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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엑스포인사법, “씨부랄 것들, 다시는 안 오실 거죠?”

“씨부랄 것들이 그렇게 말을 해도 졸 나게 안 들어부네.”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소리는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 관람객들을 향해 던진 엑스포 주차안내원의 소리였습니다. 그는 매우 화가 난 투로 욕설을 쏟아냈지만 표정만은 싱글벙글 해서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아무렇지도 않게 큰소리로 욕을 해도 차안에 있는 방문객들이 눈치 채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것일까요?   

6월 6일 현충일, 아침 일찍 고성 공룡엑스포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자동차 대열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마산-통영간 국도를 타고 가다 당항포에서 좌회전해 들어간 입구에서부터 이미 자동차들은 시속 5km 내외의 속도로 뱀처럼 기어가야만 했습니다.

경남도민일보가 보도한 것처럼 엑스포는 성공적인 듯이 보였습니다. 다른 모든 행사도 그렇지만 성공의 지표는 숫자로 표시되는 관람객입니다. 그리고 이는 곧 행사로 인해 벌어들이게 될 수익 곧 돈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판단 기준이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엄청난 재정과 국가적 지원이 투입된 여수엑스포와 대등한 관람객이 줄을 잇고 있다고 보도된 고성 공룡엑스포는 크게 성공한 것임에 틀림없고 실제 보기에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들뜬 기분에 짜증낼 겨를도 없이 기다란 뱀 꼬리와 몸통을 지나 머리 부분에 다다랐을 때 듣게 된 환영의 첫인사는 이것이었습니다.

“씨부랄 것들이 그렇게 말을 해도 졸 나게 안 들어부네.”

△ 고성 공룡엑스포 홈페이지에서 인용

한눈에 보기에도 날카롭고 날렵하게 생긴 인상의 젊은이는 투덜거리며 늘어선 차량들에게 주차장 안내를 하고 있었지만 많이 해본 솜씨였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아들 녀석에게 “얘, 저기 봉 들고 안내하는 저 친구를 중심으로 해서 이 풍경 사진 좀 찍어라” 하고 말했는데 그 순간 호명된 그 친구가 갑자기 우리 차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어이쿠.’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얼마나 놀랐던지. “여기 말고 저기 저쪽으로 직진해 가시면 주차할 곳이 또 있습니다. 그리로 가십시오.” 의외로 친절한 목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 말 없이 그가 지시하는 곳으로 직진했더니 실제로 약 300m 전방에 커다란 주차장이 반 이상 빈 채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안내원이 화를 내며 투덜거린 것도 이유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든 목적지 가까운 곳에 차를 대려는 습성이 있고 조금이라도 걷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꼭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습성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우리는 이런 습성과 경향 탓에 시내의 좁은 도로들이 주차로 몸살을 앓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졸지에 공룡엑스포의 귀한 손님들이 ‘씨부랄 것들’이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위압적인 막말에 그만 주눅이 들어 “네!” 하고 군소리 없이 직행해버린 일종의 비겁함에 스스로 화가 치밀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습니다.

현충일이랍시고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을 가슴에 달고 외출하기를 고대했던 아버지와 공룡엑스포장에서 놀이기구를 탈 욕심에 가슴이 부풀어있는 아이들의 기분을 잡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탓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안내원의 거침없는 태도로부터 번져오는 조폭의 냄새가 나로 하여금 군소리 없이 “네!” 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네”와 직행, 자괴감 사이에는 찰나의 시간만이 존재했지만 그것이 너무나 기계적이어서 나는 더욱 부끄러워졌습니다. 하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은 잘한 일이었습니다. 너덧 시간 후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 매표소 입구에서 만난 안내원이 그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안내원 역시 예의 막말 안내원처럼 날카롭고 날렵하게 생겼으며 피부가 검게 그을린 게 매우 건장하게 생긴 젊은 남자였습니다. “다시는 안 들어오실 거죠?” 그는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기 위해 나오는 우리를 향해 마치 집어던지듯 말했습니다. “네” 하고 대답하자 그는 나가도 된다는 듯 손으로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예, 됐습니다.”

마지막 인사도 “안녕히 가십시오”가 아니라 “예, 됐습니다”였는데 돌아오는 내내 나는 ‘대체 무엇이 됐다는 것일까?’ 하고 곰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혼자 속으로 ‘한번 나가시면 다시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혹시 다시 들어오실 거라면 제가 확인의 표시로 도장 같은 것을 찍어드리겠습니다’ 하고 친절의 표시를 하려던 것이었는데, 너무 지치다 보니 “다시는 안 들어오실 거죠?(이것도 아마 나가면 안 들어온다는 사실을 강조해서 확인하려는 실무편의상의 의도로 보인다) 예, 됐습니다” 하고 지나치게 간결하게 말한 것뿐이라 결론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마음 한구석은 찜찜한 것이 개운치 않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하필이면 들어올 때 첫인사와 나갈 때 마지막 인사가 “씨부랄 것들이 졸 나게 말 안 듣네”와 “다시는 안 들어오실 거죠? 됐습니다”였을까?

게다가 그 안내원들은 모두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귀에 레시바 같은 것이 꽂혀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그런 게 꽂혀 있었다고 가정하고 상상하면 그들은 안내도우미라기 보다는 한 경호업체의 사설경호원들일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말씨부터가 고성지방 말투가 아닌 어느 타지방 특유의 말투였으니 아마도 먼 외지의 어떤 업체가 입찰 받았을 것이란 상상을 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공룡엑스포장 내 수석전시관 앞에서 만난 안내원은 매우 친절했습니다.

중년나이의 여성들이었던 그들은 매우 다소곳한 표정과 자세로 허리를 숙이며 “어서 오세요” 하면서 친절하게 입구를 안내해주었습니다.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들에게선 조폭 냄새도 나지 않았고 위압감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가슴에는 확실히 보지는 못했지만 자원봉사자 명찰이 달려있었던 것 같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주눅이 들었던 탓인지 “정말 친절하시군요. 여기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인가요? 그리고 이 마을 분들이신가요?” 하고 묻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아아, 용기를 내 물어볼 걸’ 하고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나 혼자 속으로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내 고장 사랑은 내 고장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고장 방문객들에게 보일 수 있는 가식 없는 친절은 진심에서만 우러난다. 그러니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