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가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요?”
글쎄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창원시가 뭣 땜에 250억이나 되는 돈을 들여 주남저수지에다 60리 길을 낸다는 거지요?”
질문을 받은 신금숙, 박종훈 두 공동의장은 할 말이 없었나봅니다. 두 사람은 지금 단식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창원시청 정문 앞 노상에다 스치로폴을 깔고 하루 종일 앉아있습니다. 우리가 갔을 때 신 의장은 이미 단식 6일째를 맞았고, 외국 출장에서 다녀온 박 의장은 막 단식을 시작하는 중이었습니다.
신 의장은 이미 눈이 퀭한 게 기력이 쇠진했습니다. 힘들어 말도 못할 지경으로 보였습니다. 하긴 밥을 안 먹으니 말할 기력이 있을 리 없습니다. 아무튼 저는 사실 지금도 이 부분이 가장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아니 왜, 250씩이나 들여 그 변두리에 길을 낸다는 건가요?”
11월 8일 오후 7시. 날씨는 한참 겨울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전날까지도 여름처럼 따뜻했던 늦가을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두 사람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밥이 넘어오지 않으니 몸이 스스로 열을 낼 수도 없습니다. 장작이 있어야 불을 때지요.
신 의장이 이날 낮부터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입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날씨와도 무관하지 않아보였습니다. 밥도 먹지 못하고 있는데다 날씨까지 추워지니 몸에 이상이 없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도 저는 너무 궁금해서 재차 궁금증에 대한 답을 재촉했습니다.
“돈이 쓰고 싶어서 환장해서 그런 것일까요?”
외국 출장길에서 돌아오자마자 시차에 적응할 틈도 없이 바로 단식농성에 합류한 박 의장은 추운 날씨에 잔뜩 몸을 웅크린 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지요. 그것 외에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안색이 파란 신 의장도 곁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시장 하면서 제일 좋은 게 뭐겠습니까? 예산 자기 하고 싶은 일에 마음껏 쓰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재미에 시장질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왕 쓰는 돈 주변 사람들에게 폼 나게 쓰고 싶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걸 도랑치고 가재도 잡고 한다는 거지요.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주남저수지냐는 겁니다. 주남저수지 말고도 돈 쓸 데 정말 많습니다. 박완수 창원시장님은 복지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하실 테니까 그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일전에 듣기로, 오동동에 문화광장공원을 조성할 거면 좀 크게 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에서는 난색을 표했다지요? 이유는 돈이 많이 든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문화광장공원 조성이 옳은지 그른지 그건 잘 모릅니다. 다만 도심에 공원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주목하는 것은, 그러한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예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정확한 것을 기억할 순 없습니다만 그 곤란한 예산이란 것이 지금 주남저수지에 퍼부으려는 예산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동동 주민들의 생각은 거기에 공원을 조성하면 오동동-창동 상권이 활성화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창원시는 돈이 없어서 부응을 하지 못한다, 그런 얘기였습니다.
주민들이 그렇게 해달라고 졸라대는 일에는 돈이 모자라 사업을 축소해서 최소규모로 예산을 편성하고 시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사업에는 어떻게든 대규모 예산을 편성해서 물리력으로 일을 강행하는 이유는 또 대체 무엇일까요?
아, 그러고 보니 마산만에 인공섬을 만들 계획에 또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될 예정이랍니다. 저는 처음에 제 두 귀를 의심했습니다. 인공섬이라니. 설마. 그러나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바로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앞의 바다에 돝섬의 몇 배나 되는 거대한 섬을 만든다는 겁니다.
저는 앞으로 바다를 볼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크게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앞이 확 트여 돝섬과 마산만이 훤하게 보였었지만 이제는 대형 아파트와 빌딩들이 가려 군데군데 바다가 보이기만 할 뿐이니 차라리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거대한 장벽이 앞을 가로막는 게 홀가분할지도 모릅니다.
이 섬이 완공되면 우리 같은 시민들의 알량한 조망권 따위는 문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답니다.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살아보고자 애쓰는 창동, 오동동 상인들이 다 죽는 거지요. 물론 창동, 오동동 상인들만 죽는 건 아닙니다. 다른 지역 상인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이것도 지금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있습니다. 창원시는 한 발 물러섰습니다. 상가와 아파트는 안 짓겠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걸 누가 믿을 사람이 있습니까? 인공섬 저지를 위한시민대책위의 한 인사에게 전화를 건 어느 담당공무원은 “안 한다는데 자꾸 그러면 고소할 수도 있다”고 그랬다는군요.
그렇지만 주남저수지의 예에서 보듯이 창원시(장)의 말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각서를 쓰고 공증을 하지 않는 한 말이지요. 무슨 얘기냐고요? 창원시장은 2008년에도 마창진환경연합측과 약속을 했습니다. 주남저수지에 더 이상 길을 내는 공사를 하지 않겠다고요.
그래서 환경연합은 람사르문화관 앞과 그 오른편 제방까지의 철새탐조용 길 외에 더 이상의 공사는 없다는 말을 믿고 37일간의 농성을 풀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암암리에 공사는 모두 끝났습니다.
250억 원을 추가로 들여 주남저수지를 빙 두르는 60리 둘레길을 완성하겠다는 창원시의 계획을 알고 주남저수지를 둘러본 마창진환경연합 관계자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하지 않기로 철썩 같이 약속했던 나머지 공사가 모두 완공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환경연합이 4대강사업 반대에 모든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동안 슬그머니 공사를 다 해버린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크크 하고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정치인 말을 믿다니 차라리 고양이가 생선엔 절대 손 안 댈 테니 생선가게를 맡겨달라는 말을 믿는 게 낫지요. 요즘 창원시 다시 째자니 말자니 하는 소란만 해도 그렇습니다. 믿을 걸 믿어야지요.
아무튼 이번엔 마창진환경연합의 두 공동의장이 죽을 각오로 나섰습니다. 완전백지화가 목표랍니다. “주남저수지에 둘레길을 내면 철새들이 다 떠납니다. 주남엔 50여 종의 멸종희귀조류가 있습니다. 이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들보고 다 죽으라는 얘깁니다.”
주남저수지에 60리 둘레길을 내는 이유는 뭘까요? 돈 쓰자는 거 말고 다른 이유는 없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으면 안 되지요. 거기에 철새가 있어섭니다. 사람들이 더 가까운 곳에서 철새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생각일 겝니다. 그래서 환경수도는 더욱 빛나는 겁니다.
그러나 이걸 어쩌죠? 그렇게 해서 철새도래지에 사람들이 들끓으면 철새들이 “어서 오세요. 반가워요” 그러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실컷 보여주나요? 철새들이 “오우,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진도 막 찍어주고 그러니까 정말 좋아요” 그럴까요?
하하, 박완수 시장님.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그건 정말 오산이에요. 철새들은 모두 떠나고 한 마리도 남지 않을 거구요, 세계적 철새도래지는 그저 황량한 저수지로만 남을 거예요. 그럼 시장님이 들인 250억은 어떻게 되는 거지요? 아니 5백억일 수도 있겠군요. 이미 반절은 몰래 완공했다니까요.
괜찮다구요? 철새들이 하나도 없어도 사람들은 올 거라구요? 아, 낚시꾼들은 오겠군요. 하루 종일 앉아 물고기를 기다리다가 지치면 시장남이 만들어주신 수백억대의 길을 한 바퀴 돌면서 다리에 생긴 근육에 감사를 드릴지도 모를 일이군요. 세계적 낚시꾼 도래지…!
오늘이 벌써 단식농성 9일째네요. 저는 어떤 경우에도 단식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당연히 권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건강상의 이유로 단식하는 것에 대해서도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분 의장님. 이왕 단식투쟁 시작하셨으니 뜻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꼭 창원시장의 어처구니없는 계획이 철회되길 바라마지않습니다. 그러나 꼭 명심하실 것이 있답니다. 이번엔 그냥 농성 푸시면 안 됩니다. 반드시 서면으로 약속 받으시고 필요하다면 공증사무소에서 공증도 받아놓으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창원시장은 지금까지의 예로 보아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되기 때문이지요. 그건 그렇고 시장님. 돈 쓸 데가 별로 안 보이시나본데요. 잘 찾아보세요. 돈 쓸 곳 무지 많답니다. 당장 제가 사는 마산만 해도 돈 좀 쓰라고 아우성들이지 않나요?
이날 간담회는 창원지역 블로거 6명과 함께 신석규 전 마창진환경연합 의장, 임희자 사무국장, 감병만 부장 등이 동석했는데 정말로 추웠습니다. 겨우 1시간 반쯤 앉아있는데도 죽겠더군요. 가을이 물러가고 바야흐로 겨울이 시작되려는 것인가요.
시청 본관 옥상에선 철새들이 주남저수지에서 힘차게 비상하는 모습이 담긴 환경수도를 자랑하는 전광판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밝게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아이러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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