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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낙동강 발원지 태백 너덜샘으로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2. 제1구간, 너덜샘에서 분천리까지

 낙동강과 한강의 발원지 태백
강원도의 힘이란 영화가 오래 전에 상영된 적이 있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제목에 대한 어떤 힌트도 주지 않는다여기서 강원도는 도피처이거나 주인공들의 로맨스를 설명하기 위한 무대장치일 뿐이다. 이 영화를 감명 깊게 보긴 했지만, 제목과 줄거리가 이렇게 서로 어떤 영감도 주지 않는 영화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로부터 강원도의 힘을 느꼈다고 하면 역설일까영화를 보는 내내 강원도의 힘을 찾던 나는 그러나 정말 강원도의 힘을 느꼈다. 어쩌면 강원도는 묵묵한 배경, 드러내지 않는 후원자 같은 존재이리라. 그래서 사람들은 평소에는 강원도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다가도 삶이 피로해지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지친 몸을 이끌고 강원도를 찾는다.

이렇듯 사람들은 도시의 분주함에 시달리면서도 실은 고향을 그리듯 늘 강원도를 동경하는 것이다바로 여기에 강원도의 진정한 힘이 숨겨져있는 것은 아닐지, 생명의 원천 같은 것 말이다. 원래 강원도란 이름은 강릉과 원주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한 태조는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각 도의 이름을 그 지방의 유력한 두 개 도시의 이름을 따 체제를 정비했다.

,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황해도는 황주와 해주, 평안도는 평양과 안주, 함경도는 함흥과 길주(나중에 역모사건으로 길주가 강등되고 경성으로 바뀜)의 머리글자를 따 지은 것이다경기도란 이름만 유달리 왕성 주변에 수도운영에 필요한 물자와 노동력을 확보하고 수도방위를 위해 설치한 경기(京畿)에서 유래했다. 이때 도()란 길을 의미하는 것으로 강원도라 하면 ‘강릉과 원주방면으로 가는 길’로서 광역지방을 관할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원도란 이름에서 이런 역사적 의미를 따지기보다 그 어감으로부터 전해오는 다른 것을 먼저 떠올린다. 바로 ‘강의 원천이요, 그리하여 생명의 근원’인 산이다. 강원도는 그야말로 산의 천지다. 백두산에서 뻗어내려 온 백두대간은 그 넓고 긴 등판을 강원도 땅에 기대고 누웠다. 여기에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두타산, 태백산이 백두대간의 허리를 지탱하는 요추처럼 자리를 틀고 앉았다그중에서도 태백산은 사람으로 말하자면 백두대간의 허리 중에서 요추와 천추가 맞닿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백두산으로부터 3천여 리를 내달려온 백두대간은 이곳 태백산에서 긴 여정의 응어리를 마음껏 풀어놓았다. 태백산은 경북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태백시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1567m로 높이 솟은 태백산맥의 주봉으로 주변에 함백산(1573m) 1000m급 이상의 고봉을 100여 개나 거느리고 있다.

고려의 승 일연은 “천제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당수에 내려와 신시를 열었는데 이것이 우리 민족의 기원이다”라고 삼국유사에 적어놓았다. 그러나 그 태백산이 백두산인지 묘향산인지 현재의 태백산인지는 알 길이 없다. 지금도 태백산 정상에는 천제단이 있어 매년 개천절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이 제천행사는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 의하면 부족국가시대부터 행해왔는데 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에까지 이어오고 있다.

태백산은 비록 그 산세가 높고 험하기는 하나 완만하여 등산하기에 그리 부담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맑은 날이면 동해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봄에 피는 철쭉과 겨울에 피는 눈꽃이 절경이다. 정상부근에는 고사목과 주목 군락지가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태백산은 참으로 신령스러운 산이면서 웅대하고 아름다운 산이다. 민족의 영산으로 숭상하는 이곳 태백산에서 생명의 근원 물길이 시작한다. 남한의 양대 강인 한강과 낙동강이 바로 이곳에서 발원하는 것이다.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은 도계와 정선을 지나 북으로 흐르다 서로 뻗어 경기평야를 일구었고, 너덜샘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며 경상도를 한 바퀴 휘돌아 안동분지와 대구분지, 김해평야를 일구어 생명의 젖줄이 되었다. 그리하여 본다면 환웅이 삼신(풍백, 우사, 운사)을 이끌고 내려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했다는 전설의 신시가 바로 이곳이리라는 생각도 든다. 물길이야말로 생명이며 홍익인간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새벽 두 시가 넘어 잠들었건만 눈을 뜨니 아직 채 여섯 시가 되지 않았다. 역시 산중에서 맞는 아침은 상쾌하다. 간밤의 숙취도 온데간데 없다. 7시10. 출발이다. 이제 드디어 낙동강 도보기행의 대장정에 오르는 것이다. 태백고원휴양림의 통나무집 아래로 아직 채 녹지 않은 눈과 얼음 사이에 차디찬 소리를 내며 계곡물이 흐르고 그 너머에 우리를 싣고 갈 버스가 시동을 켜놓은 채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낙동강의 발원지 너덜샘이다.       파비

동국여지승람에 낙동강은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한다. 황지가 마르면 국난이 일어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