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센세이셔널한 제목이 눈에 띈다. “조폭은 목욕탕도 못갑니까?” 부산지역의 조폭들이 경찰의 단속에 집단반발 했단다. 아니, 무슨 일이기에 조폭들이 경찰에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것일까?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원래 조폭들이란 자기보다 힘이 약한 일반시민들 앞에서는 어깨를 뒤로 젖히고 팔자걸음을 걸으며 팔을 휘젓고 다니지만 경찰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양순해지는 존재 아니던가. 세상 많이 좋아졌다. 거기도 민주화 바람이 불었나?
아무튼,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들여다보았다. 오, 이게 무슨 일이람. 온몸에 문신을 새긴 채 목욕탕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준 폭력배 13명에게 5만 원짜리 경범죄 스티커를 발부했다는 소식이다.
▲ 사진은 방송화면 캡처이미지
세계일보 이름으로 나온 이 기사는 “조폭은 목욕탕도 못갑니까”란 제목을 달고 조폭들이 집단반발을 한 것처럼 기사를 썼지만 내가 보기엔 집단반발까지는 아니었던 같고 단지 한두 명이 “공갈친 적이 없는 내가 이 목욕탕을 수년 동안 이용하고 있는데 무슨 잘못이냐"며 거세게 항의한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기사에 달린 천 건이 훨씬 넘는 댓글들이 말해주듯이 “문신을 하고 목욕탕에 들어간 자체가 이미 공갈”인 것이다. 조폭들의 처지를 긍휼히 여기는 댓글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너희 존재 자체가 이미 불법이며 재앙”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 기사는 “경찰은 앞으로도 매주 수요일을 '문신 폭력배' 단속의 날로 정해 문신 등으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조폭들을 지속적으로 단속해 나갈 계획이다”라는 말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단속에 반발한 조폭이 부산지역인 걸로 봐서 ‘경찰’도 부산경찰청을 말하는 것 같기는 한데 좀 애매하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니, 나도 한달쯤 전에 목욕탕에 집단으로 문신을 한 채 들어온 조폭들을 단속해달라고 112에 신고한 적이 있는데, 돌아온 경찰의 답변은 “단지 문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는 단속을 할 수 없지 않나요?”라는 것이었다.
당시 목욕탕에는 십여 명의 이용객이 있었는데 갑자기 4~5명의 조폭들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쳤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이들의 출현이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느낌을 주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목덜미 아래에서부터 등줄기를 타고 허벅지까지 진하게 그려진 용이나 호랑이 그림은 이들이 조폭에 해당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한 법률적 판단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오로지 혐오감과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신 자체만으로도 ‘선량한 시민’들에겐 조폭이었다.
이들 조폭이 들어오는 순간, 평온하던 목욕탕엔 순식간에 칼바람이 불었다. 욕조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과 더불어 하늘거리던 느긋한 평화는 순식간에 깨어지고 적막한 공포가 욕탕을 휘감았으며 용이며 호랑이 문신에 휘감긴 거대한 살덩이들만이 그 공포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마침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라 112에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좀 조치가 안 될까요?”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이것이었다. “특별히 위협적인 행동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닌 이상 강제로 퇴거시키거나 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전화를 받았던 경찰관도(여성이었다) 현장을 보았다면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온몸에 문신을 휘감고 목욕탕에 들어온 것만으로 충분히 위협적인 폭력행사로서 처벌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설마 이들이 미안한 마음에 목욕탕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때를 밀다가 조용히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자기 몸에 웅크리고 있는 흉악스러운 짐승들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내밀며 모든 공간이 내 것인 양 활보한다. 그리고 하염없이 작아지는 나머지 이용객들.
하지만 ‘조폭이라고 해서 목욕도 못하게 할 순 없지 않느냐’는 취지의 말에 별달리 반론을 낼 수도 없어 물러서고 말았는데, 오늘 경찰이 지속적으로 몸에 문신을 한 조폭들이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을 단속하겠다는 기사를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암, 그래야지.
그런데 그 ‘경찰’이란 것이 대한민국 전역의 모든 경찰을 말하는 것인지, 부산지역만의 경찰을 말하는 것인지 기사만 보아서는 불분명하다. 창원에서도 단속을 하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한번 알아봐야겠다. “우리 동네에서도 목욕탕에 들어오는 문신, 단속하나요?”
ps; 이 글을 써놓고 검색해보니 울산지방경찰청에서는 이미 지난달 중순부터 관할 목욕탕마다 문신을 한 조폭의 출입을 자제하는 안내문을 붙이고 단속에 걸리면 5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이 안내문에는 “불안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면 신고해 달라”는 내용도 들어있다고 한다. 나도 신고했는데? 그럼 경남지방경찰청만 특별히 ‘조폭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얘긴지,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참에 이런 건 어떨까. 조폭들을 위한 전용목욕탕. 물론 경찰이 약속대로 지속적인 단속을 해준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아이템이다. 아무 곳이나 입맛대로 갈 수 있다면 굳이 이런 조폭전용목욕탕이 있을 까닭이 없다.
다시 생각해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일반시민들은 조폭들로부터 불안감과 혐오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조폭들도 자기네들끼리 모여 돈독한 조직력을 과시하면서 업계 정보도 교환 활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런 걸 일러 ‘상생’이라 하는 거 아닐까?
아이쿠, 이거 끝마디가 좀 이상하넹~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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