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예

짝패, 무서운 음모에도 손가락질 할 수 없는 모정

역전의 여왕이 끝나고 짝패가 시작됐습니다. 본방을 아테나로 하나 드림하이로 하나 고민하다가 짝패로 낙찰 봤습니다. 아무래도 제 취향에 맞을 거 같기도 하고, 처음부터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테나는 너무 엉터리 같고, 드림하이는 너무 멀다는 생각도 작용했습니다.  

출발은 좋아보였습니다. 아직 주인공들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들에 앞서 미리 등장한 조연들이 탄탄했습니다. 우선 이문식을 보는 것만 해도 즐거운 일입니다. 윤유선도 있군요. 이런 류의 사극들은 늘 그렇지만, 초반에 뭔가 비밀스럽게 음모가 꾸며지는 장면들에 긴장하게 되고 그게 마지막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짝패도 역시 그랬습니다. 두 여자가 아이를 낳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비도 억수같이 퍼붓고 천둥도 칩니다. 저는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쇠돌이의 말에 의하면 용마가 두 마리 울었다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땐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지금 퍼뜩 생각이 났습니다. 그게 바로 짝패의 탄생을 알리는 소리란 걸.


이 드라마는 뒤바뀐 두 아이의 운명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두 아이가 다 뒤바뀐 운명 속에서도 영웅의 기개를 떨친다, 뭐 그런 이야기 같습니다. 그래서 짝패고, 비가 오고 천둥이 치던 날 용마 두 마리가 울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짝패란 무슨 뜻일까요? 잠깐 검색을 해보기로 하지요.

볼 거 없군요. 그냥 '짝을 이룬 패', 이렇습니다. 어쨌든 죽이 척척 잘 맞는, 요즘 말로 하자면 명콤비, 파트너, 짝쿵 정도 되겠습니다. 막순이에 의해 운명을 빼앗긴 사실은 귀동이여야 할 천둥이 입장에선 막순이와 귀동이가 철천지원수라고 해야겠지만, 참으로 묘한 운명입니다. 

사실은 천둥이여야 할 귀동이와 짝패가 되고,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라고 생각하는(아마도 주변에서 막순이가 '네 생모다' 하고 일러주었겠지요) 막순이를 언젠가는 만나러 갈 테지만, 자기를 마치 사신이라도 만난 듯 진저리를 칠 텐데 그 모양에 또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요?

기구한 운명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서울에서 종살이를 하던 막순이는 주인집 대감의 승은을 입습니다. 아, 이런 경우는 승은이라 하지 않지요. 이런 말 썼다가 들통 나면 상감모독죄로 능지처참 당하고 구족이 멸하게 됩니다. 상감모독죄는 한때 맹위를 떨쳤던 긴급조치9호나 국가보안법보다 더 무서웠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막순이와 대감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습니다. 결국 대감의 아이를 가졌겠지요. 그런데 함께 종살이를 하며 막순이를 사모하던(종놈 주제에 무슨 사모? 그러시진 마세요. 종놈도 인간의 감정이 있답니다) 쇠돌이가 이를 눈치 채고 배가 산 만해진 막순이를 끌고 탈출하게 됩니다.

늘 그렇듯이 이들의 뒤를 쫓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마님의 지령을 받은 다른 종놈들입니다. 그들은 칼을 들고 막순이를 죽이고자 파견된, 말하자면 터미네이터들입니다. 그때 말로는 추쇄꾼 또는 추노꾼이라고 합니다. 막순이를 좋아하는 쇠돌이는 필사적으로 이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용마고을의 거지굴로 숨어들게 되지요.


거기서 아들을 낳은 겁니다. 거지굴의 대장, 그때 말로는 꼭지딴이라나요? 장꼭지로 분한 이문식이 어쨌든 대장 폼을 잡으며 아이의 이름을 지어줍니다. 마침 아이를 낳을 때 천둥이 심하게 쳤으므로 천둥이라 해라,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운명의 장난입니까?

같은 시각 김진사 댁 마님도 아들을 낳았는데, 그만 산통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를 낳자마자 저세상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울고, 젖 줄 유모는 찾기 어렵고, 김진사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때 거지굴에서 아이를 낳은 여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진사. 즉시 데려오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막순이는 김진사 댁으로 불려갑니다. 말이 불려간 것이지 끌려갔다고 해야 맞겠지요. 잠시 도련님에게 젖만 먹여주면 보내준다고 하더니만, 절대 보내선 안 된다는 김진사의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망연자실 어린 도령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막순이, 눈가에 섬광처럼 묘한 결심이 스쳐갑니다.

그때 저는 직감했습니다. 아이를 바꾸려는 것이구나. 그때 밖에서는 쇠돌이가 담장 밑을 어슬렁거리며 막순이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그녀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어? 내가 잘못 봤나? 분명 그녀의 눈가에 아이를 바꾸겠다는 결심이 어른거리는 걸 봤는데?

초승달은 보름달로 바뀌고, 막순이는 아주 자연스럽고 행복한 표정으로 김진사의 아들 귀동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입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김진사, 당근 므훗하겠지요. 순간, 저는 또다시 혼돈에 빠졌습니다. 어? 막순이가 벌써 애를 바꿔치기 했나?

물론 잠시 후 모든 의문은 풀렸습니다. 젖을 먹지 못해 울다 지친 천둥이를 안고 쇠돌이가 김진사 댁 담장 밑에 나타난 것입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막순이, 다급하게 뛰어나갑니다. 아, 아직 바꿔치기 하진 않았군요. 슬픈 모자 상봉입니다. 이때 막순이가 쇠돌이에게 결심을 말합니다.

"오라버니. 저 결심했어요. 아이를 바꾸겠어요. 도와주세요."


물론 이들의 천인공노할 음모는 성공합니다. 성공하지 않으면 드라마가 될 수가 없으니 당근 성공하겠지요. 김진사에게도 있는 붉은 반점이 귀동이의 목 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거나 아이를 바꿔치기 하는 순간 김진사네 종놈에게 들킬 뻔 했다거나 하는 것들은 어디까지나 먼 미래의 스토리를 위한 준비 장치일 뿐입니다.

어쨌든 막순이의 엄청난 계획은 성공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순이가 저지르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지켜보면서도 결코 그녀를 욕할 수가 없더군요. 그녀가 주인집 대감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것은,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몸을 바친 것은, 좋아서 한 짓이 아닙니다. 

그녀는 종입니다. 노비. 남자 종을 노, 여자 종을 비라 한다지요? 종은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도 있고, 그러다 싫증나면 팔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얼마얼마에 거래가 가능한 상품입니다. 종이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도 종이 됩니다. 아무리 애비가 양반이라도, 혹은 어미가 양반이라도 한쪽이 종이면 종입니다. 

그녀가 대감에게 몸을 바친 것은 일종의 상납이었습니다. 이른바 면천을 위한. 그런 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란 걸 잘 알면서도 지독한 절망은 지푸라기 같은 희망에도 몸을 맡기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런 그녀의 꿈은 쇠돌이의 말처럼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평생 추쇄꾼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습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든 종살이를 벗어야겠다는 욕망에 모든 것을 맡기던 그녀가, 그 순간 그런 결심을 안 한다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막순이가 자기 아이에 대한 어떤 배려도 받지 못한 채 김진사 댁에 유모로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그랬거든요. "그냥 애를 확 바꿔버려."

결국 그런 스토리가 이 드라마의 핵심이었지만, 저는 어쨌든 지금도 막순이에게 돌을 던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첫 회에서 본 막순이는 참 심성이 고운 여자였습니다. 단지 종살이를 벗어나야겠다는 욕망이 드러날 때 두 눈이 이글거리기는 했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착한 여자였습니다.

만약 돌을 던져야 한다면, 그 돌은 김진사를 향해야 합니다. 아무리 제 자식이 중하기로 막순이를 천둥이에게 돌려보내지 않고 귀동이에게만 젖을 먹이도록 강요하는 것은 참으로 금수나 할 짓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순이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죽했으면!' 하는 동정심이 워낙 크다는 것뿐.   

※ 애를 바꾸려면 빨리 바꾸든지 보름이나 지나서 바꾸는 건 난센스란 지적에 대해선 나도 그리 생각하고 맞는 말이지만, 드라마에서 그런 걸 따지는 건 사족이라고 생각한다. "주인댁에서 내가 우리 아이를 포기한 걸로 생각하게 만들려 한 것"이라는 막순이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