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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신기생뎐의 도가 넘은 집단구타, 너무 살벌하다

신기생뎐이 큰 사고를 쳤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21세기에 멍석말이라니. 이건 해도 너무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 신기생뎐을 치면 멍석말이 설정에 대한 불만들로 뜨겁다. 불만 정도가 아니라 분노에 가깝다.

도대체 왜 이런 설정을 한 것일까?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기생은 일단 여자다. 기생집 부용각의 왕마담 오화란이 소속(?) 기생에게 멍석말이를 지시했다. 당연히 여자를 멍석에 말아 몽둥이로 두드려 패라는 얘기다. 그럼 누가 패는가?  

신체도 건강한 남자다. 이걸 보는 순간, 갑자기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과 당혹감,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들이닥쳤다. 그야말로 들이닥친 것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한 명의 기생이 마당으로 끌려나와 멍석말이를 당한 다음 부용각에서 쫓겨난다.

허허, 그것 참. 하긴 그렇다. 신기생뎐의 주특기가 예고가 없다는 것이다. 일전에도 그랬다. 아다모가 단사란에게 이별을 통고할 때도 그랬다. 매우 일방적인 이 행동은 시청자들에게조차 아무런 언질 없이 진행됐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일본으로 훌쩍 떠나 온천욕 잘하고 와서는 “이제 우리 그만 만나자. 너를 만난 건 그저 장난이었어. 어쩌나 보려고” 하고 말하는 아다모를 과연 시청자들 중 누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이거 뭐야. 자다가 홍두깨도 아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한 명의 기생이 손님 중 누군가와 몰래 데이트를 즐겼다는 이유로 멍석말이를 당한다. 내참,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일단 이 장면을 검찰이나 경찰이 보았다면, 즉각 인지수사에 들어가야 할 판이다.  

집단폭행 장면을 보고도 모른 체 한다면 틀림없는 직무유기다. 그런데 왜 이런 장면이 등장하는 것일까? 신기생뎐의 작가에게 혹시 윤리적 감성이나 정서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것이 나의 지나친 상상력 과잉인 것일까.  

아버지가 딸을 기생집에 팔아넘기는 장면도 그렇다. 이건 지나쳐도 정말 지나쳤다. 딸을 가진 아버지의 입장에서 정말 보기에 곤욕스러운 장면이었다. 마치 내가 저지르는 짓인 양 온몸이 오글거리며 부끄러웠다. “아니, 내가 왜? 내가 뭣 때문에?” 그렇다. 내가 무슨 죄 졌나?  

그렇지만 옆에 있는 마누라 보기도 미안하고, 만화에 빠져있는 딸에게도 민망했다. 젠장…. 하긴 뭐 굳이 말하자면 팔아넘긴 건 아니다. 그저 부탁한 거다. “너도 우리 집 사정 잘 알잖니. 네가 이해해라.” 그 한마디에 착한 단사란이 훌쩍거리며 심청의 마음으로 떠난 거다. 기생집으로.  

하지만 이건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이었다. 어제 보니 사란이의 계모가 사란이가 기생질해서 벌어다준 돈으로 시장을 엄청 많이 본 모양이다. 입이 헤벌래하니 찢어진 것이 무척 행복한 표정이다. “하이고, 저런 것들도 사람이라고 시장에서 비싸고 맛난 거 사다 먹는 즐거움은 아는 모양이네!”  

애비라는 작자가 기생집으로 떠나는 딸을 배웅하며 슬픈 눈망울로 “가서 건강해야 된다”고 말하는 단철수를 보며 얄궂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건강해야지. 네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그러면 너의 수입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테고, 그건 우리의 불행이지, 암.” 

애비와 애미(비록 피 한 방울 안 섞인 양부와 계모라지만. 단사란은 그래도 갓난아이 때부터 25살이 된 지금까지 단철수를 친아빠로 알고 살았다)가 함께 작당해서 딸을 기생집으로 보냈으니 이건 분명코 집단폭력이요, 사란이가 번 돈을 받아다 쓴다면 기필코 중간착취다.  

여기다 이젠 물리적 폭력까지 등장했다. 폭력의 대상은 연약한 여성이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건장한 남자들이다. 떡대 같은 남자들이 모포로 둘둘 말아 땅바닥에 엎어놓은 여자를 향해 몽둥이로 마구 갈긴다. 자세히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엉덩이도 때리고 등짝도 때리고 무차별이다.  

게다가 폭력을 지시하는 사람이 부용각의 왕마담 오화란 대표다. 이 또한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힘없는 근로자를 구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일전에 모 재벌그룹 2세인지 3세인지가 이른바 매값폭행으로 근로자를 사정없이 구타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혹시 작가가 그 사건을 패러디한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 보석비빔밥 등 작가의 전작들을 빼놓지 않고 보았던 입장에서 작가에게 그만한 사회 비판의식이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뭐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소견이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왜 이런 설정을 느닷없이(!) 집어넣은 것일까. 결론은 소소한 에피소드들의 나열로 편안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작가의 주특기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손자(성이 손이요, 이름이 자다. 오해마시길)의 할머니나 아다모의 할머니가 갑자기 사망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작가는 어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죽음, 인간의 본성에 공존하는 사악함과 선량함, 우연처럼 전개되는 필연적인 운명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집어넣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작들에서도 이런 경향은 늘 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좀 심했던 것 같다. 느닷없는 죽음의 릴레이에 이어 애비가 딸을 기생집에 팔아먹는 것도 그렇지만, 술집 기생이 손님과 전화 좀 하고 따로 몰래 만나 데이트 몇 번 했기로서니 멍석말이를 해서 쫓아낸다는 게 에피소드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쫓아내는 것은 그래도 이해를 할 수 있다고 치자. 물론 이것도 엄격하게 말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생도 엄연히 서비스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라고 봤을 때, 이는 명백한 부당해고다. 아마 쫓겨난 기생은 노동위원회에 권리구제 신청을 하고, 법원에도 해고무효확인소송을 할 준비를 해야 할 듯하다.

그렇지만 폭행이라니. 그것도 멍석말이라는 전근대적 방식을 통한 집단폭행이다. 이는 어떤 경우에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집단적인 린치를 당하는 여성을 앞에 두고도 아무 말 못하는 저 가련한 인생들이라니. 그들에겐 심장도 없는 것일까?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게 곧 냉엄한, 너무나 솔직하고 정확한 우리의 현실이다. 기생이라는 점만 뺀다면, 사실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다만, 매일 당하고 살면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이지만, 모 재벌2세의 맷값폭행에 당한 노동자가 그 한 사람뿐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노동자 외에도 다른 많은 직원들이 비슷한 폭력에 희생되어왔지만, 그들도 부용각의 기생들이나 직원들처럼 아무 말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른 방송사의 드라마 근초고왕에서 반역을 일으킨 계왕의 두 아들이 백제의 수도 한성의 광장에서 참수당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군중들이 떠오른다. 바로 그것이다. 기생 멍석말이나 맷값폭행이나 근초고왕의 공개처형과 똑같은 것이다. 

경고, 혹은 시범케이스. 마음 편하게 보던, 또 그러길 추구하던 드라마 신기생뎐에서 이 시범케이스는 에피소드로서 너무 살벌한 것 아닐까? 충성도 높은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 부탁해본다. 좀 살살해주시면 안 될까요? ㅎㅎ

글고요^^ 기생은 뭐 사람 아녀요? 연애 좀 했다고 매질이라니. 보아하니 부용각 기생들도 하는 짓이 다들 천박한 것이 일반 요정의 작부들과 하나 다를 게 없더구만, 무슨 요정이 아니라고 그러세요? 하긴 나 같은 사람은 돈이 없어 요정 출입도 못해봤지만서도….

아무튼, 기생이면 기생이지 고급기생은 또 뭐냐 그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