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이었던가. 내가 신뢰하는 우리 지역의 모 일간지가 이병철을 일러 선생이라고 호칭하며 기사를 쓰는 바람에 몹시 불쾌했던 적이 있다. 기사 제목이 아마도 '의령군이 이병철 선생 생가복원 사업을 한다' 뭐 이런 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 성격에 가만 있었을 리 없었다. 그 신문사에는 친분이 두터운 기자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것이 내 불쾌감의 표출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즉시 내 블로그에 비판 글을 쓰고 그 신문사에 독자투고도 했다.
"이병철이 선생이라고? 이리 나가다간 개나소나 다 선생 되겠다. 이완용 선생 이래봐라. 어울리냐? 하긴 북한정권은 정주영이 한테도 '정주영 선생' 뭐 이러더라만. 그때 노동자들 기분이 얼마나 더러웠을가. 아니 정주영 식으로 표현으로 하자면 뇌동자지. 북한이야 뭐 얻어먹을 게 있어서 정주영이를 선생 반열에 올려줬다고 치고. 신문사 기자는 대체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이병철이더러 선생이라고 부르는 건지."
왜 이런 케케묵은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가. 오늘 포털 다음 메인에 보니 이건희 씨와 홍라희 씨가 손을 굳게 잡고 어디론가 가는 사진이 실렸다. 이런 거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년의 부부가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은 실로 아름다운 장면이다. 사실은 그렇게 못하는 우리가 문제다. 문제는 다시 기자다. 오죽 기사를 쓸 게 없었으면 이들 부부가 다정히 손잡고 해외로 출국하는 사진을 실었을까.
하지만 그것도 별 문제는 아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기자의 눈에는 이들 부부가 움직이는 모양새가 하나의 중요한 기사감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관심을 갖는 국민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제일 돈 많은 부자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마치 자기기 그리 된 양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기자가 이건희 씨 아내를 일러 '여사'라고 칭했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을 일러 '선생'이라고 부르던 우리 지역의 한 기자가 생각났던 것이다. 이병철 선생이라니. 참 이놈저놈 다 선생이더니 이젠 이년저년 다 여사다. 그냥 편하게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씨가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시장점검을 위해 출국하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일까? 이 기사를 다룬 기자가 혹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여사'란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취미가 아니라면 이것은 정말 난센스다.
그러고 보니 신문사 이름이 머니투데이다. 머니투데이. 그랬군. 돈, 즉 자본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재단하는 언론이란 느낌이 이름에서부터 팍 온다. 그러니 당연히 존경하는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를 감히 홍라희 씨라고 부르진 못할 게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건 자기들끼리의 사적인 공간에서 그리 하면 될 일이고 공적인 기사의 영역에서 만인을 향해 '홍라희 여사님'을 읊조리는 건 아무래도 기자로서 상식 이하다.
글쎄 괜히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고 말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성경에도 보면 태초에 말이 있었다고 했고 우리 속담에도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같은 말이 있는 것처럼 말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홍라희 씨라고 하는 것과 홍라희 여사라고 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두 말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인간의 뇌를 지배할 정도의 엄청난 차이가.
기자님들이여. 제발 말을 제대로 쓰자.
▲ 머니투데이
그런 거죠. 그럼 뭐야. 우리는 모두 당신 남편의 쫄들이란 말이야? 뭐 그런 경우는 그냥 귀엽게 봐주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요. 글로 소개하니까 생동감이 없지만 이웃 아주머니가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고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보세요. 영상으로요. 정말 웃길 거에요. 이렇게요. "우리 남편께서는요. 정말 못하시는 게 없고요. 참 훌륭하신 분이에요." 그때 느낌은 밉다기보다는 그냥 귀엽고 어이없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암튼^^ 그 아주머니, 요즘도 그렇게 사시는지는 모르겠네요. 그 아파트를 떠난지가 벌써 10년이 다 돼 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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