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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페인 우승, 실리축구에 대한 토탈사커의 승리

스페인 우승의 원동력, 강하고 빠른 토탈사커
"가장 아름다운 축구의 전형 보여줘!'
 







 
스페인이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스페인은 이번 월드컵 우승으로 그동안 무관의 제왕이란 칭찬 겸 비아냥을 일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관의 제왕. 이 말 속에는 한 번도 월드컵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스페인이야말로 세계 최강의 팀이며 영원한 우승후보란 뜻이 숨어 있습니다.

스페인은 유럽의 힘과 조직력에 남미의 기술을 겸비한 가장 이상적인 팀으로 평가 받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 8강전에서 한국이 스페인을 꺾고 4강에 등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날의 경기는 내용면에서 완패한 경기였습니다.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를 맞아 싸울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경기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2002년, 스페인은 앞서 대결했던 다른 팀들과 확실히 달랐습니다.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를 몰아붙이던 태극전사들은 스페인의 기술과 조직력, 속도 앞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런 스페인에게 한 골도 내주지 않고 승부차기에서 결국 이겼다는 것은 당시 대한민국 팀이 얼마나 강인한 팀이었는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2010년, 역시 스페인은 강했습니다. 화려해 보이기까지 하는 정교하고 빠른 패스로 그라운드를 장악하는 능력은 2002년에 보던 그것보다 더욱 진보했습니다. 마치 농구선수들이 패싱으로 공을 돌리며 상대를 주눅 들게 하듯 스페인 선수들의 몸놀림은 가벼웠습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골문으로 치고 들어가 여지없이 날리는 슈팅.

물론 네덜란드도 강팀입니다. 그들은 스페인에게 패배하기까지 단 한 번도 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네덜란드가 우승했다면 전승 우승이란 금자탑도 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네덜란드는 요한 크루이프 이래 토탈사커를 구사했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이 전술을 배웠습니다. 전원공격 전원수비의 이 압박축구는 현대축구의 대세가 됐습니다.   


덕분에 세계 축구는 엄청나게 빨라졌으며, 선수들의 간격은 좁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는 전통적인 스타일을 버리고 소위 실리축구란 것을 구사했습니다. 실리축구? 해설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지 않고 반드시 이기는 축구를 말한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 좋은 전술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실리축구란 곧 공격보다 수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수비를 탄탄하게 하면서 실점을 피하다가 역습을 통해 승기를 잡는다, 뭐 이런 간단한 전술입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실리축구를 선보인 나라들은 브라질, 파라과이, 네덜란드, 일본 등입니다.  

탄탄한 수비로 실점을 하지 않으면서 역습으로 허를 찔러 득점을 챙긴다는 이 매력적인 전술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는 듯했습니다. 일본도 실리축구로 16강에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실리축구가 뛰어난 상대의 계속되는 공격 앞에선 무너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음도 명확했습니다.  

아무리 맷집이 장사라도 계속 맞다보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대결이 그걸 잘 보여주었습니다. 스페인은 토탈사커의 원조 네덜란드보다 훨씬 발달한 토탈사커로 네덜란드를 압박했습니다. 미드필드를 완전히 장악한 스페인의 계속되는 공격에 네덜란드는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습니다.

물론 무서운 속도와 돌파력을 지닌 로벤의 활약으로 스페인도 몇 차례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네덜란드를 응원하던(두 팀을 다 좋아하면서도 왜 네덜란드가 이기기를 바란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히딩크 때문인 듯) 제 오금이 계속 저렸던 것을 보면 스페인은 분명 무서운 팀이었습니다.  

결국 아무리 수비를 잘해도 뛰어난 팀의 매서운 공격 앞에선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스페인과 독일의 4강전,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결승전에서 확인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선의 공격은 최고의 방어라는 진리를 확인시켜준 경기였습니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공격은 무력했습니다.

실리축구를 구사한 네덜란드와 토탈사커(요즘은 또 점유율 축구라고도 하더군요)의 스페인, 최종 승자는 토탈사커의 원조 네덜란드보다 더 좋은 토탈사커로 상대 진영을 집요하게 압박한 스페인 축구의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관전자의 입장에서도 스페인 축구의 승리가 분명했습니다. 오히려 한 골밖에 먹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네덜란드 축구는 너무나 재미없는 축구였을 뿐만 아니라 실리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이에 반해 스페인 축구는 보기에도 멋진 훌륭한 경기를 했습니다. 자 그럼 대한민국 축구는 어떤 축구를 배워야 할까요? 제가 보기엔 스페인 축구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아하니 스페인 선수들, 한국 선수들과 체격 조건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비록 브라질에 패하긴 했지만(결코 브라질에 쉽게 질 팀이 아니었습니다) 멕시코가 매우 강한 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멕시코 선수들의 체격 조건도 우리 선수들에 비해 그렇게 나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인종적으로도 우리와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토탈사커를 위해서는 기초적인 개인기가 필수적이라고 하지만, 그래서 우리 선수들이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 선수들은 천부적으로 개인기와는 맞지 않으므로 유럽식의 단순한 힘 축구를 해야 한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영표 같은 선수의 개인기를 보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페인처럼 빠르고 정확한 패스로 상대 진영을 흔드는 토탈사커, 빠르게 공격과 수비가 포지션 이동을 벌이며 상대를 교란하는 전원공격 전원수비, 이거야말로 한국 축구가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역방어로 실점을 줄이겠다는 소극적인 전술은 재미도 없을 뿐 아니라 이기기도 힘들고 유능한 공격수들을 만나면 여지없이 깨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겠습니다. 요즘 우리 집 옆 대학교 운동장에 가끔 나가 학생들이 공차는 모습을 지켜보는데요. 와, 저 학생들 혹시 브라질에서 유학 온 친구들 아냐? 하고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정말 발전했더군요. 요즘은 동네 축구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다 한국 축구가 급속하게 발전할 것이란 징조들이지요. 훌륭한 코칭스태프와 제대로 된 전술만 마련된다면, 한국 축구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16강이 아니라 4강, 아니 우승도 넘볼 수 있는 강한 팀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루과이전에서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봤습니다.

다만 문제는 들쭉날쭉한 것인데, 그게 글쎄 왜 그런 건지 모르겠네요. 잘 하다가 갑자기 팍 스러지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