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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3대세습 비판하자고 하면 사상검열일까요?

거다란님께 드리는 댓글

거다란님의 ☞<진보신당의 3대 세습 비판은 사상검열> 이란 글을 읽고 한자 붙입니다. 왜 3대세습 비판이 사상검열일까요? 저는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3대 세습 비판은 사상검열이다’라고 미리 못 박아 말문을 막는 것이 실은 사상검열이 아닐까?”

물론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3대 세습 비판을 하는 것은 옳지만 그걸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것은 사상검열이다.” 옳습니다. 누군가는 3대 세습을 옹호할 수도 있고, 북의 체제가 배워야할 정치체제라고 말할 수도 있으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치적을 칭찬할 수도 있습니다.

오래전에 제게 실제로 그렇게 말한 사람이 꽤 있지만, 저는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고 지금도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건 그들 생각의 자유입니다. 저는 오히려 초원의 사자들의 세계에 빗대 주체사상의 핵심이론인 ‘수령론’은 매우 현실적이고 불가피한 사상체계일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3대 세습이 이 수령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것은 이 분야에 약간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입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저는 그들의 수령론을 이해한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관계 때문에 나온 다분히 정치적 발언이었을 뿐 아직도 도무지 왜 그런 사상이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우리가 사상논쟁을 할 이유는 없겠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진보신당이 3대 세습을 비판하는 것이 사상검열’이란 주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것은 사상검열이 아닙니다. 진보신당의 입장으로 보면 매우 온당한 요구인 것입니다.

구 민노당이 현재의 민노당과 진보신당으로 갈라진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는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민노당 분당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소위 ‘민노당 간첩사건’이었습니다. 간첩혐의로 체포된 당시 민노당 사무부총장과 모 중앙위원이 북의 정보당국에 민노당 핵심당원들의 신상정보를 넘긴 게 발단이었죠.

이른바 ‘종북주의’ 논란이 벌어진 것입니다. 또 다른 분당의 원인으로 패권주의를 꼽기도 합니다만, 이 패권주의 역시 ‘종북주의’로부터 나온 것이며 따라서 패권주의는 절대 포기될 수 없는 전략 포지션일 거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물론 반대편에서는 이를 ‘종북소동’이며 한 치의 진실성도 없는 매도라고 주장합니다.

@사진. 거다란닷컴

이런 논란이 최근 다시 불거지는 것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진보대통합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신당은 민노당과의 협상에서(정확하게는 8자연석회의에서) 통합조건으로 북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명기할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위에 말한 전차들 때문에 진보신당이 거다란님이 말한 소위 ‘사상검열’을 하려는 것이죠.

이쯤에서 제 입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사실 진보대통합에 반대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찬성하는 편도 아닙니다. 민노-진보가 통합한다고 해서 정치적 지도가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사회당도 있다고 말합니다만, 죄송하지만 제 눈에 사회당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당의 실체를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진보신당의 협상카드일 뿐 아니겠나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저는 차라리 통합할 거라면 문성근 식으로 단일정당을 만들어서 그 안에 블록을 만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선 결선투표제와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등 정치개혁을 단일정당의 목표로 정하고 목표가 달성되면 각자 헤쳐모이는 장기비전을 갖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백만민란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현재의 진보정당은 아무리 봐도 소수정당, 지역정당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어 보입니다. 울산, 창원, 거제가 하나의 교두보 내지는 근거지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한국정치의 오래된 벽을 넘는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순천에서 민노당이 의원을 냈지만, 내년에 민주당이 이곳에 후보를 낸다면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죠).

영국의 노동당이나 스웨덴의 사회민주노동당이 성공했던 유럽의 상황이 우리나라에도 만들어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만큼 지루하고 힘든 일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고백하자면, 제 이름 파비도 실은 영국노동당을 만든 페이비언에서 딴 것이란 걸 말씀드립니다.

이렇게 대규모적인 단일정당운동으로 진보대통합운동이 바뀐다면, 북한에 대한 입장 표명이나 3대 세습 비판을 명시하자니 하는 말은 필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강령이 필요 없는 정당입니다. 이들에겐 당헌과 당규만 있으면 족합니다(한나라당과 민주당에 강령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있더라도 껍데기뿐이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명시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될 일도 없을 것이고, 또 가시적인 집권이 기대되는 정당이 불필요하게 협상의 상대인 북한을 자극할 만한 강령을 가지는 게 좋은 모양새도 아니지요(물론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는 조선노동당이 대남적화노선을 명시했다고 해서 그들과 대화 못하겠다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진보대통합이라면 어떻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소수정당, 지역정당의 한계가 분명한 정당입니다. 통합하면 2004년과 같은 20%대의 지지를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하겠지만 현실은 그저 야무진 꿈에 불과하다고들 말합니다. 혹자는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이나, 진보대통합당이나 다 등대정당 이상이 되긴 어려울 거라 말합니다. 게다가 진보대통합당의 두 블록은 색깔이 너무 다릅니다(하기야 오래 함께하다보면 색깔이 비슷해질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진보신당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들 내부에서 ‘도로민노당’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진보대통합이 이루어지면 과거처럼 친북행위가 당내에서 횡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물론 반대편은 그것은 친북이 아니라 대북교류의 일환이며 넓게 보아 통일운동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만).

진보신당이 불안해하는 또 하나는 새로운 진보정당(진보대통합당)이 1950년대 이후 유럽의 진보정당들이 스탈린주의와 확실하게 선을 그음으로써 집권했던 경험을 보아서라도 국민을 향해 북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소위 ‘묻지마 진보대통합’이 그런 기회를 영원히 날려버릴 것이란 것입니다.

댓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정리해야겠습니다. 결론은 진보신당이 진보대통합의 전제조건으로 북에 대한 입장을 명시하자고 하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사상검열이 결코 아니란 것입니다. 최소한 그들 스스로에게는 진보정당의 생존에 대한 고민이고, 과거의 상처로부터 얻은 역사적 교훈인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종북은 소동일 뿐 존재하지도 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는 민노당이 그냥 통 크게 “그래, 대북문제 정리하자. 우리도 북한식 사회주의체제는 원하지 않는다. 3대세습도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의 인권문제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하자”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걸 위 말처럼 구체적으로 하자는 것도 아니고 두루뭉술하게 언어의 마술을 구사하면 될 것을 말입니다. 이정희 대표도 원래 그러지 않았습니까? 북한 문제에 관해서 놀랄 정도로 전향적인 안을 내놓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결국 이정희 대표도 민노당 내 다수정파의 입장에 눌린 듯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통합의 상대방인 진보신당이 그렇게 원한다면 힘도 더 센 민노당이 걍 들어주면 안 될까요? 아니 그렇잖습니까. 이슬람과 유대교와 기독교가 통합하면서(절대 있을 수 없는 가설이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같은 신을 믿고 있죠) 기독교를 향해 “삼위일체 신앙을 포기해라!” 뭐 그런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암튼^^ 존경하는 블로그계의 대선배님이신 거다란님. 앞으로도 계속 건필하시길~
잔소리가 긴 점 사과드리며, 거다란님의 커다란 이해심을 믿사옵니다. 저도 장기간 블로그 문 닫았다 여는 글이 이런 글이 된 점이 좀 거시기하긴 합니다. 하하.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갖고 횡설수설했다는 생각도 들고요(저는 사실 요즘 민노당도 진보신당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양쪽 모두 접촉도 거의 없고요).   

거다란님은 사실 민주당 지지자에 가까워 보이는데도 민노당과 진보신당에 보여주는 관심과 애정에 감읍하기도 하는 파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