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참 오랜만에 성당에 갔습니다. 미사에 마지막 참례한 것이 무려 5년도 훨씬 전의 일이니 오랜만이라도 한참 오랜만이지요. 무리하게 일을 벌려놓고 객지로 몇 년 동안 돌아다니다보니 주님도 교회도 까먹고 살았나 봅니다. 우리 아들놈은 그래도 성당에 참 열심히 다녔습니다. 주일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미사 때 하얀 복사 옷을 입고 신부님을 보좌하기도 한답니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녀석도 이제 다 컸구나 하며 대견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마음 한 켠은 문득 스치는 늦가을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이제 녀석도 어느덧 품안의 자식이 아닌 게지요.
오르간에 맞춰 부르는 성가대의 음악소리는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슴을 안아주는 천상의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꿈결 같은 사제의 기도소리, 성체와 성혈을 모실 때 치는 낭랑한 종소리는 정말 어릴 적 고향집 마당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미사는 여전했습니다. 여전한 경건함과 포근함이 성당 안의 모든 사람들 위에 살포시 내려앉으며 평화를 축원해주는 듯했습니다. 특별한 설교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은혜의 역사가 없어도 무수한 전통과 교감하는 미사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은총과 사랑과 평화를 나누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은 예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월남성당 마당의 성모자상
오늘의 복음은 마태오복음 18장 15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이었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단둘이 만나 타일러라.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두 셋이 다시 가서 타일러보고 그래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 해결하도록 하라.”는 말씀이 요지입니다. “만약 공동체인 교회의 설득에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다른 민족이나 세리처럼 여기더라도” 이미 너희 탓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신부님께선 강론에서 이 복음을 이렇게 해석하셨습니다.
“사람에겐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보통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무관심'이란 것이다. 그게 교회의 가르침이다. 아무리 미운 형제가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함께하고자 노력해야한다. 포기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가장 무서운 적은 무관심이다.” 아마 이런 정도의 말씀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성당에 돌아온 저를 알아보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언제 어디에 있건 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교회의 관심과 연대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던 끊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제게 보여주려고 하신 말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를 보신 적이 없는 신부님은 저를 알아보시지 못하실 터이므로 그저 제 감상에 불과한 이야기입니다.
월남성당 입구 게시판에 붙어있던 그림을 찍었습니다. 그림 속 신부님 모습이
꼭 주임신부님을 닮았네요. 큰수녀님과 작은 수녀님도 금방 알아볼 수 있겠습
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대단한 화가시군요.
그러나 교회의 교우들만이 아니라 교회 밖의 어렵고 힘든 사람들, 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목소리도 내시고 싸우기도 하는 신부님의 모습을 간간이 보아왔던 저로서는 그 말씀이 정말 저를 위해 하시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오늘 참으로 오랜만에 하느님의 품에 돌아와서 정말 고귀한 진리를 얻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란 정의 말입니다. 무관심은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란 사실 말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나와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진리를 오늘 새삼 깨달았습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푸근한 가을 하늘입니다.
2008. 9. 7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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