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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수녀들이 부르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블로거 달그리메가 26일 그의 블로그 <작은나무 큰그늘>에 쓴 글의 제목 ‘마산을 말아먹은 황철곤, 마산을 살린 수정마을 사람들>은 실로 지난 4년 동안 이끌어온 수정만 문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런 것이다. 황철곤은 마산을 말아먹으려 했으며, 수정마을 사람들은 4년 가까이 줄기차게 저항해 마침내 마산의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왜 황철곤 전 마산시장이 마산을 말아먹으려고 했을까?

이런 질문을 하면 달그리메의 글에서 보듯이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당장 타박을 받을지 모른다. “아니, 자네는 글 쓴다 캄서 그런 것도 모리나?”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한 장을 받았을지 열 장을 받았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한 장의 액면가가 천원인지 만원인지도.

이런 말들은 워낙 세상이 썩었기 때문에 지레짐작으로 나오는 말일 터이다. STX로부터 받은 돈이 어느 배추밭에서 썩어나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들도 모두 그래서 나온 것일 게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황철곤 씨가 마산경제의 발전을 위해 살신성인으로 STX조선소를 유치하려고 한 건 절대 아니란 거다.

황철곤 씨가 마산시장 3선을 하고나서 다시 시장이 되고파 통합 창원시를 주창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마산시민들은 소외감에 떨고 있고, 손님들이 떠난 구 마산시청 주변은 황량하기만하다.

그러고 보니 자다가 떡이 생긴 박완수 시장만 좋아졌다. 그는 내친 김에 1년도 안된 통합시를 광역시로 만들겠다고 난리다. 막말로 간덩이만 키워놓았다. 그러다 보니 ‘마산을 말아먹은 황철곤’이란 달그리메의 글 제목은 그래서 하나도 지나치지도 않아 보인다.

축하잔치를 한다기에 25일(토) 아침 일찍 수정마을로 갔다. 먼저 9시 반부터 트라피스트 수녀원에서 열리는 미사부터 참석했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경남지역의 많은 신부들이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왔다. 아마도 시끌벅적했던 수녀원은 이제 다시 한적한 봉쇄로 들어갈 것이다.

백남해 신부의 강론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주민 여러분, 이제 좀 쉬면서 따뜻한 볕드는 담벼락 아래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배 한 대 태우며 지난 일을 얘기하십시오. 나른하고 졸음 오는 오후에 생각하십시오. 이런 소소한 일상, 지루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백 신부는 주민들과 함께 투쟁한 수녀들을 향해서도 말했다. “수녀님들은 기도해주십시오. 진정한 평화는 손 놓고 앉아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만들고자 하는 선의의 사람들이 손에 손을 부여잡아야함을, 세상 사람들이 알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이날 미사의 마지막 파견성가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었다. 트라피스트 수녀원의 수녀들이 합창으로 부르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봉쇄수도원에서 세상과 떨어져 잔잔하고 지루한 삶을 살던 수녀들이 마을주민들과 함께 한 4년….

그 4년의 세월 끝에 승리의 노래로 부르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모두들 뭉클했을 것이다. 그리고 백 신부의 말을 생각했을 것이다. 작은 평화라도 얻고 지키기 위해선 선의의 사람들이 손에 손을 부여잡아야 함을.

이어 수정초등학교에서 열린 축하행사에도 갔다. 초등학교 강당에는 많은 수정마을 어르신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서로 축하인사를 건네며 하하, 호호 웃고 떠들고 있었다. 수녀들도 그 틈에 끼여 대회장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시골마을에서 이렇게 큰 행사가 열린 것은 마을이 생기고 처음이 아니었을까. 행사는 어설프고 실수가 잦았지만 훈훈했다. 마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처럼 국민의례도 했다. 6~70이 넘으신 어르신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는 정말이지 웃음이 났다.

마침 6.25전쟁 발발기념일(?)을 맞아 순국영령들을 위한 묵념의 시간도 가졌다.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는 순박한 사람들인가. 이들이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인 데모를, 그것도 무려 4년씩이나 마산시청과 경남도청, 서울 STX 본사를 오가며 벌였단 말인가.

그저 조용한 어촌마을에서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투쟁을 하고, 삭발을 하고, 시장실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난 4년간 벌어졌다. 그러나 이제 수정마을은 웃음을 되찾았다. 평온이 찾아온 것이다.

지난 경과를 보고하던 윤인혁 수정마을주민대책위원회 윤인혁 보도위원장의 말이다. “이제 제자리에 돌아와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정의는 언젠가 밝혀지고 승리한다는 것을.”

그는 수녀들을 향해서도 치하를 했다. “수녀님들이 오죽했으면 밖으로 나와 우리 대책위와 함께 했겠나. 생전 가보지도 못한 경찰서, 검찰 다 가보고, 전과자도 되고.” 그는 또 STX를 향해서도 말했다. “이제 STX는 창원시와 협의해서 매립지가 공익적으로 이용되도록 노력해 달라.”

아, 그러고 보니 사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직 남은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풍요롭던 바다를 메우고 요란한 기계소리가 끊이지 않던 자리에는 황량한 콘크리트 매립지만 남았다. 하지만 기업에서 보면 이건 금덩어리다. 이제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을주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일은 없어졌지만, 파도가 넘실거리던 마을 앞마당 같았던 바다는 육중한 콘크리트로 뒤덮인 흉물로 남았고 여전히 STX의 땅투기 가능성이 남아있다. ‘마산을 말아먹은 황철곤’에게 따지고 싶지만 감옥에 있는 그는 책임질 힘도 없다.

수정마을 주민들이 그동안 도움을 준 이들을 위해 특별히 행사장 한쪽에 자리를 만들고 감사패까지 만들어 주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일어나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잘 뽑아야 됩니다. 진짜 잘 뽑아야 됩니다. 투표 그거 정말 중요한 겁니다.”

박석곤 수정마을대책위 위원장으로부터 인사말을 부탁받은 강기갑 의원은 “농민운동을 오래 해왔지만 주민들이 이렇게 힘을 모아 좋은 결과를 낸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치하하고 또 “이명박 정권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수정마을을 통해 조물주께서 교회가 (세상의 부조리한 일에) 나서도록 한 것 같다”고 말해 교회의 역할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수정초등학교 운동장에는 푸짐한 음식과 술도 마련됐다. 하지만 어쩌면 이 술과 음식은 끝나지 않은 제2라운드를 위해 힘을 비축하고 지난 4년간 물심양면으로 수정마을 주민들과 함께 해온 인사와 단체들에게 연대의 정신을 잊지 말라고 일깨우는 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모두들 웃고 떠드느라 정신없이 행복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