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드라마 리뷰는 거의(아니 100%의) 블로그가 드라마 장면 중 필요한 부분을 캡처하여 사용하는데, 이는 이미지가 없을 경우 이해도나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드라마 리뷰는 글 쓰는 시간보다 이미지(사진)를 고르고 편집해서 올리는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이미지가 있는 글과 없는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sbs는 작년에도 자사 방영 드라마의 이미지를 캡처하는 것에 대해 저작권 문제로 블로거들을 단속한 전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홈페이지 이미지를 인용하는 것조차 금지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이러한 태도가 그러나 당시에는 제가 sbs를 보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지나갔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우선 평가나 대책(대책이라고 해봐야 sbs 드라마 리뷰를 쓸 것인지 말 것인지, 쓴다면 그냥 개기고 하던대로 할 것인지 이미지 없이 텍스트만 발행할 것인지에 대한 것 말고는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만)은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이왕 썼던 글이니 다시 게시합니다. 물론 이미지는 빼고 텍스트만입니다. 확실히 썰렁하기는 하군요. 독자들은 느낌이 어떠실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 그리고 블라인드 된 게시물을 살려주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텍스트만이라도 보내주신 <다음> 관리자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일부러 이메일로 해당 게시물(5개) 텍스트를 복사해 보내는 수고를 해주셨네요. 그러고 보니 저작권 시비가 된 sbs 이미지 말고도 제가 <다음뷰 베스트> 화면을 캡처한 이미지도 함께 날아가고 말았네요. 그건 sbs 거 아닌데...... ㅠㅠ
오늘 다음뷰 베스트 랭킹을 보니 1위부터 6위까지가 모두 <뿌리깊은 나무> 리뷰다. 10위권 이내에 모두 8개가 랭크됐으니 실로 대단하다. 다음뷰 베스트를 어떻게 고르는지 그 알고리즘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으나 많은 블로거들이 관심을 갖고 많이 쓴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이른바 ‘막장드라마’들이 판치는 요즘 세태에 보기 드문 ‘명품드라마’다. 거기다 한석규와 장혁의 명품연기도 볼만하다. 특히 한석규는 블로거들로부터 ‘왕의 연기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까지 받았으니 이만한 영광이 없다.
나도 이 드라마의 열혈 팬으로서 매번 이렇게 본론을 말하기 전에 칭찬부터 하고 시작하는 것이 어느 틈엔가 버릇이 되었다.
어젯밤, 이도와 정기준이 만났다. 놀랍게도 정기준은 백정 가리온이었다. 정기준은 목적을 위해 백정으로 변장하고 가리온이란 이름으로 반촌에 살면서 집현전과 궁궐에 고기를 납품해 이도의 신임을 얻었던 것이다.
역사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이도가 얼마나 고기를 좋아했는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고기와 술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가 세상 어디에 있던가. 틀림없이 이도도 그러했으리라 짐작한다. 야설에 따르면 이도가 매독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지만 어쩌면 이는 밀본이 퍼뜨린 괴담인지도 모르겠다.
“가리온아. 네가 나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이렇게 잠도 자지 못하고.”
다정하게 건네는 이도의 말에 “아니옵니다. 전하” 하고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고기를 굽는 정기준의 눈빛이 빛난다. 그는 마음속 깊숙한 곳에 숨겨둔 칼을 만지작거리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도, 이제 너도 끝이다. 너만 죽으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밀본이 추구하는 성리학의 나라는 안전하게 유지될 것이다. 바야흐로 재상총재제만 이루고 나면 삼봉선생이 꿈꾸던 조선은 마침내 완성되는 것이다.”
내금위장 무휼과 소이만 대동하고 바람을 따라 나선 이도가 가리온을 불러 고기를 굽게 한 것은 생각지도 못한 기회다. 가리온은 일부러 고기를 통째로 가져가 개파이로 하여금 썰게 했다. 돌궐에서 온 개파이는 강채윤의 스승 이방지조차도 이길 수 없는 절세고수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가리온의 음모를 눈치 챈 무휼은 개파이와 칼을 겨누게 되고, 가리온은 이도 앞에 정기준의 정체를 드러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은 일을 하지 않았는가?”라며 비웃는 정기준에게 이도는 그토록 그리던 논쟁을 제안한다.
한가놈의 말처럼 그 긴박한 상황에서 논쟁이라니 실로 두 사람이 모두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다. 이도가 먼저 묻는다. “내 글자를 보았느냐?” 정기준이 대답한다. “그래 보았다. 정말 대단한 글자더구나. 그래서 나는 네 글자가 역병처럼 번지기 전에 어떻게든 막을 것이다.”
이도는 자신이 만든 글자야말로 정도전의 사상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기준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정기준의 마음도 살짝 흔들린다. 정기준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라는 성리학이 지배하는 나라다.
‘무지한 백성들이 모두 글자를 익혀 성리학의 참뜻을 알고 이를 행할 수 있다면? 모든 백성이 하나 같이 삼강을 알고 오륜의 도리를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정기준은 이도를 몰아붙인다.
“그대는 백성을 사랑해서 글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백성이 귀찮아져서 글자를 만든 것이 아닌가? 정치가로서 책임을 지기보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글자를 만든 것 아닌가? 백성 스스로 책임지라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민중으로 살아봐서 민중을 믿지 못하겠다는 역설?
정기준에게 백성이란 믿을 수 없는 존재다. 정기준은 계속해서 말한다. “백성들에겐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이 있다. 모두가 글을 알고 쓸 수 있게 된다면 봇물처럼 잠재된 욕망들이 솟구칠 것이다. 백성들이란 아주 이기적인 존재인 것이야. 너는 지금 지옥문을 열려하고 있어.”
그리하여 정기준의 답은 이것이다.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익힌 사대부가 백성들의 이 주체할 수 없는 욕망들을 통제해야 하는 것이다. 소수의 선각자들이 백성들을 계도하고 이끌어야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오래전 서양의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정치의 이상이기도 하다.”
이도는 도무지 정기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도전의 사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도는 정기준이 진정 삼봉의 후예라면 자신을 십분 이해할 줄로 믿었다. 그는 정기준에게 묻는다. “너는 어째서 그토록 백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
나 역시 이 둘의 논쟁을 보는 내내 가슴 졸이며 그게 궁금했었다. “가리온, 너는 어째서 백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 무려 30년 가까운 세월을 백정으로 살면서 백성들과 동고동락하지 않았느냐? 그런 너라면 누구보다 백성을 잘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니더냐?”
가리온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 나는 가리온의 대답을 듣는 순간 가슴을 파고드는 예리한 비수로부터 전해지는 서늘한 촉감을 느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이도는 어땠을까? 한석규의 표정으로 보아서는 이도 역시 쉽사리 부정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은 듯하다.
“그래. 내가 바로 그 백성들 틈에서 살아보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데아가 주체사상이란 이름으로 왜곡 돼 수령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절반의 민족을 가진 우리의 현실에서 가리온의 주장이 영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잘 알지도 알 수도 없는 북한문제까지 갈 것도 없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뭐가 다른가.
백성들 틈에서 백성으로 살아가는 나도 가리온이 틀렸다고 쉽게 말하기가 참 어렵다.
ps; 오늘 보니 흔들리던 이도가 다시 마음을 잡았군요. 이 드라마는 참으로 미묘하면서도 매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가리온이면서 정기준인 사람들, 도담댁이나 윤평 같은 이중적 인물들은 넘쳐나고 있습니다. 가리온이야 원래가 정기준이었다고 치더라도 도담댁이나 윤평 같은 인물은 대체 뭘까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데 이 사람들은 거꾸로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걸까요? 아니 그보다는 이분들은 의식과 존재가 따로 노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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