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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이런저런이야기

일제고사에 얽힌 비리의 추억

"열려라 라지오" 진행자, 김용택 선생님

지난 일요일 가을소풍을 가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탔는데 웬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더군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는데,  다름 아닌 김용택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니겠어요?  아마 시간이 여덟시 십분 쯤 되었을 거에요. 마산MBC의 <열려라 라지오>라는 프로였지요.

선생님께서 라디오 프로를 진행하시는 줄 몰랐는데 참 반갑더군요.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 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겠지요.

옛날 이야기였는데요. 선생님의 초등학교 교사 시절, 아마 그땐 제 기억으로도 요즘 말 많은 일제고사 같은 걸 자주 봤었지요. 그런데 어떤 반이 평균 이상으로 성적이 늘 좋았다는 거여요. 그래서 다들 부러워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는데, 하루는 다른 선생님이 그 반 옆을 지나다가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는 것이지요.

그 반 선생님이 성적이 좋지 않은 몇몇 학생들을 불러다가 “야,  너희들은 내일 학교에 오지마라,” 하고 지시를 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 다음날은 요즘 이명박 정권이 다시금 부활시키려고 하는 바로 그 일제고사를 치는 날이었거든요.

어떻게 선생님이 학생더러 학교에 오지말라고 할 수가 있는 걸까요?

그러다 제 머릿속에서도 흑백필름에 담아두었던 수북히 먼지에 쌓인 옛 기억이 다시금 돌아가기 시작하는 거 아니겠어요? 제게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비슷한 추억이 있었거든요.

제가 시골 국민학교 4학년 때였어요. 그때 우리 반 선생님은 키도 크고 참 잘생긴 분이었어요. 성함은 말씀드리기가 매우 곤란하다는 거 잘 아시죠? 그래도 정히 궁금하시다면 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성씨고 함자는 꽤 유명한 전통술 이름을 생각하시면 될 거에요.

그 선생님이 얼마나 열성적이었느냐 하면 말이죠. 우리 반 학생들 중 석차가 손가락 안에 드는 애들은 매일 당신 집으로 불러 밥도 해먹이면서 과외를 시켰단 말이죠. 저야 과외라는 말을 도시에 나와서야 알게 됐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무료 과외였어요. 저도 그 무료과외의 영광을 받았음은 물론이에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때도 일제고사 같은 걸 자주 봤었는데요.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치는 시험, 군에서 실시하는 시험, 도에서 실시하는 시험, 참 시험을 자주도 쳤었던 거 같아요. 유달리 그해에 시험을 많이 봤었던 거 같기도 하고요.

우리 반은 늘 1등이었어요. 반별 평균점수를 내서 등위를 매기는데 우리 반은 늘 1등이었을 뿐아니라 나중엔 반 평균이 80점을 넘어가더니 마침내 90점을 넘었겠지요.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고요. 그 정도면 군에서도 1등 먹고 나아가 도에서도 1등 먹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세상에 학급 평균성적이 90점 넘어가는 학교 보셨어요?

제가 바로 그 자랑스러운 학교 출신이죠. 그런데 그 비법이 무언지 아세요? 다름 아닌 무료과외에 있었던 거여요. 공부 잘하는 몇몇을 불러다 저녁 해먹여가며 밤늦도록 과외 시킨 보람이 있었던 거지요. 바로 그 과외 받은 소수정예가 시험을 칠 때 각 분단별로 적절히 분산 배치되는 거지요. 그리고 이들이 컨닝페이퍼가 되는 거에요.

여러분은 그런 경험 해보시지 않으셨나요? 어렵사리 푼 시험지를 남에게 보여주어야만 하는 참담한 심정 말이에요. 나중엔 시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앞뒤로 시험지를 바꿔가며 답을 달아 주어야 했어요. 정말 중노동이었지요.

그런데 이 정도로도 성적은 학급평균 90점이란 마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고, 결국 선생님은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쓰셨어요. 시험 치고 나면 쉬는 시간이 10분이 있잖아요? 우리는 그 10분도 쉴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께서 마치 스파이작전이라도 펼치듯이 교무실에서 빼온 정답을 받아 적어야 했거든요.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 반은 마의 90점 벽을 넘어서고야 말았지요. 정말 대단한 쾌거였지요. 그러나 아무리 정답을 가르쳐줘도 엉뚱한 답을 적는 개성있는 친구들은 꼭 있기 마련이죠. 그런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반 학생들이 우등상을 받기 위해 교단 앞에 늘어선 장면을 한 번 상상해보세요.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 담임선생님은 장학사님으로부터 양복을 한 벌 얻어 입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도교육청에서도 상금으로 5만원인가 받았다고 하고요.(모르긴 몰라도 당시 5만원이면 우리 아버지 월급보다 많았을 걸요?)

그래도 저는 꽤 공부를 하는 편이었는데 반 평균이 90점을 넘어가고 서너 명 빼고 전부 우등상 받고 그러니까 갑자기 초라해지는 기분 있지요? 우등상이 상이 아니더군요.

저의 모교 전경. 그 시절엔 건물 머리에 "유신교육의 해" 같은 선전문구가 붙어있었죠.


김용택 선생님의 <열려라 라지오>에서 일제고사와 관련된 선생님의 경험담을 듣다가 괜히 먼지만 풀풀 나는 흑백필름을 다시 돌린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재미 없으셨죠? 사실은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안 되겠지요. 교육개혁을 부르짖는 훌륭하신 많은 선생님들의 어깨에 힘 빠지게 만드는 이야기잖아요.

그래도 우리 담임선생님에 비하면 김용택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그 선생님이 그나마 신사적이었던 건 아닐까요? 아니, 그래도 학생을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선생님이 더 나쁘다고요? 글쎄요. 저도 어느 쪽이 더 신사적인지 또는 더 나쁜 것인지 가늠이 잘 안되는군요.

사회에 나와서도 어쩌다 가끔 그 선생님 생각이 나곤 했어요.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요? 아마 정년퇴직하신지도 꽤 되셨겠지요.

참, 그리고 그해는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게 총 맞아 돌아가신 바로 그해이기도 했어요.

2008. 10. 2.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