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밥을 먹다가 아내에게 물어 봤습니다.
“세상도 하 수상하고 복잡한데, 뭐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없을까?”
저는 요즘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부장에게 낚인 이래로 하루에 하나 이상은 포스팅을 해보자는 각오로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그것도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열심히는 하고 있고, 재미도 느끼고 있습니다. 남들이야 뭐라 하든지 본인이 재미있으니 일단 출발은 성공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테지요.
요즘 부쩍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장애인들은 복지예산을 삭감당해 거리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고, 인기 연예인들의 자살 사태가 줄을 잇고, 방송장악음모 등 여론통제에 열을 올리던 이명박 정부는 이때다 싶어 <최진실법> 같은 해괴한 수법으로 국민들을 벙어리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다 나라경제는 꼴이 말이 아닙니다. 경제에 관해서는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아예 나라경제를 ‘갱제’로 말아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오십 보 백 보인 듯싶습니다. 완전 속았습니다. 할인마트에서 싸다고 산 생선이 포장지를 뜯어보니 완전 썩었을 때와 심정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요사이 제 블로그도 온통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들로 가득 찼습니다. 제 마음도 별로 유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음~ 그라모, ‘설거지를 마치며’ 이런 건 어때? 마누라를 위해 설거지를 하면서 느낀 단상 같은 걸 한 번 적어 보는 거야. 박노해 시인이 ‘이불을 꿰매며’란 시를 썼던 것처럼 말이야.”
참 나, 여성단체 일꾼 아니랄까봐, 직업의식이 만점입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별로 나쁘지 않은 의견입니다. 예전에 어떤 가수가, 이름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거 왜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 주제가 부른 가수 있지 않습니까? 그분이 불렀던 노래 중에 ‘그릇을 깨자’란 노래가 있었지요. 그 노래 가사도 아내를 도와 설거지 좀 하자, 뭐 그런 얘기 아니었을까요?
저의 20대와 30대를 즐겁게 해주었던 최진실 씨의 죽음을 보면서, 가정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걸 새삼 느낍니다. 그래서 아내의 제안이 단지 별로 나쁘지 않은 제안을 넘어, 매우 소중한 金言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설거지를 하며 느낀 단상을 시로 만들어 전해 드릴 만큼의 재주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냥 박노해 시인의 ‘이불을 꿰메며’ 란 시를 소개해드리는 걸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사랑과 행복이 충만한 가정이 되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아울러 가끔 설거지도 도와주며 펴진 아내의 허리도 한 번씩 안아볼 수 있는 그런 남편들이 되어보시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저부터 실천해야 하는데, 사실 그거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행복해 질수만 있다면야,
“그깟 설거지가 뭐라꼬….”
2008. 10. 5. 파비
박노해, 본명은 기평
<박노해는 노동자 시인이다. 김문수(한나라당), 심상정(진보신당) 등과 함께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결성에 참여했으며, 이후 사노맹을 결성하면서 혁명조직운동가로 변신한다. 그러나 무기징역을 살다가 가석방 된 후에는 김지하 시인과 함께 ‘생명운동’에 몰두하면서 과거의 동지들로부터 변절자란 비난을 듣기도 했다. 또 레바논과 이라크 등지를 돌며 평화운동에도 앞장섰다. 과거 어린 시절, 그를 본 적도 없고 더구나 그의 과격한 노선에 동의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시 만큼은 심금을 울려주는 무엇이 있었다. - 필자 주>
이불을 꿰매며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달라 물달라 옷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 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 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둔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근로자였었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모범표장이
고양이 꼬리에 매단 방울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 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의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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