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경, 참 오랜만이군요. 신은경은 한때는 좋아하기도 하다가 또 한때는 싫어하기도 한 그런 연기자였습니다. 아니, 조폭마누라에서의 신은경은 제겐 별로였습니다만 나머지는 대체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조폭마누라에서가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신은경은 매우 특이한 캐릭터를 가진 연기자로 제게 기억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우선 생김새부터가 그렇죠. 어떨 땐 공주처럼 보이기도 하다가 또 어떨 댄 선머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매우 강렬한 카리스마를 풍기다가도 어떨 땐 아주 귀엽습니다.
뭐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운 건 사실이네요. 이거 뭐 잘 아는 지기도 아닌데 반가운 척 하려니 좀 거시기 하긴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욕망의 불꽃에서 신은경이 보여줄 윤나영은 실로 신은경의 카리스마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역이란 사실을 똑똑히 보여준 첫회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애가 죽었다는 소리에 눈을 부릅뜨고 눈물을 흘리는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습니다. 윤나영(신은경)은, 그녀의 말에 의하면 '애비도 모르는 자식'을 임신했습니다. 애비도 모르다니? 저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눈을 부릅뜨고 똑똑히 화면을 지켜보았지만, 그런 장면은 없었거든요.
버스회사 사장 아들 이세창이 윤나영의 첫사랑 박덕성으로 나오는군요. 그러고 보니 이세창도 참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왜 이렇게 늙었을까요? 왕년의 미소년 이세창은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군요. 하긴 나하고 몇 살 차이도 아니니 그럴 만도 하지요. 저는 사실 거울 보면 더 심하거든요. 머리 환경도 엉망이고.
암튼^^* 실례~
이 박덕성이란 친구가 윤나영의 애인인데요. 윤나영을 그냥 노리개감으로 데리고 놀았던 모양이네요. 떼낼려고 깡패들을 고용했나봅니다. 박덕성과 헤어진 윤나영이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가다가 이 깡패들을 만난거지요.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여러 명의 깡패들 앞에서 어쩌겠어요?
발로 차고,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고, 배를 걷어차고, 난리도 아니었지요. 윤나영, 정말 독한 여자였습니다. 그 와중에도 깡패 한놈을 부여잡고 다리를 이빨로 물어뜯더군요. 휴~ 그러나 결국 깡패들의 구두발에 윤나영도 그로키가 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 다음 깡패들은 쓰러진 그녀 위에다 돈 보따리를 풀었지요.
"분수를 알아야지.니 주제에 어딜 사장님 아들을 넘봐. 이거는, 사장님께서 특별히 주시는 퇴직금이야. 너, 또 말썽 피우면 그땐 아주 작살을 내버릴 거야. 알았어!!"
세상에, 나도 감쪽같이 속았지 뭡니까. 깡패들을 사주한 것이 박덕성의 아버지였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그 일을 시킨 것은 버스회사의 사장이 아니라 그 사장의 아들인 박덕성 본인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요? 이런 인면수심이.
그러나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윤나영도 처음엔 박덕성의 아버지가 시킨 일로 알고 있었지만, 박덕성이 대화 중에 실수로 자기가 시킨 것이란 사실을 들키고 말았죠. 윤나영.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요? 그녀는 즉시 짐을 싸 고향 울산으로 내려갑니다.
버스에서 내리는 그녀의 몸은 예사 몸이 아니었습니다. 다친 곳은 얼굴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불룩한 배. 그녀는 임신을 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가 박덕성의 애를 배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토록 독하디 독한 윤나영이 시골행을 택했을까?' 하고 의문을 품었지요.
물론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그렇게 순순하게 물러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윤나영은 박덕성의 아버지를 찾아갔고,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물러날 윤나영이 아닙니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윤나영의 필생의 꿈은 부자집 며느리가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오호, 통제라! 윤나영은 애비도 모르는 자식을 임신했던 것입니다. 윤나영이 절규하듯 그녀의 언니 앞에서 외칩니다. "어떻게 애비도 모르는 애를 낳을 수 있지? 이 애를 어떻게 죽일 수는 없을까? 언니는 간호원이잖아. 어떻게 해봐. 난 이 애를 낳으면 안 돼. 난 부자집에 시집가야 한단 말이야!"
(윤나영은 분명 깡패들에게 맞기만 했을 뿐 아무 짓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윤나영이 박덕성에게도 분명히 말했지요. 그런데 그녀가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진짜 그때 동네 깡패들에게 당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과거를 버리기 위해 일부러 그런 말을 하는 건지는.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일단 패스^^)
그러나 이미 아이는 잉태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결국 언니와 함께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 아이를 낳게 되는데 의사가 큰 병원으로 가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안 그러면 산모도 태아도 위험하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핏발 선 눈으로 절대 안 된다고 외치는 윤나영.
결국 죽음의 절벽 끝에서 윤나영은 아이를 낳았습니다. 정신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윤나영, 제일 먼저 아이는 어떻게 됐냐고 묻습니다. 마치 아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아이가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야심가 윤나영의 욕망이 교차하는 얼굴 표정으로.
언니는 아이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 안도와 슬픔이 엇갈리는 윤나영. 그러나 곧 이어 절규합니다. 두 눈에 핏발이 곤두선 채로. 실로 섬뜩한 장면이었습니다.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리얼했습니다. 역시 신은경의 카리스마는 무서웠습니다.
신은경이 아니었다면 누가 이 역할을 대신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튼 언니는 거짓말을 한듯이 보입니다. 윤나영은 딸을 낳았고, 그 아이가 나중에 윤나영과 김영민(조민기 역)의 아들 유승호와 사랑에 빠질 운명인 모양입니다. 당연히 김영민은 윤나영의 소원처럼 부자집 아들이겠지요?
돈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빚어낼 한 재벌가의 불행한 인간사를 어떻게 잘 그려낼 수 있을지, 정말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오랜만에 MBC가 좋은 드라마를 내놓았습니다. 100억원이나 들인 김수로는 정말 기대 이하였지요. 이번에 김수로가 구긴 체면을 살려줄 수 있을런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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