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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이런저런이야기

유치원 졸업생 딸에게 보내는 편지

1년 치나 쌓여 먼지가 풀풀 나는 이메일을 청소하다가 우리 딸아이 유치원(사실은 어린이집) 졸업식에 보낸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다시금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군요. 그래봤자 불과 일곱 달 전의 편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식 일이란 게 바로 어제 일이라도 감회가 새로운 법입니다. 아직 아이를 안 키워보신 분께는 미안하지만 부모들이란 다 팔불출들이니 할 수 없습니다.

유치원 선생님께서 학부모들에게 내린 지시사항을 멀쩡하게 까먹고 있다가 졸업식 하루 전날 밤에서야 기억해내고 부랴부랴 숙제하듯 쓴 편지라 딸아이에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다시 살펴보니 딸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그리 모자라지 않는 듯합니다. 그래서 여기 팔불출로서 딸 자랑삼아 사진과 함께 올리오니 널리 이해를 구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딸, 혜민아.


네가 어린이집에 아장아장 걸음으로 들어 간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을 하는구나.


엄마 아빠는 우리 혜민이가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단다.


처음엔 모든 것이 서툴러 걱정스러웠지만

하루하루 달라지는 우리 딸의 모습을 보며

엄마 아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단다. 


유난히 오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꼬집고 괴롭히는 게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게 다 오빠를 사랑해서 그렇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단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가끔 야단을 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빠하고 다투기도 하고 사이좋게 지내기도 하는

너희들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행복하단다.


그렇지만 이젠 너도 어엿한 초등학생이니까

오빠하고 그만 싸우고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자꾸나.


곧 우리 혜민이가 초등학생이 되는구나.

정들었던 어린이집을 떠나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겠지.


초등학교에 가서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도록 하여라.


엄마 아빠는 우리 혜민이가 공부도 잘하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그런 착한 어린이가 되었으면 좋겠어.


마음이 착해지면 얼굴도 예뻐진단다.

고운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예쁜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혜민이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니?


사랑하는 우리 딸, 혜민이가

엄마 아빠는 너무도 자랑스럽구나.

벌써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서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다니

정말 대견하고 사랑스럽구나.


혜민아, 사랑해! 


2008. 2.

엄마 아빠가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혜민입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어느날, 딸아이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와 가방을 벗어던지며 말했습니다. 

"아빠, 나 칭찬해 줘."
"응? 무슨 일인데?"
"오늘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 쳤다~ 그리고 나, 10점 받았다~"
"잉? 100점이 아니고 10점? 그게 잘한 거라고 칭찬을 해달라는 거야?"

그러자 딸아이가 말했습니다. 

"빵점보다는 잘했잖아. 그러니까 칭찬해줘야지."

아이는 대단히 자랑스러운 듯 으쓱거렸습니다. 

“······”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이런 말은 그저 광고 속에서나 하는 말인 게지요.


2008. 9. 19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