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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마의, 전노민의 첫회 퇴장이 슬픈 까닭

첫 회부터 사람이 죽는다. 슬픈 일이다. 사람 살리는 일을 하는 의원이 사람 죽이는 일에 앞장서는 것도 슬픈 일이다. 죽임의 대상은 조선의 왕세자다. 하지만 드라마는 왕세자 한사람의 죽음으로 끝내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죽임을 당한다.

강도준은 대제학의 장남이다. 명문세가의 자제로 대과에 장원급제까지 했으니 전도가 창창하다. 출세가 보장된 그에게 그러나 운명적 만남이 기다린다. 왕을 대신해 대과 급제자들을 축하하는 자리에 나타난 소현세자로 인해 이 전도유망한 청년의 운명이 갈린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세자빈을 응급처방으로 살려낸 도준에게 소현세자는 의원의 길로 나서보지 않겠냐고 묻는다. 도준이 선뜻 대답을 못하자 소현세자는 실망한 듯이 다시 따져 묻는다. (대사는 물론 대충 기억나는 대로 옮긴다. 본래 의미에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 천한 직업이라 생각되어 그러는 것이오?”

“아니옵니다. 사람 살리는 일을 천하다 생각하는 양반들의 생각이 천하다고 생각하옵니다.”

“하하, 그렇구려. 훌륭하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간 언제 칼침을 맞아 죽을지 모르니 조심해야할 것이오.”

@사진. mbc

도준은 이때부터 심중에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된다. 명문가 출신으로 대과에 장원까지 한 도준은 모든 것을 버리고 의생의 길을 택한다. 그리하여 내의원 의원이 되었으나 이마저도 던져버리고 가난한 백성을 진료하는 의원이 된다.

“내 꿈은 의원 한번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일세.”

도준은 “(소현세자를 만난 이후) 그래서 의원이 되려고 했던 것이냐”고 묻는 이명환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의원 한번 만나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 요즘으로 말하자면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세상이다. 

“아니네. 내가 아니라도 의원이 되어 병자를 고치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나. 내 꿈은 그게 아니라 세자저하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것이었네.”

아마도 이들의 이 짧은 대화로 미루어보아 도준은 소현세자가 청에 볼모로 잡혀간 이후 거리에서 백성들을 무료로 고쳐주며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자가 돌아와 왕이 되면 하게 될 혁명을 꿈꾸며.

그러나 도준의 희망대로 소현세자는 돌아왔지만 혁명의 꿈 대신 함께 죽을 운명만 갖고 돌아왔다. 조선의 임금 인조는 세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자의 ‘울퉁불퉁한’ 사상은 기득권세력에 의해 옹립된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믿는 이른바 서학(천주교)에 경도된 세자에게 왕위가 넘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 생각됐던 것이다. 김자점을 위시한 대신들도 그렇게 간한다. 그래서 죽이기로 한다. 천륜을 저버린 왕의 음모에 도준도 희생된다.

내가 이 드라마에서 유념한 것은 천한 마의(말을 치료하는 수의사)의 아들 이명환이 출세를 위해 신분의 벽을 깨고 친구가 되어준 강도준을 배신한 비정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쯤이야 어떤 드라마건 단골소재가 아니던가.

그보다는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조선이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아쉬움이 컸던 것이다. 아마도 이때부터 조선은 서인에서 노론으로 이어지는 일당독재의 시대로 접어들었을 게다(따지고 보면 지금도 그때와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흔히들 당쟁이란 말로 조선후기 정치사를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도대체 당쟁이란 표현이 가당키나 할까 싶다. 당쟁을 좀 순화시켜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정당정치가 되겠는데 조선에 그런 게 있었던가? 그랬다면 오죽 좋았을까!

이야기가 너무 비약했다. 하지만 정통성 시비로부터 늘 불안에 떨었을 인조의 나약함이 아들도 죽이고 조선의 미래도 짓밟았다는 혐의가 그리 어긋난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첫 회부터 전노민이 퇴장하는 것이(물론 특별출연이긴 하지만) 슬픈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잠들기 전, 다시 생각해보아도 소현세자는 실로 불쌍한 사람이다. 도준에게 “(사건을) 들추려 하지 말라” 하고 말할 때 그는 이미 음모의 진원지가 어디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이런 뒌장~ 잠이나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