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마지막 일요일, 가을소풍을 갔다. 섬진강 가에 있는 평사리 공원이다. 진보신당에서 미리부터 준비한 소풍이었다. 날씨는 별로 좋지 않았다. 비가 올듯 말듯하며 사람을 짜증나게 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나와 보는 야외의 신선한 공기는 도심에 찌들린 가슴을 후련하게 열어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거기다 지리산을 돌아내려오는 섬진강변이 아니겠는가. 지리산을 감싸 안았던 노고단 운무의 이슬 한 방울도 아마 저곳에 내려있을 것이다. 저 멀리 금빛 모래가 지천으로 깔린 강변에서 낚싯대를 줄을 세워 드리워놓은 채 뛰어노는 가족들이 아련하게 일렁거렸다. 날씨가 조금만 도와주었다면 정말 푸근한 휴일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그 가족들의 평화로운 일렁거림이 해소시켜주는 것만 같았다. 역시 강변의 공기는 맑고 시원했다.
나비들은 이꽃 저꽃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꽃도 나비도 무척 행복한 순간이다.
강변을 거닐다 문득 풀밭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나비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다가가 보았다. 나비들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 다니고 있었다. 벌도 한 몫 가세했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왜 나는 진즉에 이런 장면을 보지 못했을까? 마산이 도시라고는 해도 그래도 잘 찾아보면 나비와 벌과 그리고 꽃들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은 역시 도시다. 치열한 생존의 현장, 경쟁과 공존이 함께 존재하는 도시가 바로 내가 사는 곳이었던 것이다. 세속적인 ‘생활의 발견’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도시가 이런 신비한 ‘생명의 발견’까지 허락할리가 없었다. 그러나 도시를 벗어나 세속으로부터 멀어지니 이런 아름다운 자연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꽃이 참 행복하겠다. 여치와 나비란 놈을 함께 거느리고 있다. 나비만 꽃을 사랑하는 건 아니다. 벌도 구애에 바쁘다.
너무나 포근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아까워 예쁜 꽃보다 훨씬 예쁜 우리 딸에게 포즈를 취해보라고 부탁했다. 뒤로는 꽃무릇이 흐드러지게 단체로 피어있었다. -얼마 전에서야 나는 이 꽃 이름이 꽃무릇인 것을 실비단안개님을 통해 알았다.- 그렇지만 어디 감히 천하절색 우리 딸과 비교할 수 있으랴.
그런데 그렇게도 예쁜 우리 딸은 사진기 앞에만 서면 왜 안면 포즈가 이 모양인지... 그 장난기를 아는 내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까지 헤아려도 이미 그 작전을 훤히 꿰뚫고 있는 이 여시는 셔터 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절대 인상을 풀지 않는다. 그래도 예쁘기만 하다. 고사에 보면 서시가 찡그린 표정만 지어도 여러 사내가 죽어나갔다고 했던가.
요즈음 별로 재미있는 일도 없던 차에 다시 한 번 팔불출이 되어 본다. 그래도 행복하기로야 팔불출만한 인생이 또 있겠는가?
침어浸魚와 효빈效嚬의 고사를 남긴 서시가 한 번 찡그리기만 해도 여럿 죽었다고 하던데...
2008. 9. 30.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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