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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회룡포에 빼앗긴 이름, 의성포의 사계

낙동강 4차 도보기행, 우리는 마침내 경북 안동 풍산면 화회마을을 거쳐 예천 풍양면의 삼강나루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서 유독 바람 풍자가 많은 동네란 생각을 했습니다. 풍산과 풍양 외에도 바람 풍자가 들어간 동네 이름들이 곳곳에 있었거든요. 풍산이라 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풍산 유씨죠. 하회마을은 바로 풍산 유씨의 집성촌입니다.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회원인 공윤님이 촬영한 삼강의 아침. 내가 찍으면 이렇게 안 나온다.


그럼 풍양은요? 물론 요즘 풍양하면 삼강나루와 삼강주막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얼마 전 한나라당의 박희태 대표가 이 삼강주막에서 자기 부인과 막걸리를 마시며 양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갈 건지 말 건지를 고민했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나가면 그냥 나갈 것이지 왜 하필 이곳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기자를 불렀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삼강주막이 요즘 꽤 유명한 건 사실인 모양입니다. 

풍양은 본래 조선 후기 안동 김씨와 더불어 세도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던 풍양 조씨의 본향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 예안-안동-풍산-풍양, 이 벨트야말로 양반들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예안은 퇴계 이황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곳입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정치사에서 이곳을 비롯한 영남은 철저하게 배척당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정조 임금이 도산서원 앞 시사단에서 영남 선비들만을 위한 과시를 열었을 때, 7천명이나 모여들었을까요? 우리들의 도반 신정일 선생에 의하면 조선시대 정치사에서는 호남만 배척 당한 것이 아니라 영남도 철저하게 배척 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흥준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서울에서 세도를 부리던 안동 김씨들을 이곳에선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이곳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들은 이단이었던 것이지요.

삼강이란 지명은 이곳이 금천과 내성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아마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양수리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 같습니다. 이 삼강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면 문경 영순입니다. 역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문경은 국민학교와 중학교까지 제가 자라던 곳입니다. 풍양에는 외가 친척들도 있었지요.
 

삼강주막 뒤 회나무 아래 평상에 앉으면 삼강이 시원하게 보였을 터다. 그러나 이제 다릿발과 제방만 보인다.


그러나 이제 삼강은 나룻배를 띄우지 않습니다. 거대한 콘크리트 다리가 삼강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풍양과 문경을 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하필 세개의 강이 합쳐지는 한복판을 가로질러 다리를 놓았을까요? 교량에 새겨진 준공일자(2004. 3. 11일)를 살표보니 다리가 생긴 지가 불과 5년입니다. 한편으로 삼강주막을 선전하고 또 한편으로는 거기에 다릿발을 세워 기를 죽이는 아이러니…

그러므로 삼강주막의 유명세를 듣고 한적한 강변의 정취를 기대하고 오시는 분들이라면 적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도 무척 실망했습니다. 거대한 교각 아래 초라한 초가집과 500 년 묵은 회나무를 덩그러니 넓은 마당과 주차장에 서서 지켜보려니 차라리 을씨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 삼강이 유명해진 것은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우리나라 최고의 물돌이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성천이 굽이쳐 내려오다 낙동강에 몸을 풀기 전 마지막 용트림을 대지에 새겨놓았습니다. 바로 의성포입니다. 낙동강의 하회마을과 동강의 물돌이동이 유명하지만 의성포에 견줄 바가 못 됩니다.

그런데 이제 의성포는 의성포라 부르지 아니하고 회룡포라 부릅니다. 회룡포란 이름은 예천군청에서 이웃한 의성군과 지명이 혼동된다고 하여 새로 정한 이름입니다. 1999년부터 그리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의성포를 의성포라 부릅니다. 이 또한 지방자치제가 만들어낸 폐단의 한 단면이란 생각이 듭니다. 

의성포란 이름은 오래 전에 의성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해 살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는 등 여러가지 설이 있겠지만, 뜻풀이로 보자면 '의를 이룬다'는 의미가 이 지역의 전통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인 듯하여 섭섭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름을 버린다는 것은 굳이 따져 말하자면, 이름에 깃든 역사도 함께 버린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새벽 5시 반에 기상한 우리는 삼강나루가 아닌 삼강다리 위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일찍 아침을 먹고 의성포로 향했습니다. 의성포를 보기 위해선 비룡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비룡산은 낮으막한 산이지만 올라가는 길은 뱀처럼 구불거리는 게 낙동강 만큼이나 험합니다. 이곳까지 차가 올라갑니다.  

비룡산에 올라 회룡대에 서니 의성포가 보입니다. 장관입니다. 의성포의 물돌이는 350도에 이른다고 합니다. 의성포의 목 부분은 불과 80여m, 끊어질 듯 아슬아슬합니다. 저것이 끊어지면 섬이 되겠지요. 그러나 물은 그렇게 잔인하지 않습니다. 막으면 돌아가는 게 물의 천성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절경도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지요.  

아래는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게시판에 올렸던 의성포의 사진입니다. 사진 솜씨가 조잡하여 현장의 감동을 전하기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올려봅니다. 아마 의성포를 가보실 수 있는 분은 별로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저도 어린 시절 이곳에서 불과 3~40리 거리에 살았지만, 처음이었답니다.    
     파비

낙동강 도보기행 4차, 회룡대에서 찍은 의성포 사진입니다. 요즘은 의성포라 하지 아니하고 회룡포라 부른다지만, 저는 의성포가 더 좋습니다. 이웃에 있는 의성군을 의식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곳의 오래된 풍습에도 의성포가 더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그러나 지역민들이 굳이 회룡포라고 부르길 원한다면 그렇게 불러주어야겠지요.  

이리하여 마음이 약해 잘도 변하는 제가 찍은 회룡포 사진입니다. 6월 28일에 찍은 사진이니 여름 풍경이 되겠네요. 그 아래 하얀 겨울 풍경도 있습니다. 오곡이 풍성한 가을 풍경의 회룡포도 있고요. 이렇듯 회룡대에 오르니 푸른 회룡포 뿐아니라 하얗고 노랗고 또 히끄무리한 모든 풍경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실은 하얗고 노란 풍경 사진은 회룡대 벽에 걸려있던 사진을 찍은 것이랍니다. ㅎㅎ 혹시 눈앞에 보이는 회룡포의 절경에 취해 이것을 못 보신 분이 계실지 몰라서 올려봅니다. 감상은 무료이니 마음껏 즐기시기를…


카메라로 한 번 찍었지만 완전히 안 잡혀서 다시 한 번 더 찍었지만 역시 다 못 잡았네요. 화각이 1mm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사진 찍을 때 무조건 자동모드입니다. 다른 건 손댈 줄 모릅니다요. 카메라는 꽤 비싼 걸 샀습니다. 낙동강을 위해서… 캐논 450d 번들인데요. 85만 원 들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회룡포 마을로 건너가는 다리를 찍은 사진입니다. 망원이 아니라 제대로 잡진 못했습니다.


회룡포의 모가지가 사슴 목보다 더 가늘어 보입니다. 회룡포를 한바퀴 휘돌아온 강은 다시 반대로 꺾어 우리가 서있는 회룡대의 뒤로 흘러갑니다. 정말 장관이지 않습니까? 이렇듯 아무리 앞을 가로막아도 구불구불 휘돌아 마침내 가야할 길을 가고야 마는 강의 인내가 정말 대단합니다. 태백에서는 돌아갈 길이 없을 때는 결국 산을 뚫어서라도 가고야 마는 부드러운 물길의 강철같은 의지도 보았었지요. 구무소에서…


이하는 제 사진이 아니고 회룡대에 걸려있던 전문가들의 사진입니다. 어차피 그걸 또 제가 찍었으니 제 사진이라는 것도 맞는 말 아닐까요? 그냥 제 사진으로 보아 주십시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