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시 진전면 오서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차를 세워 놓고 권환 시인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시골길을 걸었다. 마산에도 이처럼 한적한 시골길이 있었던가. 길 양옆의 들판에는 보리밭이 푸른 물결을 출렁이고 있었다. 푸른 물결 속에 간간이 보이는 유채꽃이 노오란 빛으로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반가운 동지들 그리고 가족들과 오랜만에 걸어보는 이 한가로운 시골길이 너무나 정겨웠다.
시골길 한쪽으로 돌아 조그마한 언덕에 오르자 안동 권씨 납골묘가 거대한 왕릉처럼 눈에 들어왔다. 그 한 쪽 옆에 권환 시인과 그의 부인이 나란히 잠들어 있었다. 지역의 문인들이 정성을 들여 권환 시인의 묘지 앞에 비를 만들어 놓았고 거기에 권환 시인의 일대기가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카프문학의 거장 권환. 아! 바로 이 분이 옛날 중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잠깐 보았던 바로 그 분이었던가. 임화와 더불어 일제시대의 모진 풍상을 겪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로 그 분이었던가. 새로운 감회가 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잠들어 있는 역사를 이제껏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니.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현재 마산시). 권환 선생의 생가 터는 웅대했을 집은 다 스러지고 집터만이 덩그러니 남아 옛 시절을 말해 주고 있었다. 권환 선생이 태어나고 뛰어놀았을 자리에는 사람 대신 상추며 마늘이며 나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권환 선생의 당질(5촌 조카) 되시는 권택임 옹은 선생의 생가 터를 소개해 주시는 중에도 옛 기억이 새로운 듯 눈빛을 반짝이며 열심이셨다. 덩그러니 남아있는 터만 일견해 보기에도 꽤 규모 있는 부잣집이라고 느껴졌다. 권환 선생의 부친인 권오봉 선생은 이곳에 사시면서 경행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기에 모든 힘을 다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경행학교에서 뜻을 세운 수많은 지사들은 삼진 독립만세운동으로 그 불꽃을 태웠을 것이다.
경행재(경행학교) 뜰에 서있는 권오봉 선생과 권환 시인의 기념비를 바라보며 <삼진 독립만세운동>의 발상지가 바로 이곳 경행학교였을 걸 생각하니 숙연함이 절로 일었다. 대지주이면서도 경행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가르치고 민족정신을 일깨웠던 권오봉 선생의 제자들이 삼진 지역의 독립운동의 기둥들이 되었음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재교 선생 등 내노라하는 독립지사들이 모두 경행학교 출신들이다. 경행학교를 중심으로 이 지방에 많은 선각자들이 배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봉건시대와 일제의 수탈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권환 시인도 경행학교에서 지주의 아들인 자신의 신분을 넘어 민중의 정신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얄궂어서 언제나 좋은 쪽으로만 씌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힘 있는 자들에 의하여 이리저리 휘갈겨지는 것이리라. ‘곡안리 학살사건’과 이후의 ‘왜곡된 현대사’가 이를 웅변해주고 있지 아니한가. 경행재의 유래를 설명해 주시던 권택임 옹은 스스로 안동 권씨로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면서도 오도된 역사에 대한 분노를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자세히 들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노 대통령 영부인 권 여사의 부친(권오석)도 이 곳 출신인 듯 경행학교의 복원에 별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대통령에 대한 불만도 잠깐 표출하셨다.
‘일본제국주의 – 경행학교 - 삼진 독립만세운동 - 카프문학의 거장 권환, 임화 - 좌파 독립운동 – 해방 - 곡안리 학살사건 - 오도된 역사(권오봉 선생, 경행학교, 권환 선생 등의 이름은 공식적인 역사에서 빠졌다.),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리 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그 분들이, 경행학교가 다시 제자리를 찾도록 힘쓰는 일은 함께 경행재 마루에서 김밥을 나누어 먹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고향 마산을 물려주는 일이라고, 아지랑이가 일렁이며 피어오르는 따사로운 봄날 진전 오서리 마을길을 정다운 사람들과 어울려 걸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송창우 선생 같은 뜻있는 지역의 문인들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마침 경행재 마루에서 송창우 시인과 배대화 교수로부터 경행재와 권환 시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을 때, 경북 지방의 안동 권 씨 일족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자기네 집성촌의 경행재를 둘러보기 위해 왔다. 그 분들은 우리가 보여주는 관심에 매우 고마워하며 한참이나 우리 행사를 지켜보기도 하고 배 교수님이 준비한 자료를 얻어가기도 하고 누구들이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곁눈질로 머리에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경북에서 내려 온 안동 권 씨들을 보며 저 분들은 이곳에 살던 자신의 선조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고 강의 중인 선생님 몰래 잠깐 머리를 굴려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심경애와 송창우 부부, 두 분이 살고 있는 진전면 골짜기 속에 자리 잡은 집 구경을 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두 개의 영혼이 아름다운 경관과 정신이 숨 쉬는 곳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구나’ 하고 느꼈다. 무척 부럽기도 했다. 정말 좋은 하루였다. 날씨도 너무 좋았다. 함께 가기로 했다가 당일 몸이 아파 못 오신 우리 애 엄마와 함께 일하는 친구 분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권환 시인은 생전에 전투적인 시들을 주로 쓰셨지만 이 시처럼 서정적인 시도 가끔 쓰셨다고 한다. 옛날 마산 진전 마을에는 느티나무 숲과 목화밭이 무성했다는데 지금도 간간이 느티나무 숲이 보인다. 권환 선생은 일제 경찰에 의한 수차례의 피검과 옥중 생활로 얻은 폐환으로 1954년 이곳 오서리 마을, 고향에서 영원한 안식에 드셨다고 한다.
<고향>
권 환
내 고향의
욱어진 느티나무 숲
가이없는 목화밭에
푸른 물결이 출넝거렸읍니다.
어여쁜 별들이 물결 밑에
진주같이 반짝였습니다.
검은 황혼을 안고 돌아가는 힌돛대
당사(唐絲)같은 옛곡조가 흘러나왔읍니다.
꿈을 깬 내 이마에
구슬같은 땀이 흘렀습니다.
/ 봄볕이 따사로운 어느 일요일에,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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