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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답사앨범

명절날, 게와 짱뚱어 수난을 당하다

추석 연휴에 목포 형님 댁에 다녀오다 순천만 갯벌에 잠깐 들렀습니다. 순천만 갯벌은 처음 가보았습니다. 김승옥이 쓴 <무진기행>의 무대가 순천만 갯벌 근처 어느 동네라는 것만 알고 있었지 도대체 경상도 땅에서 벗어나본 일이 별로 없는 저로서는 순천도 순천이려니와 순천갯벌이란 도시 가볼 엄두도 생각도 나지 않던 곳입니다. 다만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안개>에서 신성일과 윤정희가 거닐던 제방 둑을 아련하게 간직한 추억처럼 다시 꺼내보고 싶던 마음이 늘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무작정 한 번 가보자고 했을 때 속으로는 무척 기뻐하면서 별로 반대하지 않는다는 듯이 찬성했습니다. 원래 남자들이란 그런 속물 근성이 좀 있어야 멋있게 보이는 법이라고 스스로 늘 생각해오던 바대로 한 것이지요.  

순천만 갯벌을 탐방한 소감을 말씀드리자면, 한마디로 감동 받았다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정말 대단한 갯벌이었습니다. 갯벌의 넓이도 두깨도 대단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마치 개미떼처럼 기어다니는 게떼들이었습니다. 실로 '게떼'라고 해야 맞을 거 같습니다. 게만 떼가 아니었습니다. 짱뚱어도 떼로 기어다니다가 팔짝팔짝 뛰기도 하다가 그것도 재미없으면 구멍으로 쏙 기어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가 하는 것이 마치 자기 집 안마당이나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같았습니다.

갯벌에 무성한 갈대가 노랗게 익을 무렵에 다시 한 번 와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물론 아내와 함께 합의한 사항입니다. 노랗게 물결치는 갈대와 갯벌과 게와 장뚱어를 이곳 블로그에 담을 수 있다면 정말 환상적일 것 같지 않습니까? (몰론 습지전문가인 도민일보 김훤주 님이 담는 게 훨씬 낫겠지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날은 게와 짱뚱어들이 여간 고역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탐방로 나무판들이 사람들의 무게로 고통스럽게 삐걱대는 소리와 떼 지어 몰려다니며 질러대는 어른 아이들의 고성은 평온하던 이곳 갯벌에 때 아닌 난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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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정말 난리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탐방로 가에 죽 늘어서 엎드린 자세로 게들을 잡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갈대 가지를 길게 꺾어 갯벌 위를 지나가는 게를 유인해 잡아 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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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 올려진 게 중에 재수 없는 녀석은 보시는 바와 같이 곧바로 음료수 곽이나 비닐봉지 안으로 감금당하게 됩니다. 드넓은 갯벌에서 자유를 만끽하던 게가 답답한 음료수 곽이나 비닐봉지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렇게 잡은 갯벌 게를 어디다 쓸려고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설마 탕을 해 먹을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요. 재미로 또는 못보던 자연을 체험해본다는 정도로 잡았다가 다시 놓아주는 건 몰라도 이건 정말 게들에게 너무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집 안마당을 개방해서 보여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일일 텐데 남의 집에 들어와 가구를 디비고 심지어 주인까지 쫓아내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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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많은 사람을 태운 유람선이 갯벌 수로를 달립니다. 몇 대가 번갈아가며 쉼 없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배가 지나가고 난 뒤 파도를 뒤집어 쓴 게와 짱뚱어를 살펴보았더니 이미 익숙한 일인지 별 일 없다는 듯 잘들 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야 재미있겠지만, 게와 장뚱어들에겐 여간 수난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평소엔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지는 않겠지만, 추석 같은 명절에는 떼 지어 몰려오는 사람들의 습격으로 고통 받을 게와 장어 그리고 갯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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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우리 아이들은 갯벌에 감동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제가 갯벌을 둘러
            볼 동안 입구에서 빌려주는 자전거(큰 거 3000원, 유아용 2000원)를 타고 실컷 놀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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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마누라는 아직 자전거를 탈 줄 모릅니다. 이 장면은 잠깐 일어선 순간을 포착한 것입니다.
           제 휴대폰이 찍었는데, 찍는 속도(셔터스피드) 만큼은 제가 들고다니는 삼성디카보다 월등합니다.
           위에 보시다시피 줌이 약해서 그렇지 급할 땐 쓸 만합니다. 그런데 옛날엔 자전거를 탈 줄 알았다고
           하는데(본인의 진술일 뿐이지만), 희한한 일입니다. 까먹을 게 따로 있지... 
           하여간 갈대가 노랗게 물들 때쯤 꼭 다시 와 보기로 맹세(?)했습니다.
           맹세 같은 거 함부로 하는 거 아이라켔습니다만...


아 참, 순천만에 오기 전에 보성 벌교의 어느 집에서 짱뚱어탕을 점심으로 먹었는데, 참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살펴보니 짱뚱어란 놈이 올챙이처럼 생긴 배 밑에 다리가 달려 있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웬 물고기에 다리가….
아마 어쩌면(자신 없어 하는 것은 제가 그 쪽 전문가가 아니라서 말이지요.) 도롱뇽 계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해봤는데, 다음에 노랗게 익은 갈대물결 속에 뛰노는 짱뚱어를 꼭 소개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008. 9. 17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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