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우리가 낙동강 5차 도보기행을 위해 베이스캠프로 준비한 구미청소년수련원입니다. 마침 휴가철이라 낙동강 일대의 숙박시설이 꽉 차는 바람에 이곳을 잡았는데 시설이 엉망이었습니다. 하루에 30km를 걸어야 하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샤워시설이었지만,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첫날밤은 대구 모 교회의 캠프 때문에 밤새도록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내가 도착해 아래 사진을 찍은 시간이 9시 무렵인데, 이미 한창이었던 집회는 밤 12시가 넘도록 "아버지~ 아버지~"를 외치며 울기도 하고 하는 바람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거의 새벽 2시가 되어 기도가 끝났지만, 이번에 아이들이 새벽5시 가까이까지 복도를 뛰어다니며 노는 통에 완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답니다.
기도도 좋지만 이왕 아이들 여름방학을 이용해 캠프를 왔으면 기도는 짧게 하고 재미있게 노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신나게 놀게 해주고 일찍 재우는게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 사는 방법도 믿는 방법도 가지가지라지만 이건 너무 하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왜 조용히 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마음 속으로 조용히 신을 찬미하면 신도 좋아 하실텐데 말입니다.
신이 귀가 먹은 것도 아니고 너무 시끄럽게 굴면 싫어할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긴 이건 제가 간섭할 사항이 아니로군요.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는 일은 가급적 삼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만… 그런데 제가 시끄러운 기도소리에 잠 못드는 밤을 괴로워하며 마당에 나와 있자니 희한한 광고썬팅을 한 차가 한 대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그 교회 팀의 일원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광고 문구가 너무 이상했습니다. VIP경호, 행사경호, 주주총회, 노사대립, 개인경호…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건 개인경호와 VIP경호뿐이었습니다. 주주총회를 하고 행사를 하는데 무슨 경호가 필요하다는 건지, 파업현장에 경호회사 요원들을 투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광고썬팅을 보니 섬뜩하군요. 무섭습니다.
어렵게 새벽 3시가 거의 다 되어 잠을 청하고 다음날 새벽 5시 반에 기상해서 아침을 먹고 낙동강 도보기행 길을 떠났습니다. 이번 도보기행의 시작점은 상주 강창나루입니다. 강창나루에서 시작해 토진나루를 지나고 낙동나루를 거쳐 구미시 해평면(청소년수련원이 있는 곳)까지 걷게 됩니다.
옛날 이곳 강창나루에는 소금배가 드나들었던 모양입니다. 강창나루 나들목에 소금배란 간판을 단 식당이 있습니다.
나루배로 건너던 강에는 이제 배는 사라지고 대신 다리가 길게 낙동강을 가로지릅니다.
다리위에서 찍은 낙동강의 모습입니다. 강 중간에 모래톱이 섬을 만들었습니다.
낙동강둑길로 올라서니 고추잠자리들(고추잠자린지 배추잠자린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축하비행을 해줍니다.
강둑으로 나가려면 이렇게 논둑을 가로질러 가야 합니다. 미안했지만, 농부 아저씨들은 우리를 보고 밝게 웃으며 고생이 많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느낀 바이지만, 태백, 봉화, 안동, 예천, 상주를 거쳐 오는 동안 정말 인심들이 좋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풋풋한 경북 북부지방 사투리는 결코 사람을 밀어내는 법이 없었답니다.
이슬을 머금은 달맞이꽃… 밤새 활짝 가슴을 벌려 달을 애무했을 꽃들은 이제 아침을 맞아 몸을 오무리고 잠을 청하려나 봅니다.
토진나루에 닿았습니다. 이곳에서 모두들 휴식을 취했습니다.
토진나루 위쪽에서 강물은 줄기차게 흘러내려 오고…
나루터를 지난 강물은 우리가 쉬든말든 지치지 않고 흐릅니다. 정말 유장하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우리는 강창나루를 지나 토진나루로 오는 길에 이렇게 담배 밭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미류나무 옆에 뭔가 심상찮은 물건이 보입니다. 뭘까요?
게다가 첫날밤은 대구 모 교회의 캠프 때문에 밤새도록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내가 도착해 아래 사진을 찍은 시간이 9시 무렵인데, 이미 한창이었던 집회는 밤 12시가 넘도록 "아버지~ 아버지~"를 외치며 울기도 하고 하는 바람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거의 새벽 2시가 되어 기도가 끝났지만, 이번에 아이들이 새벽5시 가까이까지 복도를 뛰어다니며 노는 통에 완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답니다.
기도도 좋지만 이왕 아이들 여름방학을 이용해 캠프를 왔으면 기도는 짧게 하고 재미있게 노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신나게 놀게 해주고 일찍 재우는게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 사는 방법도 믿는 방법도 가지가지라지만 이건 너무 하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왜 조용히 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마음 속으로 조용히 신을 찬미하면 신도 좋아 하실텐데 말입니다.
신이 귀가 먹은 것도 아니고 너무 시끄럽게 굴면 싫어할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긴 이건 제가 간섭할 사항이 아니로군요.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는 일은 가급적 삼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만… 그런데 제가 시끄러운 기도소리에 잠 못드는 밤을 괴로워하며 마당에 나와 있자니 희한한 광고썬팅을 한 차가 한 대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그 교회 팀의 일원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광고 문구가 너무 이상했습니다. VIP경호, 행사경호, 주주총회, 노사대립, 개인경호…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건 개인경호와 VIP경호뿐이었습니다. 주주총회를 하고 행사를 하는데 무슨 경호가 필요하다는 건지, 파업현장에 경호회사 요원들을 투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광고썬팅을 보니 섬뜩하군요. 무섭습니다.
어렵게 새벽 3시가 거의 다 되어 잠을 청하고 다음날 새벽 5시 반에 기상해서 아침을 먹고 낙동강 도보기행 길을 떠났습니다. 이번 도보기행의 시작점은 상주 강창나루입니다. 강창나루에서 시작해 토진나루를 지나고 낙동나루를 거쳐 구미시 해평면(청소년수련원이 있는 곳)까지 걷게 됩니다.
옛날 이곳 강창나루에는 소금배가 드나들었던 모양입니다. 강창나루 나들목에 소금배란 간판을 단 식당이 있습니다.
나루배로 건너던 강에는 이제 배는 사라지고 대신 다리가 길게 낙동강을 가로지릅니다.
다리위에서 찍은 낙동강의 모습입니다. 강 중간에 모래톱이 섬을 만들었습니다.
낙동강둑길로 올라서니 고추잠자리들(고추잠자린지 배추잠자린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축하비행을 해줍니다.
강둑으로 나가려면 이렇게 논둑을 가로질러 가야 합니다. 미안했지만, 농부 아저씨들은 우리를 보고 밝게 웃으며 고생이 많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느낀 바이지만, 태백, 봉화, 안동, 예천, 상주를 거쳐 오는 동안 정말 인심들이 좋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풋풋한 경북 북부지방 사투리는 결코 사람을 밀어내는 법이 없었답니다.
이슬을 머금은 달맞이꽃… 밤새 활짝 가슴을 벌려 달을 애무했을 꽃들은 이제 아침을 맞아 몸을 오무리고 잠을 청하려나 봅니다.
토진나루에 닿았습니다. 이곳에서 모두들 휴식을 취했습니다.
토진나루 위쪽에서 강물은 줄기차게 흘러내려 오고…
나루터를 지난 강물은 우리가 쉬든말든 지치지 않고 흐릅니다. 정말 유장하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우리는 강창나루를 지나 토진나루로 오는 길에 이렇게 담배 밭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미류나무 옆에 뭔가 심상찮은 물건이 보입니다. 뭘까요?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155미리 자주포와 탱크가 서 있었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혹시 저거 6·25 때 쓰다가 저렇게 버려진 거 아닐까요?" 그는 여자 회원이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가던 남자 회원이 말했습니다. "에이~ 그때는 저런 대포나 탱크도 없었네. 저건 최근에 쓰던 걸 여기다 갖다 놓은 거야. 그런데 저걸 왜 여기다 전시해 놓았을까?"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에 대한 답은 알 수 없었습니다. 저 흉칙한 무기들의 오른편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그 옆과 앞과 뒤는 온통 논과 밭 뿐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저거 고철로 팔아먹으면 돈 꽤 되겠는데!" 그러자 다시 옆에서 누군가 말을 받았습니다. "고철로 팔어먹고 싶어도 저거 끌고 갈 차가 들어올 길이 없어요, 여기는."
155미리 자주포와 탱크와 한대의 기관총(아마 캬라바 50인 듯)은 우리가 걸어온 북쪽 하늘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왠지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기를 보고 외롭게 보인다는 저도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외로워 보이지 않나요?
무기를 지나 조금 내려오니 사람들이 들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농사일에 바쁜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풀립니다. 대포와 탱크와 기관총 옆에서도 농촌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저 평화롭기만 합니다. 트랙터가 바쁘게 땅을 갈고 있습니다. 방금 전에 보았던 탱크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평화로움입니다.
동네 주민들이 지나가다가 너무 반갑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막 손을 흔듭니다. 하하~ 역시 경북북부지방 사투리를 쓰면서… "오데 가니껴~" "예, 낙동강 따라 걷습니다. 태백에서 부산까지 갑니다." "아이고~ 차말로 고생이 많게니더." 우리 일행과 헤어진 이분들도 잠시 후면 들에 세워져 하늘을 노려보고 서있는 자주포와 탱크와 기관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도 이렇게 똑같이 반갑다고 인사할까요? "거기 뭐 한다꼬 서 있는교? 하루 젱일 땡비테 서 있을라카므 차말로 고생이 많겠니더~ 누가 그러라꼬 시키던고? 차말로 얄궂데이~"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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