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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김문수 경기지사가 남양주소방서에 가는 이유?

실로 인간쓰레기의 첨단을 보는 것 같아 착잡하다. 인간이 변해도 어쩌면 저리도 추하게 변할 수 있을까. 김문수 이야기다. 그는 한때 노동운동가였다. 노조위원장도 했다. 노동운동권 중에서도 가장 과격하다는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을 결성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한 극렬좌파였다.

노동자 서민의 정치세력화를 꿈꾸며 이재오 등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거기서도 그는 노동위원장을 지냈다. 그런 그가 김영삼을 따라 호랑이를 잡겠다며 민자당(한나라당의 전신)에 기어들어가 국회의원을 두 번인가 세 번인가 하고 마침내 경기도지사가 됐다.

“아, 나 경기도지사 김문숩니다.”

이건 김문수가 시장통에서 지나가는 일반 시민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이 아니다. 다들 들어서 알겠지만(보아하니 김문수의 이 희한한 콩트를 못들은 대한민국 국민은 거의 없는 듯하다) 119 긴급전화에 대고 한 소리다. “나 경기도자사 김문숩니다.”

▲ 김문수 패러디

그래서 어쩌라고?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당시 소방관은 “나 경기도지사 김문수다”는 이 전화를 장난전화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천만에 말씀. 내가 그 소방관이었다면 그게 진짜 김문수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래 김문수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빨리 용건을 말해 짜샤. 이거 굉장히 긴급할 때만 쓰는 전화야. 지금 내가 너하고 횡설수설하고 있을 시간 없다고. 너 때문에 진짜 긴급한 구조가 필요한 사람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거 몰라? 이 호랑말코야.”

정말이지 김문수는 이런 모욕을 당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소방관은 너무나 차분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계속해서 용건을 말하라고만 할 뿐이었다. 오직 이유 없이 열을 낸 것은 김문수였다. 녹음파일을 들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이 짜식 이거 지가 경기도지사라고 했으면 벌떡 일어서서 ‘네, 지사님. 소방교 박○○, 근무 중 이상무, 삼가 인사 올립니다’ 이렇게 벌벌 떨어야 정상인데 안 그러니까 열 받은 거잖아. 치사한 새끼. 저런 인간이 도지사라니 나라 말세다.”

실제로 김문수는 소방관에게 계속 “내가 도지사 김문수라고 했는데 왜 인사 안하는 거야? 너 이름이 뭐야? 뭐하는 놈이야?”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그렇다. 김문수는 일개 소방관이 자기를 몰라보는 불손한 행위가 괘씸해서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만인의 안전이 달린 119 전화통을 붙들고서.

김문수는 결국 전화를 받았던 두 명의 소방관을 멀리 타지로 전보발령을 내 쫓아내버렸다. 그러나 여론이 안 좋아지자 다시 그들을 원직으로 복귀시켰다. 그렇지만 그는 반성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단다. 잘못은 소방관이 했단다. 소방관이 무얼 잘못했을까?

“나 김문수다.”

“그래 알았어. 그럼 어서 용건을 말해. 무슨 사고가 난 거야? 얼른 구해줄게.”

“어 이 자식 봐라? 내가 도지사라고 했는데도 그런 식으로 나올 거야? 나 도지사야, 도지사.”

“그래 알았다니까. 그러니까 얼른 어떤 위급한 상황인지 말하란 말이야.”

“나, 도지사라니까. 얌마 너 이름이 뭐야? 관등성명 대.”

“……”

“너 이름이 뭐야, 빨리 안 대?”

좋다. 김문수 말마따나 소방관이 잘못 응대한 거라 치자. 소방서에는 일종의 119 전화응대 매뉴얼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 내가 똑같은 방식으로 119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 이렇게 한다.

“어, 나 시민 정◯○입니다”

“네, 말씀해주세요”

“나 시민 정정◯○이라니까?”

“네, 그러니까 말씀해주세요”

“얌마 나 시민 정◯○이야. 너 누구야? 관등성명 대봐. 빨리 말 안 해?”

그러면 그 소방관은 끝까지 전화 끊지 않고 나와 입씨름 하고 있어야 될까? 그리고 김문수 씨. 당신은 어째서 두 번째 전화를 받은 소방관은 자기 이름과 관등을 밝혔는데도 용건을 말하지 않고 계속 시비를 걸었던 것인가? 문책을 받아야 할 것은 당신 아닌가?

김문수 지사가 오늘 남양주소방서를 방문한다고 한다. 두 명의 소방관도 만나겠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김문수가 정신 차리고 사과하러 가는 줄 알았다. 그랬더니 웬걸? 질책과 교육 차원에서 가는 것이란다. 허허, 이건 뭐, 성질 더러운 건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김문수 씨. 당신 지금 큰 착각하고 있는 거야. 소방관들이 장난전화인 줄 알았다고? 아니야. 당신인 줄 알았어. 당신이 경기도지사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용건을 말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용건을 말 안 하고 시비를 거느냐고. 그래서 끊은 거야. 이게 잘못이야?

극렬좌파 노동운동가이던 김문수가 한나라당에 겨들어가 금뺏지 달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일까? 근로자파견법, 정리해고법 같은 노동악법을 날치기 통과시키는데 앞장을 서는 것이었다. 원래 배신자가 가장 악랄할 법이다. 왜? 새로운 진영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니까.

한때 주사파의 대부로 평양에도 수차례 들락거렸다는 강철서신 김영환과 최홍재, 홍진표 같은 자들이 뉴라이트를 만들어 가장 처절하게 주사파와 싸우고 있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배신자는 누구보다 잔인하게, 누구보다 앞장서서 자기가 원래 있던 곳을 철저하게 짓이겨야 한다. 그래야 산다.

김문수도 이 평범하고 당연한(?) 진리를 모르지는 않았을 터. 그는 철저하게 변했다. 나중에는 노동3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욕설까지 퍼부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인정 차원을 넘어 아예 스스로가 확실하게 변했다. 그게 오늘 바로 이 모습이다.

“나 경기도지사 김문사야. 얌마, 너 누구야? 이름이 뭐야? 관등성명을 대란 말이야.”

그래, 이쯤 되면 인간 김문수와 더 이상 옳니 그르니 입씨름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자. 내가 볼 때 해당 소방관들이 한 행위는 상을 줘야 할 일 아닌가? 도지사임을 알았음에도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응대했으니 얼마나 훌륭한가?

▲ 인터넷에 돌고 있는 김문수 패러디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 돌고 있는 다음 일화를 살펴보고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김문수 당신이라면 어땠을까? “당장 구속시켜!” 이러지 않았을까? 결국 두 소방관 중 한명이 내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자신의 무례를 사과했다고 한다. 참 슬픈 일이다.

지난 9월 미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파병군이었던 예비역 다코타 마이어에게 미국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키로 결정했다. 2009년 아프간 현지에서 위기에 처한 36명의 동료를 구조하고, 4명의 시신을 수습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오바마는 건설노동자로 근무 중인 마이어가 일하고 있는 회사로 직접 전화했다. 하지만 마이어는 “지금은 근무 시간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 몰두해 일을 하지 않으면 봉급을 받을 자격이 없어진다”며 “점심시간엔 통화가 가능하니 그 때 전화해달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점심시간까지 기다린 후에야 마이어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훈장 수여식이 있던 날, 오바마는 마이어에게 “내 전화를 받아줘서 고마웠네”라며 웃었다. “대통령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마이어의 부탁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