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보면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이끌고 제갈량을 찾아 나선다. 제갈량이라고 하면 당시로서는 초야에 묻혀 책이나 읽고 바람이나 쐬는 초라한 선비에 불과한 인물이다. 유비가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서 10여 년 동안이나 싸움터를 전전했지만 변변한 근거지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계속되는 고전으로 고심하던 어느 날 “자신에겐 장막에 앉아 주판알을 굴리면서 천리 밖의 승리를 얻어내는 장량 같은 걸출한 인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유비가 당대의 학자인 수경선생을 찾아가 도와주기를 간청하자 “유생이나 하찮은 시골 선비가 어찌 시무(時務)를 알리오? 시무를 알 만한 사람을 준걸(俊傑)이라 합니다. 이곳 양양에는 복룡과 봉추가 있소이다. 유공이 천하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복룡과 봉추를 얻어야 할 것이오. 이 둘 중에 하나만 얻어도 능히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복룡이란 제갈량(제갈공명)을 일컫는 말이며, 봉추란 방통(방사원)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 수경선생 사마휘로부터 복룡과 봉추에 관한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유비가 서서라는 사람을 만나 그의 놀라운 학식과 비범한 지략, 그리고 우레와 같은 웅변에 감동하여 그에게 자신의 진영에 남아줄 것을 간청했다. 하찮은 선비인 자신에게 극진히 대우하는 유비에게 감복한 서서가 제갈량을 천거하며 말했다. “제갈공명은 와룡입니다. 장군께서는 어찌 그를 만나보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마침 서서는 제갈량의 친구였던 것이다. 뛸 듯이 기뻐한 유비가 드디어 융중으로 제갈공명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삼고초려(三顧草廬)’라고 불리는 유명한 통과의례를 치른 유비가 제갈량으로부터 처음 듣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천하삼분의 계책’이다. 유비는 제갈량의 조언에 따라 형주와 익주를 얻고 마침내 서쪽 땅을 차지해서 촉한을 세워 천하를 삼분하게 된다. 그리고 삼국지의 후반부 내내 그 힘을 바탕으로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이다. 10여 년을 유랑하고도 별 전과를 올리지 못하던 유비의 기쁨은 이루 형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유비가 제갈량을 얻은 것을 두고 “고기가 물을 만난 듯(如漁得水) 기쁘다”고 한 말은 오늘날에도 회자되고 있다.
다음은 이 때 제갈량이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를 설파한 융중대(隆中對) 또는 초려대(草廬對)라고도 하는 <융중대책(隆中對策)> 전문이다. 삼백 자에 불과한 단문이지만, 제갈량의 전략사상과 책략이 잘 드러나 있다. 유비가 제갈량의 융중대책을 듣고 천하를 얻은 듯 기뻐했음은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5만의 촉오연합군이 20만 조조의 정예대군(나관중은 백만 대군이라고 썼지만 그건 좀 뻥이고)을 격파한 적벽대전은 제갈량이 융중대(隆中對)에서 제시한 전략의 정확성을 입증한 전쟁사에 길이 빛나는 한 획을 그은 전투이다. 제갈량은 적벽대전에서 연환계와 신묘한 동남풍으로 조조를 제압하고 마침내 천하를 삼분하고야 마는 것이다.
“동탁 이래로 호걸들이 사방에서 일어나 주와 군을 병탄한 것이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조조는 원소에 비해 명성도 미약했고 군사력도 적었지만 결국은 원소를 꺾었습니다. 이는 약자가 강자를 이겼으니 이것은 하늘이 그에게 때를 준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모략으로 승리를 한 것에 불과합니다. 지금 조조는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으며, 천자를 끼고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으므로, 정면으로 마주 싸우기는 불가능합니다. 손권은 강동에 웅거하여 삼대에 걸친 터전을 닦았습니다. 험난한 지형과 백성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현명한 사람들을 활용하고 있으므로, 원군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그를 도모할 수는 없습니다.
형주는 북쪽으로 한수와 면수가 흐르고 있으며, 남해로 나아가기가 유리합니다. 또 동쪽으로는 오와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파촉 지방과 통하므로 무력을 활용하기에 좋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주인인 유표는 이곳을 지킬 수가 없으므로 이는 하늘이 장군에게 바탕으로 삼게 한 곳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어찌 이곳을 염두에 두지 않고 계십니까? 익주는 사방이 험난한 지형으로 막혀있고, 기름진 땅이 천리에 이어져 있으니, 천부의 땅으로 고조께서는 이곳을 바탕으로 제업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그 주인인 유장은 암약하여 장로가 북쪽에서 버티고 있지만, 백성은 많고 나라가 부유함에도 불구하고 복지정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있는 선비들은 대개 현명한 군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군은 한왕실의 후예로서 사해에 신의가 알려져 있으며, 영웅들을 모으고 현명한 사람을 목마르게 찾고 계십니다. 만약 형주와 익주를 차지하면 바위처럼 단단하고 험준한 곳을 지키십시오. 또 서쪽으로는 여러 융족(戎族)과 화의를 맺고, 남쪽으로는 이족(夷族)과 월족(越族)을 위무하여 후방의 염려를 없애고, 동쪽으로는 손권과 동맹을 체결하여 조조를 견제해야 합니다. 당연히 내부의 정치에 치중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다가 천하에 변고가 생기면 상장(上將)에게 명을 내려 형주의 군대를 이끌고 완성(宛城)에서 낙양으로 진격하게 하고, 장군은 친히 익주의 군사를 이끌고 진천(秦川)으로 출병하여 장안을 공격한다면, 백성들이 대그릇에 밥을 담고 호로병에 장을 넣어서 장군을 맞이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된다면 패업은 이루어지고 한왕실도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 隆中對策(융중대책)/ 촉서 제갈량전
지금 우리가 처한 형세는 어떠한가. 우리가 만약 유비라면 어디를 형주와 익주로 삼아 천하를 삼분하여야 할까. 만약 우리에게 제갈량이란 지략가가 있다면 그는 분명코 창원과 울산을 형주와 익주로 천거할 것이다. 천하를 삼분할 계책은 바로 창원과 울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교두보로 동남풍을 일으켜 북풍을 제압하라고 융중대(隆中對)를 설파할 것이다.
삼국지의 시대보다 4백 년 전 서양에서는 알프스를 넘어온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침공을 맞은 로마 원로원이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집정관으로 임명하고 나라의 운명을 맡겼다. 그러나 파비우스는 당장 한니발에게 쫒아가 전면적 싸움을 걸기보다 근거지를 지키면서 군량을 축적하고 기회를 살폈다. 전면전을 요구하는 반대파들의 모함과 협박에 굴하지 않던 그가 결국 파면 당하고 로마는 한니발에게 포에니전쟁 역사상 최대의 패배를 하게 된다. 결국 그가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의 근거지 전략은 때와 장소, 조건은 다르지만 동양의 제갈량과 비교할만하다. 십여 년을 전전하고도 별 성과를 얻지 못하고 형주 목사 유표에게 기생하던 유비에게 제갈량은 우선 근거지부터 다질 것을 주문한 것이다.
요즘 같은 좋은 시절에 초야에 묻혀 소일거리나 찾는 복룡이나 봉추는 없다. 교통이 발달하고 통신이 발달한 오늘날 이들은 도처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우리당에는 샛별같이 빛나는 인재들이 은하수처럼 늘어서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천하의 형세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이들은 천하를 삼분하기 위해 어떤 계책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에게 천하삼분지계를 넘어 천하양분지계로 나아갈 책략이 있는 것일까. 그리하여 우리는 동남풍으로 북풍을 제압하고 천하를 도모할 대업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 진정한 복룡과 봉추가 있다면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다.
※ 민주노동당 게시판에 2007년 11월 썼던 글이다.
'시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주노동당 사태, "분열 아닌 새 희망의 전주곡" (1) | 2008.04.22 |
---|---|
오월동주와 민주노동당 (5) | 2008.04.22 |
편법은 곧 부정부패의 온상이다 (3) | 2008.04.22 |
"아, 이대로 가다간 당이 무너지겠구나" (2) | 2008.04.22 |
나는 '자주파'에게 그를 뺏기지 않을 것이다 (4) | 2008.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