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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창동예술촌 골목에선 어떤 소리가 들릴까?

일전에 나는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가 썼다는 대선관련 기자회견문을 비판한 일이 있다. 대중적인 기자회견문에 왜 그람시가 나오나 하는 것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석영철 경남도의원(통합진보당 창원시당위원장)이 페이스북에다 노동을 통한 교화, 총화에 대해 말했다. 

나는 이 글을 보며 허허 웃고 말았는데 좀 비약에 궤변이긴 하지만 말하자면 홍대표가 유럽사대주의라면 석의원은 북한사대주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교화니 총화니 하는 말은 우리네가 잘 쓰는 말이 아니고 북한에서 사상교육을 할 때 즐겨 쓰는 말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엊그제 창동예술촌 팸투어에 갔다가 또 다른 형태의 사대주의적 일면을 보고는 다시 한 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에꼴드 창동골목. 예상대로 어김없이 이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 나왔다. 김용운 창원시 도시재생과장과의 간담회에서 김종길(김천령의 바람흔적)씨는 이렇게 물었다. 

▲ 창동예술촌 골목에서 추억을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한 가족.


“에꼴드, 이런 말을 보통사람들이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일반시민들이 잘 알 수 있는 그런 이름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과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네, 듣고 보니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 예술촌 사업은 일단 공모에 당선된 촌장님이 기획한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쎄 이를 두고 사대주의라 하면 비약도 너무 심한 비약이라고 비난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저마다 자신이 보고 배우고 잘 아는 부분에 대해 강한 애착과 사람들에게 알리고픈 욕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창동예술촌은 에꼴드 창동골목이란 고급스런 이름에 걸맞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매우 매력적인 골목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자기한 골목은 구부구불 옛이야기를 담은 채 잘 정돈됐다. 우중충한 과거의 그림자 위에는 예술가들의 활기찬 작업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도예가의 정교한 손놀림이 빠르게 회전하는 흙더미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재생시키며 섬세한 흔적을 남긴다. 탕~ 탕~, 하나의 나무판때기에 불과했던 무생물에 목각공예가의 망치와 끌이 닿자 새로운 생명이 불어넣어진다. 

토요일 오후 창동예술촌 골목을 탐방하며 장인에게 설명을 들을 땐 그저 신기함과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망으로 깨닫지 못했는데 다음날 오전 조용한 골목을 걸으며 나는 정말이지 무생물이 생명체가 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탕~ 탕~,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정한 크기로 전해져오는 소리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취였다. 말하자면 내게도 일종의 노스탈쟈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향수인지 뚜렷하진 않지만 아무튼 ‘물결 같이 바람에 나부끼는 순정’이 내속에도 감추어져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마치 오래전 어릴 적 향수로부터 들려오는 듯한 소리에 얼굴을 돌렸을 때 그곳엔 어제 보았던 늙은 장인이 색 바랜 낡은 베레모를 쓰고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아아, 이것이었다. 저 아름다운 소리, 고요한 정적을 깨고 골목을 울리는 생명을 다듬는 소리야말로 내가 그토록 바라고 기다려왔던 소리가 아니었을까.

▲ 장인의 설명을 듣고 있는 팸투어 참여 블로거들.


물론 여기에 소년소녀들의 재잘거림과 청춘들의 그윽한 눈길과 노인들의 추억을 되짚는 발길이 뒤섞여도 더없이 좋겠다. 그 왁자함을 뚫고 들려오는 망치소리는 언젠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어느 조용한 찻집에 앉았을 때 잔잔한 회상을 타고 들려올 것이다. 탕~ 탕~. 

그러면 창동골목을 누비며 보았던 예술가들의 섬세한 손놀림과 예술촌 어느 귀퉁이 찻집에서 마셨던 진한 커피 향기와 갖가지 미술품과 오색창호지로 치장된 주점에서 마셨던 막걸리 냄새가 그리워질 것이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만삭이 된 소녀는 이 골목을 찾아 팥빙수도 먹고 싶고 칼국수도 먹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는 다시 이 골목에서 뛰놀며 예술가들의 손길을 받고 팥빙수도 먹고 칼국수도 먹으며 자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에꼴드란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지만 아마 그때쯤이면 에꼴드 창동골목은 얼마든지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이 될 만한 걸맞은 이름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경남도민일보 <해딴에>가 기획하고 창원시가 후원한 창동예술촌 팸투어 후기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 귀에는 색 바랜 낡은 베레모를 쓴 늙은 장인의 망치소리가 들려온다. 탕, 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