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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답사앨범

목포는 항구다, 마산도 항구냐?

마산도 항구도시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사실 나는 마산이 항구도시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마산은 과거에 항구도시였으며, 전국 7대도시였으며, 그래서 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 목소리들의 진원지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지만, 아마도 마산시 청사가 아닐까 하는 것이 그저 지레짐작이다. 최근 마산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미래 마산의 청사진이란 것은 <드림베이 마산>이라고 하는 슬로건에 온전히 들어있다. 꿈의 항구도시 마산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 가포만 바다를 매립하여 신도시를 조성하는 대역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수정만 바다를 매립하여 STX 조선소를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신포 앞바다는 이미 매립하여 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코딱지만 하기는 해도 시민의 눈을 의식해서 자그마한 공원이 하나 만들어졌다. 남들이 보면 무슨 공원이 이러냐고 핀잔을 주겠지만, 그래도 마산에서는 보기 드문 공원이다. 그나마 그마저도 친일논란이 있는 이은상과 조두남 기념관을 짓겠다고 하여 한동안 시민단체들과 씨름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런 것들이 마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드림베이(dream bay), 즉 꿈의 항구도시 마산을 건설하기 위한 사업의 내용들이다.

나는 처음에 드림베이라고 하기에 태평양의 푸른 파도와 지중해의 낭만이 연상되었었다. 그런데 드림베이란 것이 알고 보니 대형 아파트촌을 건설하고 공장을 유치하여 인구를 유입하는 것이었다. 드림베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꿈이나 낭만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산, 녹색이 물결치는 살만한 마산과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사람들은 오로지 파괴하고 개발해야만 다시 7대도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들 생각하는 듯하다. 그나저나 과연 소원대로 7대도시가 된다한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질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지도 나는 알지 못하지만, 도대체 드림베이란 것을 해서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는 것도 말 그대로 드림, 꿈같은 소리로만 들린다.  

이번 추석에 목포에 다녀왔다. 그곳도 항구도시다. '목포는 항구다'란 노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목포는 마산에 비하면 자그마한 도시다. 마산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자그마한 시골도시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목포를 둘러보고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목포는 마산에서 느껴보지 못한 푸근함 같은 것이 있었다. 바닷내음부터 달랐다. 목포는 정말 항구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일었다. 역시 목포는 항구였다.

그러나 내가 목포에 반한 것은 그곳이 항구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곳도 이곳과 마찬가지로 개발바람을 비껴가진 못한다. 역시 그곳에도 아파트촌이 건설되고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엔 아름다운 산이 있었고 문학관이 있었고 박물관이 있었다. 바닷가 경치 좋은 곳 엄청나게 널따란 부지에 예닐곱 개의 박물관들이 모여 있었다. 자연사 박물관도 있고 해양 박물관도 있다. 정말 웅장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마산 같았으면 금싸라기 같은 땅이 아까워서 과연 이렇게 커다란 박물관들을 그것도 한개도 아니고 예닐곱 개나 지을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드림베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도시가 있다면, 그런 꿈을 꿀만한 자격이 있는 도시라면, 그곳은 마산이 아니라 목포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쨌든 나와 아이들에겐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 목포시민은 50% 할인이라고 해서 목포시민인 형과 형수, 병원에 장기 입원해 계시다 추석 때 이틀간 외박 나오신 아버지까지, 모두들  모시고 갔다. 해양박물관은 공짜였고, 자연사박물관과 도자기 박물관은 아래와 같은 저렴한 가격으로(자연사박물관에서 계산하면 도자기박물관은 덤이다) 거의 공짜로 구경하다시피 했다. 공짜라면 빠지지 않는 것이 또 우리 가족인 고로 구석구석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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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텅구리배다. 우리나라에 마지막 한 대 남은 배라고 했다.
               더 이상 만들지 않는 하나 남은 유물이라고 하니 더 유심히 살폈다.
               이 배는 1989년에 만들어 조업하던 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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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텅구리배의 닻이다. 배에 비해 크기가 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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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박물관의 맞은편에 자연사박물관이 보이고 그 뒤에 나지막한 암산이 보인다.  
               목포엔 이런 바위산들이 많이 보였다. 그 중 최고는 물론 유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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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포돛배를 재현해 박물관 마당에 전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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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세기에 신안 앞바다에 침몰한 중국 무역선을 잔해를 모아 재현한 신안호.
               1천년 전에 만들어진 배라고 하기엔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포토존에서 촬영했는데 사진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카메라 탓이라고 하고 싶지만, 내게 DSLR 카메라가 주어진다 해도 별로 다르진 않을 것이다.
               사진기(삼성디카)도 별로고 사진사도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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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안 해저에서 발굴한 유물들. 후추와 일본장기도 보인다.
               그리고 해저에서 발굴된 금화보다 귀한 엽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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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물표다. 화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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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박물관 유리창 너머로 나무기둥에 앉아있는 갈매기들이 평화롭다.
               마치 풍어를 기원하는 솟대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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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박물관에 이어 자연사박물관으로 갔다. 정말 대단했다. 지구에 생명의 신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사라져갔는지 잘 보여주는 박물관이었다.
                암모나이트로부터 티라노사우루스, 신생대의 포유동물들, 나비, 장수풍뎅이 등 곤충들,
                사라져가는 식물들, 바다생물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모래무지도 보았다.
                어린 시절 모래무지와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 했다.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도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아!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은 촬영금지구역이었다.
                어차피 내 사진 실력으로는 이곳의 감동을 전하기에 역부족이므로 차라리 잘 됐다.
                궁금하신 분은
http://museum.mokpo.go.kr/ 에 가서 아쉬운대로 살펴보시면 되겠다.

                이곳 구경을 끝내고 도자기 전시관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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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한 듯 옆에서 쳐다보고 있는 혜민이. 초딩 1년짜리 우리 딸이다. 직접 실습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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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자기 재료도 전시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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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엄마와 딸아이가 타일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들놈은 그 옆에서 그리고 있는데
               사진 찍지 말라고 한다. 집중이 안 된단다.  
               맨 왼쪽이 딸, 가운데가 아내, 맨 오른쪽이 아들놈 그림인데, 아들놈은 화투짝을 그렸다.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깅에 빠져있는 내 옆에서 두 놈이 화투짝을 돌리고 있다.
               이거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좋다는 걸 말리기도 그렇고, 내가 할 줄 모르는
               걸 잘 하는 녀석들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요놈들이 컴퓨터에서 화투치는 법을 배워서는 내게도 가르쳐줘서 며칠 전에 셋이서 한 판 쳤다.
               평생에 처음 쳐본 고도리였다.  
               우리 가족이 만든 타일그림들은 박물관 벽에 붙여져 영원히 전해진다고 한다.
               물론 다른 가족이 그린 타일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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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 오랜만에 보는 것이지만 정감이 가는 익숙한 물건이다. 이게 바로 요강이란 것이렷다.
               뒷간 가는 것이 두려운 옛날 어린아이에겐 정말 귀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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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도자기 전시관의 마지막은 행남자기가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 이 지방 향토기업인가보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향토기업이 이런 전시관에 지원도 하고 자기들 자리도 하나 차지하는
               게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지역엔 이런 향토기업도 하나 없다.


그 다음 남농미술관이며, 문예역사관이며, 또 무슨 전시관이며 문화관은 다음 기회에 보기로 했다. 여기 소개한 사진들은 그야말로 신발에 묻은 흙 정도만 턴 것에 불과하지만, 여기까지 보는데도 종일 걸렸다.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또 있겠는가?
저녁을 먹고 유달산에 달구경 갔다. 그러나 달은 보지 못했다. 구름 속에 숨어 끝끝내 그림자조차 보여주길 마다하는 보름달과 먹구름을 함께 원망하며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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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집에 돌아왔다. 마당에 핀 꽃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언제 피었는지 모르겠다. 이름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꽃이다.
               
밤에 달이 떴다. 하루를 넘겼지만 보름달과 다름 없다. 역시 달은 마산 달이다. 목포가 아름다운 항구고 문화적으로 여유가 풍부하기로 마산이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달 만큼은 마산이 최고다.
그래서 우리 동네 이름도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 ‘월영月影’이라고 지어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도무지 파괴와 개발의 대명사가 된 드림베이와 어울려 보이지 않는 것이 또한 월영이란 이름이고 보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운선생이 다시 돌아와 보신다면 무어라 말씀 하실까?


2008. 9. 16 한가위 연휴 끝에,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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