다.

“야, 친구야. 니는 이번 대선 후보로 누구를 생각하고 있노? 뭐 생각해 둔 거 있나?”

갑작스런 질문에 좀 당황스러웠다. 내가 머뭇거리자 이 친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 니는 참 노회찬이 밀어 줘야 되겠네. 참, 낼 모래 노회찬 대선 강연회 하러 내려온다. 그때 온나. 나는 심상정이 도와주려고 지금 연구 중이다. 그래도 심상정이가 내용적으로 제일 낫더라. 니도 한번 잘 생각해 봐라”

아마 이 친구는 내가 옛날 노동조합 활동하던 시절부터 주로 인민노련이나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등과 연관을 맺어왔던 이력을 들어 노회찬을 들먹였을 것이다.

그랬다. 옛날 나는 인민노련에서 발행하던 <노동자의 길>이나 <사회주의자> 등을 읽으며 내 의식의 일부를 만들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는 주대환과 더불어 노회찬, 황광우의 글들이 실려 있었다.

내가 주대환을 일러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로, 황광우를 뜨거운 감성의 소유자로, 그리고 노회찬을 타고난 정치 감각의 소유자라고 부르는 것도 이미 그 때 그들의 문건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고 스스로를 키워갈 때부터 느껴왔던 감상이다.

그러므로 만약 별 생각 없이 “누구 찍을래?” 하고 물어온다면 당연히 “노회찬이요!” 해야 하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자, 그런데 나는 대선배 같은 친구의 질문에 더듬거리며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지만, 오늘 그 친구에게 내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또 권영길은 대선후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나의 귓전을 괴롭히는 많은 소리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나는 대선후보 세분이 모두 훌륭한 후보라고 생각한다

심상정 의원! 서슬 푸른 전두환 정권 시절에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여장부가 아닌가. 인민무력부장이란 칭호를 듣는 그의 강인함은 노동자 투쟁으로 단련된 것이리라. 특히 국회에서의 그의 두드러진 활약상은 분명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심상정은 국회에 입성한 초반부터 뛰어난 정치 감각을 보여주었다. 우리 마누라는 심상정 같은 사람이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한번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은근히 여성단체 활동가로서의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노회찬 의원!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이란 거붕을 설득해서 민주노동당을 만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닌 사람이다. 이 분은 20년이 넘게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일념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모르긴 몰라도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 집을 제 집처럼 들락거렸을 것이다.

주대환 전 정책위 의장과 더불어 노회찬 의원의 헌신이 없었다면 일하는 사람의 희망, 민주노동당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권영길 의원! 민주노동당의 얼굴이다. 이 분이 없었다면 오늘날 민주노동당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권영길 의원은 정파를 막론하고 민주노총 내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97년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

그리고 97년 대선 초라한 득표 이후 다시 ‘시기상조론’이 대두했을 때 이를 설득하며 결국 오늘날의 민주노동당을 만들었다. 아마 민주노동당의 역사책은 권영길이란 이름 석 자를 언제든 첫머리에 장식할 것이다.

착잡함 - 보수 세력과 별반 다르지 않은 소위 진보정당의 ‘양심’

나는 노동자 출신으로 직업학교를 갓 졸업한 82년부터 창원공단의 한 공장에서 청춘을 기름과 쇳가루와 그리고 술로 보냈다. 그런 나에게 80년대의 뜨거운 아스팔트를 달구었던 노동자 대투쟁의 함성은 그렇게 연명하던 젊은 청춘에 한줄기 빛을 던져 주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절망과 탄식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희망과 함성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는 대열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얼마나 목 놓아 불렀던가, 노동자정당을! 진보정당을! 그리고 민주노총 초대위원장 권영길의 결단이 거기에 응답했다. 그의 결단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목만 놓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일부 당원들로부터 권영길 의원이 나이가 너무 많다거나 대선 후보를 벌써 두 번이나 했다거나 하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우리도 보수 세력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양심’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언제는 아쉬워서 제발 한 번 나가달라고 사정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벌써 두 번이나 했으니 그만두시라고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 분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오늘 우리는 이런 논쟁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예의 따위는 집어치우더라도 우리의 대선 후보에게 나이라든가 세 번째라든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판단과 결정이 전략적인가 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 당이 처한 냉철한 현실 - 울산과 창원의 당선에 당의 ‘사활’을 걸어야

어떤 후보는 3백만 표를 말하고 누구는 5백만 표를 말한다. 그것은 자유다. 그건 우리의 희망과 실천 의지의 집약적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 당이 처한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 없이 무작정 쏟아내는 희망의 메시지들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주노동당이 당면한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는 무엇일까. 민주노동당이 처한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우리 당이 처한 현실은 도약의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다. 아마도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내년 총선의 과제가 될 것이다.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8석을 배출했던 17대 총선의 결과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을 때 우리가 겪게 될 패배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특히 창원과 울산. 이 두 곳에서의 싸움은 그야말로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다. 만약 이 두 곳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진보정당 운동은 상당한 후퇴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창원과 울산을 우리는 아직 완벽한 노동자 도시로 만들지 못했다. 근소한 차이로 우리는 한나라당에게 추격을 당하고 있다.

최근 연이은 악재들로 국민들에게 바람직스럽지 못한 이미지의 당으로 낙인찍히고 지지도가 추락한 현실은 우리의 방어가 얼마나 힘들 것인가를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연말 대선은 내년 총선의 전초전인 것이다. 울산은 이미 한 번 방어선이 무너졌다. 그리고 울산의 방어선이 한번 무너진 이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민주노동당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가. 그런데, 창원의 지역구까지 내주게 된다면, 단 한 석의 지역구도 돌파하지 못한다면 민주노동당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될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대선에 대한 ‘낭만적 감상’을 과감하게 벗어던져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만 하는 이 마당에 당의 지도부와 일부 열혈 당원들이 낭만적 감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물론 그동안 일구어 놓은 성과가 대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룬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냉철한 이성은 우리에게 당면한 위기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모든 낭만적 감상이나 지난 몇 년간 우리가 가져왔던 자부심들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냉혹한 현실의 땅 위에 두발을 딛고서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우리는 이성보다 감성을 먼저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배가 부르지 않다. 우리는 창원을, 그리고 울산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한 번만 더 우리가 창원과 울산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이제 창원과 울산을 ‘노동자의 도시’라고 자신 있게 불러도 될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는 것은 물론 비약적 발전을 위한 도약의 발판을 우리에게 선물로 안겨줄 것이다.

울산과 창원을 거점으로 해서, 좌우, 위아래로 사천-진주-창원-마산-거제-부산-울산-포항으로 이어지는 '동남해안권 노동자 진보벨트'가 되어 언젠가 치러야 할 수도권에서의 적벽대전을 위한 승리의 동남풍이 되어 줄 것이다.

총선에서 당의 ‘생존’을 지켜줄 유일한 후보, 그래서 나는 권영길 의원이 다시 한 번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선투쟁의 여세를 몰아 내년 총선을 승리하기 위해서, 창원을 지키기 위해서, 권영길이 다시 한 번 나서주어야 하는 것이다.

총선 투쟁 승리의 나팔소리를 창원에서부터 울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년 총선에서 위대한 승리와 도약의 발판을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실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친구의 말처럼 나의 마음은 노회찬이 대선 후보도 되고 당의 지도자로 우뚝 서서 세상을 바꾸어 주길 간절히 바라건만 현실의 세계는 아직 권영길로부터 시대적 소명을 거두어가지 않았다.

지난 수년 간 우리의 안일함과 무능함이 불러온 결과다. 추락한 당의 지지도와 간첩당이란 오명을 뚫고 당의 생존을 지켜낼 유일한 카드는 권영길이다.

2007년 07월 24일 (화) 08:35:25

인터넷신문 <레디앙>에 기고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