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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이런저런이야기

이명박의 실용과 동원체제

 

옛날,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만년 부장으로 퇴역할 거 같던 생산부장이 마침내 별을 달았다. 이사 발령을 받은 것이다. 물론 ‘대우’라는 꼬리표를 달긴 했지만, 부장과 이사는 하늘과 땅 차이다. 당장 대우도 달라진다. 공장 정문에 그의 차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경비원들이 도열해서 경례할 준비를 하는 것은 사소한 의전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모든 게 달라진다.


내가 다니던 그 회사는 출근시간이 8시 반이었다. 그런데 이 신참 이사님은 별을 달자마자 7시에 출근해서 공장을 청소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별도 달았으니 뭔가 모범을 보여야할 순서가 된 거라고 생각하신 것일까. 그 다음날부터 부장, 과장들도 함께 7시에 출근해서 공장을 청소하기 시작했고, 다시 다음날이 되자 현장의 직장, 반장들도 모두 빗자루를 들고 공장의 아침을 쓸기 시작했다.


생산부서의 부장, 과장, 직·반장들이 모두 빗자루를 들고 공장을 쓸고 다니는 모습은 희한한 진풍경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일과를 짜고 작업지시를 해야 할 일선 과장들과 직·반장들이 아침부터 공장 쓸기에 바쁘니, 현장 종업원들만 살판났다. 보통 8시 15분쯤 되면 집합해서 교육 겸 작업지시 받고 현장으로 투입되는데, 이 일이 생략된 것이다. 살판만 난 게 아니라 재미있는 눈요기까지 제공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물론 이런 진풍경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현대건설 신화를 이룩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매일 새벽에 자기 자식들을 저택으로 불러 모아 조반을 함께 했다고 한다. 물론 며느리들도 새벽부터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꼭두새벽부터 종로 계동에 있는 본사로 출근한다.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먹은 직원이라도 회장님이 오시기 전에 출근해야 하는 것은 불문율이다. 이 법을 어기면 여지없이 구둣발인지 워카발인지가 날라 온다고 했다. 역시 신화 속 이야기다.   


아마 이명박 대통령도 이런 정주영 회장의 밑에서 일을 배우며 현대건설 신화를 함께 이루었다는 자신감에 뿌듯할 것이다. 불도저식 경영철학도 이때 얻었을 것이다. 노점상들을 힘으로 밀어내고 청계천에 콘크리트로 바닥을 깔아 한강의 물을 길어다 흘러내리게 하는 청계천 복원의 대역사도 그런 자신감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 이명박 대통령이 아침 8시에 국무회의를 한다고 한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아침 8시부터 회의를 하려면 그 밑에 국장들과 실무팀들은 도대체 몇 시부터 움직여야 할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에 좋다. 그런데도 나는 왜 꼭두새벽부터 빗자루를 들고 공장을 어지러이 다니던 그 신참 이사님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눈만 뜨면 실용을 외친다. 마치 실용만 잘 하면 죽었던(?) 경제가 살아나고 국민들이 모두 부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실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밀어붙이기에서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것 같다. 기껏 8시 국무회의로 공무원들을 건설사 부하직원 다루듯 닦달하면서 미국에 가서는 쇠고기 전면수입개방이란 선물을 내놓으며 아첨을 떤다.


어쩌면 수백억대의 재산을 가진 부자가 생각하는 실용과 우리 같은 서민들이 생각하는 실용은 개념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 진행될 이명박 정부의 정치, 경제, 외교적 실용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관심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이명박의 ‘실용’이란 것이 결국 나라와 국민을 다시 ‘동원체제’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자꾸 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