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셋째 주에 열리는 <걷는사람들>의 걷기 행사가 한주 앞당겨져 오늘 열렸던 것입니다. 원래는 동판저수지와 주남저수지를 둘러본 다음 주남저수지 람사르문화관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일 계획이었습니다만, 아쉽게도 싱겁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그런 건 아니군요. 박완수 창원시장님께서 통 크게 결단을 해주셔서 문제가 잘 해결된 것이지요. 덕분에 추운 날씨에 단식농성이 장기화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잘 됐습니다. 모두 박 시장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드릴 인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고맙습니다.
▲ 주남저수지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았습니다. 지난 화요일 창원시청 정문 앞 단식농성장에서 두 분 마창진환경연합 공동의장님과 블로거간담회를 할 때만 해도 무지하게 추웠습니다. 그 때문이었던지 신금숙 의장은 얼굴이 창백했습니다.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죠. 박종훈 의장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리고 비도 부슬부슬 자주도 내렸지요. 두 분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사실 고생은 신 의장이 더 많이 했습니다. 박 의장은 외국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합류했지만 아무튼 5일을 신 의장이 먼저 했던 것입니다. 다 쓰러져가는 신 의장님 보면서 박 의장님, 속으로 걱정 많았을 텐데, 박 시장님께 고맙다고 하셔야 할 것 같아요. 하하.
동판저수지 주변은 처음 걸어보았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걷는사람들>의 어느 아줌마 회원말씀대로 ‘정말 예쁜’ 저수지였습니다. 동판저수지는 저수지라고 불리지만 저수지 같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뭐랄까요, 아름다운 호수 혹은 우포늪 같은 습지?
저수지 주변에 군데군데 만들어진 단감밭들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변두리로 나와 보니 창원이 기계공업도시요 자건거의 도시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단감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단감주산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최근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철새들이 비상하고 단감이 누렇게 익어가는 주남저수지가 창원에 있다는 것은 창원이 명실상부하게 환경수도라는 이름에 하등의 부족함이 없다는 증명서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이번에 박완수 창원시장님이 내린 결단은 매우 존경할만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11월 13일 일요일. 주남저수지는 유원지처럼 북적여 걷기도 힘들었다. 새보다 사람 구경?
보통 단체장들은 자기가 한번 내린 결정을 잘 번복하지를 않습니다. 이미 내린 결정에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체면 때문에 자존심이 구겨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헤게모니적 관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박 시장님께서 “6개월 동안 함께 현지조사를 철저히 해서 결정하자”고 한 것은 아주 잘 한 일일 뿐 아니라 그동안 전국 각지의 단체장들이 보여준 관료적 행태에 비하면 매우 존경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철저한 조사를 통해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길 기대합니다. 더불어 욕심을 부린다면 주남저수지 주변 농경지의 친환경화라든지 기존 철새보호에 배치되는 시설물이나 사업의 변경 등 보다 전향적인 대책도 마련되길 기대해봅니다.
날씨 탓이었던지 휴일의 주남저수지는 마치 유명한 관광지처럼 북적였습니다. 키보다 훨씬 높게 자란 물억새가 거슬리긴 했지만 사람들은 몹시도 즐거운 표정들이었습니다. 단란한 가족들, 손을 맞잡은 연인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사진사들… 모두들 신이 났습니다.
그러나 웃고 떠들며 주남저수지 둑길을 걷고 있는 그들은 정작 새들에 눈길을 주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치 새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새가 있는 주남저수지를 보러 온 듯이 보였습니다. 새들의 낙원 주남저수지가 이날 하루만큼은 왁자한 시장통이 돼버렸습니다.
저의 느낌으로는, 만약 주남저수지를 둘러 60리 길이 생긴다면 마창진환경연합의 말대로 철새들은 단 한 마리도 남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정도만으로도 새들은 정신이 없을 터이지만 아직은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반대편에 조용하고 아늑한 피신처가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곳에도 길이 생겨 마침내 주남저수지를 빙 두르는 사람들을 위한 잘 정비된 둘레길로 자신들이 포위된다면? 답은 뻔한 것입니다. 우리가 철새라면 어떻겠습니까? 탈출,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철새들 중에는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50여 종의 희귀종들도 있습니다.
주남저수지 둑방 아래 한쪽에서는 나이 지긋한 일단의 관광객들이 관광버스를 옆에 세워두고 거한 술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소주박스를 줄줄이 깔아놓고 그 주변에 다시 소주박스를 의자 삼아 앉아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돌리는 모습이 준비를 제대로 해왔습니다.
꼴불견입니다. ‘남의 동네에 관광 왔으면 그 동네의 맛난 음식점에 가서 좀 팔아주는 것이 예의 아니겠느냐’ 하는 따위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떠나서 바로 코앞이 철새들의 서식지인데 그곳에서 단체로 술을 마시고 떠드는 것이 꼴불견이란 것입니다.
아무튼 제가 보기에 세계적 철새도래지 주남저수지에 와서 철새를 제대로 보고 가는 사람들은 별로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주남저수지에 철새가 없다면 오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철새를 자세히 보지는 않지만 어쨌든 철새가 있으니 오는 사람들이지요.
좀 어폐가 있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제가 보기에 그것은 진실입니다. 주남저수지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도 어느 정도 만족시키면서 철새들의 훌륭한 서식지로 보존될 수 있을까요? 환경연합도 무조건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해라(사실은 그렇게 주장하고 싶겠지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앞으로 6개월이 하나의 모범을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습니다. 이런 표현이 싫다면 음양의 조화야말로 천지의 섭리다, 뭐 이런 말로 대체해도 되겠습니다.
아무튼 신금숙, 박종훈 두 마창진환경연합 공동의장의 단식농성을 풀게 해주신 박완수 창원시장님의 결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어떻든 철새도 마찬가지지만 사람도 밥을 먹어야 사는 것인데 굶는다는 것은 정말 안 좋은 것입니다.
이번 결단이 람사르의 도시 창원이 한국 최대의 공단임과 더불어 환경도 잘 보존하고 가꾸는 진정한 환경수도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결단은 박 시장님의 승리도 환경연합의 승리도 아닌 환경수도 창원시의 승리 아닐까 합니다.
▲ 주남저수지 인근 논에서 식사 중(?)이던 새들이 갑자기 접근한 두 사람에 놀라 한꺼번에 비상하고 있다. 우리에겐 장관이었지만 철새들에겐 비상사태!
이상 주남저수지를 찾는 많은 분들도 철새들의 조용한 식사에 협조해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이만 총총...
2011.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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