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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신데렐라 언니엔 신데렐라가 없다

은조도 효선도 신데렐라는 아니다. 그녀들은 그저 은조요 효선일 뿐이다 …
기훈과 정우도 왕자는 아니다. 그들도 그저 사연 많고 갈등하는 인간일 뿐 …

신데렐라 언니에 신데렐라가 없다니, 그럼 신데렐라 언니도 없는 거잖아,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그렇습니다. 신데렐라 언니에 신데렐라가 없다니, 말이 안 됩니다. 신데렐라가 있어야 신데렐라 언니도 있는 거죠. 그러나 아무리 봐도 신데렐라 언니엔 신데렐라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혹시 신데렐라 언니가 진짜 신데렐라가 아닐까 생각하는 분까지 생겼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신데렐라 언니 은조(문근영)야말로 이 드라마에서 신데렐라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녀야말로 '재 묻은 소녀'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바야흐로 효모 분야의 1인자가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물론 아직 그녀가 겪어야 할 파란의 고개들이 많이 남아 있겠지만, 그녀의 성공이 확정적인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은조는 신데렐라가 아닙니다. 신데렐라는 일찍 엄마를 여의었지만 다정한 아버지 밑에서 행복한 딸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계모와 의붓언니들에게 모든 행복을 빼앗기고 구박 받으며 고생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신데렐라를 구해줄 왕자님입니다. 왕자님은 어느 날 홀연히 신데렐라와 사랑에 빠지고, 신데렐라와 결혼해 그녀의 행복을 찾아주고, 계모와 의붓언니들을 혼내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그런 왕자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홍기훈(천정명)이 왕자님일까요? 그도 왕자는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선 기훈이 은조 못잖은 갈등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는 그릇된 야심을 갖고 대성도가에 들어왔습니다. 홍회장과 홍기훈의 대화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그는 지금 대성도가에 잠입한 것입니다. 네 잠입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겠네요. 과장법을 쓰자면 간첩이란 말입니다.

"사장님,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반드시 저를 믿으셔야 됩니다." 홍기훈이 대성에게 하는 말로 봐서는 무언가 곧 일이 벌어질 것이고 그에 대비해 내심의 어떤 계획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그게 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홍회장과의 대화에서 "대성도가를 가지게 되면 저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세요" 하는 말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아무튼 홍기훈이 나중에 홍주가에 넘어간 대성도가를 다시 살리는 기적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그는 왕자가 되기엔 뭔가 부족합니다. 왕자는 그 존재의 신비함으로 일거에 신데렐라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지만 홍기훈은 거꾸로 문제와 갈등을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우(옥택연)는? 그는 왕자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백마는 고사하고 우선 자기 몸 하나 지탱할 힘도 없습니다.

그에게 가진 것이라곤 튼튼한 몸과 은조를 향한 일편단심뿐입니다. 어린 시절 먹었던 마음의 집요함은 끝내 해병대를 졸업하자마자 그를 대성도가에 취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는 마치 은조를 위해서만 살기로 결심한 듯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왕자가 될만한 소질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게다가 그는 현재 신데렐라를 태워줄 한 마리의 백마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죠. 심하게 말하면 집착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은조는 신데렐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그녀를 태워줄 백마를 타고 나타날 왕자 따위는 애초에 필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은조는 이미 꽤 탄탄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했으며 상당한 실력을 갖춘 재원입니다. 꼭 대성도가가 아니더라도 그녀의 인생항로는 장밋빛 미래입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토록 내면의 자기 울타리 속에서 갈등하는 은조를 보고 있으므로 그녀가 늘 조심스럽고 위태로워 보이지만, 이미 그녀는 최소한 스물대여섯 살의 나이를 먹은 장성한 하나의 인간입니다. 내 경험으로 보자면 스물대여섯 살의 나이란 세상을 뒤집어엎을 만한 용기와 자신감을 가진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은조는 그만한 자질을 이미 갖췄습니다.

그러니 이미 그녀는 신데렐라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는 신데렐라 같은 나약한 소녀가 아닙니다. 그녀는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럼 효선(서우)이 신데렐라일까요? 이 드라마에서 그녀의 나이는 스물네 살입니다. 그녀가 신데렐라라면 은조는 신데렐라 언니라고 불리는 것이 맞겠지요. 그러나 효선도 신데렐라는 아닌 듯합니다.

스물네 살이나 먹었으면서 아직도 칭얼대며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 그녀는 성장부진아인 것일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모습 때문에 짜증나나 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런 그녀를 이기적이고 가식적이며 가증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재근 블로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분들이 여기에 동의를 표하더군요. 또는 위선이란 표현을 쓰는 분도 계십니다.

나는 신데렐라 언니를 보면서 참으로 묘한 현상을 느낍니다. 은조는 그렇다 치더라도 강숙은 정말 악녀입니다. 그녀가 어떤 사연을 가졌건, 어떤 고뇌로 고통 받고 있건, 딸을 위한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지고하든 그녀는 분명 악녀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런 현상이 생긴 것일까요? 이게 바로 신데렐라 언니의 묘한 마력입니다.

돌을 맞아야 할 사람이 거꾸로 위로 받고 있는 상황, 이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연출자와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 덕분인지, 아니면 연기자의 발군의 연기력 덕분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이미숙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입니다. 문근영도 그저 예쁜 줄만 알았는데, 이번 신데렐라 언니로 일약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게 될 태세입니다.

신데렐라 언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하나씩의 사연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성인처럼 행동하는 구대성, 엄마 잃은 소녀 효선, 호부호형 하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처지의 홍기훈, 이들의 사연은 들어보면 눈물 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은조와 은조 엄마 강숙의 사연이란 두 말하면 잔소리입니다. 효선 외삼촌의 사연은 또 어떻습니까. 그에게도 고민이 많습니다. 그는 왜 가짜 술을 만들어 대성도가를 위기에 빠뜨렸을까요?

아마 어쩌면 강숙과 은조가 대성도가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너 내가 죽고 나면 어떻게 살래? 내가 없어도 네가 여기 계속 있을 수 있을 것 같니?" 효선 외삼촌에게 대성이 걱정스러워 던진 이 말을 효선 외삼촌은 모르고 있었을까요? 이건 생존과 관련된 문제인데, 강숙과 은조가 들어온 이후 효선 외삼촌이 이 문제로 고민했을 것임은 자명합니다. 

그러니 그의 사연도 참으로 기구한 것입니다. 물론 효선 엄마가 일찍 죽지 않고 강숙과 은조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나쁜 짓을 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깊은 것은 일단 따지지 말기로 합시다. 자, 다시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효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효선에겐 분명 이중성이 있습니다. 계모의 본심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은조 언니에 대해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은 마음과 은조에 대한 질투심과 복수심으로 갈등하는 것도 그녀의 이중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효선과 똑같습니다. 사람은 거의 이중적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찾으라고 한다면 그는 아마도 예수님이거나 부처님이거나 마호메트일 것입니다. 은조는 어떨까요? 그녀도 이중적입니다. 그녀 역시 현실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우리는 지금 신데렐라 언니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신데렐라가 아니라 신데렐라 언니, 즉 은조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므로 은조의 감정에 많이 동화되고 있지만 은조도 분명 이중적입니다. 그녀는 엄마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싫지만 그녀를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해는 묵인으로 나타나고 그건 일종의 동조요 공범의식이라고 내가 일전에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은조의 효선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조는 힘겨웠던 과거 탓인지 자기 본심을 드러내는데 매우 인색합니다. 사랑 받을 준비도 안 돼 있고 사랑을 줄 준비는 더욱 없습니다. 그녀는 자기에게 베푸는 대성과 효선의 사랑을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효선의 사랑이 반대급부를 전제한 것은 맞지만, 그런 것조차도 받아들일 여유가 그녀에겐 없습니다. 대신 그녀는 늘 떠날 때를 준비합니다.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기 위하여 애초에 정든 탑 따위는 만들지 않겠노라고 결심한 듯이 보이는 그녀입니다. 이런 은조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불필요한 기대를 만들어 더 큰 실망을 안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은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군요. 자, 다시 효선이 이야기를 해보지요. 그래서 효선의 이중성도 용서받지 못할 정도는 아니란 겁니다.

효선은 이제 서서히 주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녀의 속에 든 그녀의 실체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실은 그녀의 속에 든 그녀를 찾도록 효선을 부추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은조입니다. 그리고 기훈이 그 일을 돕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효선은 허약하고 무능한 신데렐라의 껍질을 벗고 하나의 인격체로 거듭나려고 하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효선에게도 은조에 비견할 장기가 있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탁월한 외교능력을 가진 듯합니다. 그건 어쩌면 그녀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천성적으로 활달한데다가 어려서부터 주변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살아온 그녀의 환경, 그것이 그녀의 성격을 형성했을 터입니다. 반면에 은조는 혼자 지내길 좋아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술독은 조용한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술독을 안고 있을 때 들리는 뽕뽕거리는 발효 소리는 그녀가 뛰어난 미생물학자가 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녀는 그 분야에서 거의 일가를 이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은조가 이렇게 성장할 동안 효선이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지만, 그녀에게도 숨겨진 장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장기는 은조와는 달리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제 곧 효선이도 자기를 찾을 것입니다. 

자, 그래서 효선이도 더 이상 신데렐라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녀도 곧 더 이상 왕자 따위는 필요 없는 독립된 인격체가 될 것이란 사실은 이미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도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애초에 제기했던 문제, 신데렐라 언니엔 신데렐라가 없다는 주장에 대한 이상의 논증이 그렇게 엉터리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럼 은조와 효선은 뭘까요? 그녀들은 얼마든지 신데렐라가 될 수 있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 커리어우먼들이죠. 은조는 훌륭한 장인으로, 효선은 뛰어난 사업수완가로 성장해서 마침내 힘을 합쳐 대성참도가를 대한민국 최고의 도가공장으로 만든다, 뭐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 도정에 기훈과 정우의 조력이 빛을 발하겠지만, 그녀들에게 왕자 따위는 필요 없다, 뭐 그런 이야기도요.

그렇게 생각하니 신데렐라 언니에 신데렐라가 없어도 하나도 슬프지가 않군요. 오히려 은조와 효선이 자기 속의 자기를 꼭 찾아 진정으로 독립된 인격체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뿐입니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이 드라마는 틀림없이 해피엔딩일 것으로 믿습니다. 어쩌면 은조와 효선은 우리의 이중적 모습인데 그걸 어떻게 하나로 잘 보듬을지 보여주려는 게 이 드라마의 의도한 바가 아닐까 생각해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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