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기차길, 추전역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이다. 해발 855m라는 높이는 내가 살고 있는 마산의 진산 무학산 정상보다도 100여m가 높다. 이 높은 곳에 어떻게 기차가 올라왔을까, 기술의 진보가 오늘과 같지 않았을 까마득한 옛날에 말이다.
아마도 태백산 일대에 석탄이며 아연이며 중석이 발견되지 않았던들 이곳은 아직도 태고의 원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추전역으로 올라가는 길 양 옆으로는 오래된 석탄도시의 흔적이 봄기운에 녹아 내리는 눈과 함께 질척거린다. 검은 도시의 영광을 아쉬워 하듯….
추전역에 올라서니 바로 코 앞에 거대한 풍차를 머리에 매단 매봉산이 바라다보인다. 대관령을 넘으면서도 저런 풍경을 보았었다. 거대한 풍차의 날개가 돌아가는 모습과 동해바다가 이국적이었다. 석탄도시의 상징 추전역에서 바라보는 풍차의 날개짓…. 추전역은 한산했다. 한쪽 귀퉁이에선 과거에는 석탄을 가득 싣고 분주하게 뛰어다녔을 검은 화물열차가 오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대신 코에 기다랗게 고드름을 매단 삐에로 복장을 한 인형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추전역에서 바라보는 매봉산 풍력발전용 풍차들
한 세월 전국의 에너지 공급을 책임지며 땀을 흘렸던 이 역사는 이제 검은 무연탄 대신 카메라를 들고 알록달록한 등산복으로 치장한 관광객들을 맞는다. 석탄을 가득 싣고 길 떠날 준비에 바삐 움직이던 기관차와 화물열차 대신 선로에는 관광객들의 셔터소리만이 가득하다.
한때 태백시는 인구가 20만에 육박하는 고원도시였다. 원래는 삼척군 상장면(또는 1920년대 이전엔 상장성면이라고도 불리었음)으로 화전지대였던 이 곳은 1920년대에 탄층이 발견되면서 탄전지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61년 삼척군 장성읍으로 승격했고 1973년에는 장성읍 황지리가 삼척군 황지읍으로 분리되었다가 1981년 다시 장성과 황지를 합하여 태백시가 되었다.
태백시는 우리나라 최대의 탄광도시였다. 사람들은 그때의 영광을 말할 때 “지나다니던 개도 입에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로 대신한다. 물론 이 말은 그저 우스갯소리다. 사람에게도 귀한 만 원짜리를 어찌 개가 물고 다닐 수야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우스갯소리는 당시의 풍요로움을 그리워하는 듯한 말이어서 한편 못내 서러운 마음을 배척할 수가 없다.
내 어린시절 고향도 탄전지대였다. 태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태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문경이란 또 하나의 탄전지대가 있었다. 그런데 내 어릴 적 추억이 묻은 이곳을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로 예의 “개도 만 원짜리를 입에 물고 희희낙락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랬던가. 그러나 사정은 달랐다. 광산주에게는 맞는 말일지언정 막장에서 탄을 캐는 광부들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이다.
광부들은 땅속에서 일을 했다. 그들은 밀폐된 어두운 곳에서 희미한 카바이드 불빛에 의지한 채 죽음을 친구로 삼아 검은 흙에 삽질을 한다. 발파 후에 채탄작업, 그리고 다시 동발을 세우고 한발 한발 막장이 깊어질수록 채탄장에 쌓이는 석탄의 높이만큼 사끼야마(선산부)들의 폐는 검은 먼지에 색이 변한다. 그렇게 변색되는 폐가 그들의 생활을 얼마나 윤택하게 했을까.
얼마나 많은 광부들이 진폐로 생과 이별했던가. 그들은 폐에 묻은 검은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돼지비계와 소주가 필요했다. 갱도 주변에는 수많은 술집과 작부들이 그들의 진폐를 달래기 위해 들어섰고 광산도시는 밤이나 낮이나 흥청거렸다. 글쎄, 어쩌면 그 시절 술 취한 어느 광부의 만 원짜리를 개란 놈이 훔쳐 물고 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머리를 박박 밀고 시커먼 교복과 교모를 눌러쓴 모습이 스스로도 너무나 대견스러워 우쭐거리던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어느 날 하교 길에 국민학교 동창을 만났다. 녀석은 검은 탄가루를 날리며 달리는 재무시(GMC트럭) 조수석에 매달려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잽싸게 얼굴을 돌렸다. 나 역시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냥 얼른 눈길을 피했었다.
그런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근로기준법에 기재된 ‘아동근로 금지의 원칙’ 같은 것은 그야말로 법전 속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더 슬픈 기억은… 국민학교 때였다. 추전역. 무연탄 적재용 화물열차가 보이고 그 옆에 싣다 만 석탄이 쌓여있다.
옆집 형은 나보다 세 살 위였다. 그는 광산에서 후끼야마(후산부)로 일했는데 그날 낮에 친구들과 막걸리를 많이 마셨던가 보았다. 그는 미성년자였으므로 그의 아버지는 팬티만 입힌 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장작으로 ‘빠따’를 때렸는데 그 형의 엉덩이와 허벅지에선 피가 줄줄 흘렀다. 그리고 그 몸으로 병반(3교대 중 밤에 일하는 조)을 들어갔던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굴이 무너진 것이다.
모두 옛날 이야기다. 새끼줄에 연탄을 매달고 퇴근길을 재촉하던 시절도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탄광도시의 영광도 옛날 이야기 속으로 사라졌다. 광부들의 애환도 작부의 구성진 노래도 모두 개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과거의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해발 855m에 외롭게 서있는 추전역사는 관광객들을 맞아 헤픈 웃음을 짓는다.
나는 그 추전역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내 친구와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을 옆집 형을 생각했다. 그 모습을 매봉산 정상의 풍차들이 빙글거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추전역을 떠나 두문동재를 향해 버스를 달렸다. 추전역 바로 위에 있는 두문동재는 해발 1268m의 고개다. 두문동이라. 이성계와 정도전에게 멸망한 고려의 충신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고개 너머에는 낙동강 발원지 너덜샘이 기다리고 있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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