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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이런저런이야기

눈 내리는 슬픈 날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아들은 올해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아빠! 아빠! 빨리 밖에 나와 봐라. 눈 온다. 엄청 많이 온다. 쌓이겠다.”

마지막에 ‘쌓이겠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아직 마산에서는 쌓일 정도로 눈이 오는 것을 본적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아니 이렇게 눈발이 날리는 것도 본적이 거의 없다고 해야 맞는 말입니다. 여기는 겨울에도 눈이 안 오는 동네입니다. 거기다 지구 온난화로 눈 구경은 더욱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눈이 아주 많이 오는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밤새 아무도 모르게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날 아침이면 으레 누구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걷지 않은 순백의 영토에 발자국으로 표식을 남기는 것입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는 이 하얀 세상이 온통 내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이미지 출처=한겨레신문


그렇게 골목 어귀를 돌아 나오면 마을 입구에서 눈을 하얗게 머리에 이고 늘어진 채 밤새 마을을 지키던 고송들이 반겨줍니다. 세월이 무던히도 흘렀지만 저는 아직도 가끔 꿈속에서 이 고송들을 만난답니다. 그리고 여전히 머리에 하얀 눈을 덮어 쓴 이 고송들은 변함없이 웃으며 반겨주지요.

눈은 남모르게 제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는 ‘노스탤지어’입니다.

전화선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아들의 기쁨에 찬 목소리는 제게도 복음이었습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정말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전화에다 대고 소리쳤습니다.

“와, 정말이구나. 아들아, 나중에 우리 만나서 통닭 먹으러 가자.”

“정말? 와! 신난다!”

그런데 노스탤지어를 일깨워주는 눈을 보며 왜 갑자기 통닭 이야기가 튀어나왔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생각해보건대, 눈 오는 거리를 아들과 손을 잡고 걷다가 길가의 어느 통닭집을 찾아들어가 따뜻한 불을 쬐며 아들은(물론 초딩 1년짜리 딸도 함께) 통닭을 뜯고 저는 생맥주를 마시며 창밖에 내리는 눈을 감상하는 낭만을 그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짧은 찰나의 시간에 본능적으로….

그러나 곧 언제 그랬냐는 듯 태양이 하늘을 활짝 열었습니다.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원망스러우리만치 맑고 높습니다.

“그래, 역시 그렇지 뭐.”

그런데 걱정입니다. 아들 녀석은 틀림없이 눈이 오든 안 오든 통닭 먹으러 가자고 할 터인데, 바깥 날씨는 너무 춥습니다. 눈도 안 오는 추운 날씨란 정말 고역이지요.

아! 괴롭습니다. ㅎㅎㅎㅎ       
                                                                                                         (저는 지금 급히 피난 가는 중입니다.)

2008. 12. 5.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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