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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이런저런이야기

이명박요? 하나님이 그래 지어놓으신 걸 우짤깁니꺼?

필요한 자료를 찾아볼 게 있어 도서관에 들렀다 나오는데 입구에서 아주머니들이 차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면서 일부러 쫓아와서 한 잔 하라며 건넨다. 시원한 생강차다. 그러지 않아도 도서관 1층에 있던 문화전시장이 폐쇄되고 거기에 마산시보건소장과 직원들 사무소가 들어오고 북적거려 짜증나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차를 마시려니 아주머니 한 분이 팸플릿과 물티슈를 나누어주며 말을 건넨다.

“교회 안 다니시면 우리 교회 한 번 나와 보세요.”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다. 내가 잽싸게 말을 끊었다.

“아주머니. 수고 많으신데요. 이런데 나와서 이러실 게 아니라 이명박이나 정신 차리도록 기도 하이소. 요즘 이명박이 땜에 기독교가 개독교 소리 듣는 거 모릅니꺼?”

“하나님이 사람을 그래 지어놓으신 걸 우짤낍니꺼?”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거들었다.

“아지매들 선교운동 한다고 이래 고생해봤자 뭐 합니까? 높은데서 헛지랄 한 번 해버리면 말짱 도루묵인데. 아지매들 고생한 거 이명박 쇼 한 번 하고 나면, 천만 명이 개독교라고 욕하는 걸로 돌아온다 이말 아닙니까.”

“그러니 교회에 돌아가셔서 제발 이명박이 정신 좀 차리라고 하나님께 기도 올리는 게 훨씬 선교에 보탬이 될 겁니다.”

타박을 줘놓고도 돌아서려니 미안했다. 생강차까지 한 잔 얻어먹고 할 소리가 아닌 듯싶었다. 그렇지만 어쩌랴. 이게 다 대통령 잘 못 만난 탓이다. 사람 하나 잘못 뽑아놓으니 나라가 온통 난리법석이 아니냐 말이다.

속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그들이 누구를 대통령으로 찍었는지는 정녕 알지 못할 일이다. 그럼에도 개신교 신도들이니 당연히 자기네 장로를 찍지 않았을까 하는 야속한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속 좁은 인간이다. 차나 한 잔 얻어먹고 말 일이지 무엇 하러 선교에 열심인 기독교 신도들 앞에서 이명박 타령은 늘어놓았을까?

지난 대선 때 일이 생각났다. 그 날은 하루 종일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늦도록 집에서 뒹굴다가 투표 마감시간이 다돼서 아내와 함께 동사무소에 가서 투표를 했다. 그리고 바로 집에 올라와 TV를 켜니 이명박이 당선됐단다. 금방 투표하고 왔는데 이명박이 압도적으로 당선됐다니 기분이 영 말이 아니었다.

“에이, 소주나 한 잔 해야지.”

슈퍼에 가려는데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아는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야, 부권아. 너 지금 좀 나와라.”

“형님. 왜 그러십니까?”

“야, 잔말 말고 나오라면 나와 임마.”

무슨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마침 잘됐다 싶어 옷을 주워 입고 택시를 탔다.

“야, 나 집 나왔다.”

엥? 이건 또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란 말인가? 도대체 형님이 나이가 몇인데 가출이라니….

“아 씨 오늘 선거일인데도 우리는 공장에 출근해서 일하고 왔잖아. 공휴일이라도 무급이니까. 그런데 아 이거 젠장…, 마누라가 장모님 손잡고 투표장에 가서 이명박이 찍고 왔다고 밥상머리에서 떠들잖어. 아 그래서 열 받아서 확 엎어버리고 나와 버렸어.”

이 선배의 부인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당시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의 노골적인 이명박 장로의 당선을 기원하는 기도와 설교가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였던 터라 안 봐도 뻔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엄연히 종교의 자유도 정치의 자유도 보호받는 나라다.

“형님, 그렇다고 그러시면 됩니까? 형수님 의견도 존중하셔야 되는 거지요.”

“야 물론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편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이렇게 피똥 싸고 있는데 말이야. 그리고 무슨 정치적 소신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다 안다. 지들 기독교 장로라니까 무조건 찍어주는 거지.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찍었으면 찍었지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 거 아냐.”

그 형님은 나와 함께 이틀을 여관에서 자다가 결국 다시 집으로 들어갔고, 지금은 또다시 열심히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다. 부부싸움은 원래 물 베기라고도 하지만, 우리에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대통령 일을 가지고 오래 간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리고 이번 여름에 그 형님과 우리 가족이 함께 남해안 해수욕장에 1박으로 피서를 다녀왔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이들 여섯 명은 이명박 놀이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시끄럽기는 했지만 노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거니와 정말 신기했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땐 어디 감히 대통령 함자를 함부로 부를 수 있었던가. 반드시 각하를 뒤에 붙여야 했음은 물론이다. 만약 그리하지 아니하다 발각되면 바로 영창 간다고 했다.

그련데 나는 영창이 무서워서가 아니고 형수님이 무서워서 안절부절 했다. 그러나 막상 형수님은 앞자리에서 눈을 꼭 감고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그 형수님이 결국 참지 못하고 일갈했다.

“야 이놈들아. 니들 자꾸 그러면 혼난다. 집에 가서 회초리 맞을 준비들 해라. 어디 감히... 대통령님은 나라의 아버지 같으신 분인데. 어떻게 아버지한테 그런 되지도 않는 쌍소리를 한단 말이냐.”

일순 아이들이 잠잠해졌다. 그러자 뒷자리에 앉아있던 선배가 조용히 말했다.

“에이~ 아버지는 아니지.”

조용하던 아이들은 다시 힘을 얻어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아마도 두 사람은 평화를 위해 나름 무척 노력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형수님께선 촛불 때문에 의기가 소침해진 탓도 있을 터이다.

도서관에서 돌아와 이글을 쓰면서도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아까 생강차를 나누어주던 아주머니가 하신 말씀 말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래 지어놓으신 걸 우짤낍니꺼?”

도대체 그 지어놓은 사람이란 것이 보통명사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명박이란 고유명사를 말하는 것인지, 또 그렇게 지어놓았다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인지, 잘 만들었다는 것인지 못 만들었다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왜 그 자리에서 물어보지 않았을까 후회가 된다.

             장애인 복지예산 삭감에 항의해 한나라당 안홍준 국회의원 사무소 앞에서 삭발농성하는 장애인들.
             플랑카드 위쪽에 "독도.. 끝까지 지키겠습니다!"란 구호가 적혀있다. 독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
             만 먼저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의 복지와 인권부터 지켜주는 게 순서 아닐까? 내가 보기엔 독도
             지킨다는 말도 헛말로 들린다. 제 국민 하나 못 지키면서 무슨... 
             <자료사진; 경남도민일보 우귀화 기자, 9월 22일자 관련기사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은 우리 목숨">

뉴스를 보니 온통 정부가 세금을 깎아준다는 기사 천지다. 무엇이든 깎아준다면 좋은 일일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국민들은 불안과 불만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부자들에겐 돈을 벌고 재산을 관리해야 하는 고충을 충분히 헤아려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깎아주고 가까운 시일 내에 아예 폐지해 버리겠단다. 18만 가구가 혜택을 본단다. 그바람에 2조 2300억 원의 세수가 줄어든단다. 덕분에 지방재정이 파탄 날 것이라고 걱정들이 대단하다.  

그래서 대신 부족한 세금을 서민들의 재산세율을 올려 보충하겠단다. 아울러 복지예산은 대폭 축소해 불필요한 돈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겠단다. 그 첫 신호탄으로 장애인 활동보조인 예산을 팍 깎아버렸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장애인을 가장 먼저 보살피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독실한 기독교 장로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가난한 자와 장애인들 살아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게 되었으니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하느님 도대체 이일을 우짜실 깁니꺼?”

2008. 9. 23 추분,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