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여왕. 역시 슬픈 드라마였네요. 저는 역전의 여왕 포스팅 할 때마다 늘 슬픈 드라마란 점을 꼭 강조하곤 했었는데요. 코믹멜로(제가 장르 구분에 무지해 이렇게 분류해도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를 두고 왜 슬프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어쨌든 슬펐거든요.

이 드라마의 주요 메뉴가 무엇이었지요? 물론 남녀 간의 사랑도 있고 샐러리맨들의 애환도 있고 또 무엇도 있지만, 그러나 알게 모르게 배경에 깔려있던 것은 이른바 명퇴(혹은 희망퇴직)라고 불리는 정리해고, 기러기 아빠, 부조리한 직장문화 이런 것들이었어요. 모두 구질구질한 것들이죠.

부조리한 직장문화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황태희는 연봉 6천만 원 이상을 받는 기획개발실 팀장이었죠. 그런 그녀가 하루아침에 과장으로 좌천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요. 바로 결혼 때문이었어요. 황태희가 대단한 실력파란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죠. 그녀를 자른 한상무조차도. 

▲ 황태희. 누구를 위해, 또는 누구 때문에 울고 있는 걸까요? 분명한 건 봉준수 때문은 아니죠.


한상무는 4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인데도 아직 미혼이에요. 그녀는 일과 사랑 혹은 가족, 이 두 가지를 다 가지는 것은 난센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왜 그런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는지는 미지수지만, 아마도 사랑에 실패한 쓰디쓴 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아예 사랑할 줄 모르거나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황태희를 그렇게 무 자르듯 자를 수 있는 건가요? 안 되죠. 이런 일은 그 이후에도 계속 일어나는데요. 황태희가 물러난 자리에 그 밑에 부하로 있던 백여진이 팀장으로 앉았어요. 그리고 나중엔 백여진 밑에 있던 봉준수가 팀장이 되고 백여진은 다시 과장으로 강등되었거든요. 

이걸 좋게 해석하면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팀장을 하는 아주 민주적인 제도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다들 아시다시피 그런 게 아니지요. 오로지 인사권자인 사장이나 상무의 독단에 의해 자리가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일 뿐. 이런 걸 정상적인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 비정상도 어디까지나 엄연한 현실.  

어떻게든 줄을 잘 서서 살아남으려는 치열한 노력들, 그것도 현실이고요. 이런 문화 속에서 상급자의, 인사권을 가진 자의 독단과 전횡이 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하죠. 그들은 직원들을 자기 집 종처럼 부리기도 하는데요. 백여진 팀장이 이사할 때 팀원들이 앞 다퉈 짐을 나르던 장면 기억나시죠? 

이런 장면은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얼마 전, 국무총리 후보로 인사청문회에 나섰던 김태호 씨도 경남도지사 시절 도청 직원을 사적으로 가정부나 식모처럼 부렸다 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죠. 결국 그는 그 때문에 국무총리 문턱에서 낙마하고 말았었지요.

정리해고도 이 드라마의 주요 메뉴였지요. 이 이야긴 길게 하고 싶지 않군요. 정리해고로 인해 자살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혹시 알고들 계신지 모르겠네요. 쌍용차에서 정리해고 된 분들 중에 1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이 중에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가족도 있어 슬픔이 더 컸지요. 

우리 마을에도 한 분이 작년에 목숨을 끊었는데요. 이분은 대림차에 20년 넘게 근무하다 소위 희망퇴직이란 걸 당하고 나서 살 길이 막막해지자 자살을 선택했다고 하더군요. 그렇군요. 흔히들 정리해고를 희망퇴직, 명예퇴직 이런 좋은 말로 부르더군요. 참 듣기 좋은 말이네요. 희망. 명예. 

퀸즈에서 희망퇴직을 종용받은 사람들 중에는 목영대 부장도 있었지요. 그는 기러기 아빠였어요. 그런 그가 희망퇴직 바람이 부는 와중에 간암 선고를 받았어요. 6개월 시한부 인생이 된 거죠. 그는 미국에 가 있는 아이들과 아내의 생활비와 학비를 보내기 위해 절대 희망퇴직 당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그에게 간암 선고와 함께 내려진 또 하나의 죽음의 선고, 그것은 바로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정리해고였어요. 당연히 그는 절망했겠죠. 그때 사실 구용식 본부장이 특별기획팀이란 걸 만들어 거기서 6개월간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를 주겠다는 구상을 한 것은 그에겐 구세주를 만난 것과 같은 일이었죠.

▲ 추운 날씨에 현장조사에 열심인 특별기획팀원들. 목부장은 결국 죽었지만, 그의 마지막은 감동이었다.


어쨌든 6개월 시한부 인생이니 어떻게든 회사를 다니다 죽으면 보상금이라도 받아서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겠나, 내가 마지막으로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거 아니겠나, 그런 생각을 한 거죠. 목부장은 결국 오늘 죽고 말았네요. 물론 그는 허망하게 죽은 것은 아니었어요.

구용식 본부장과 특별기획팀은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인간적 신뢰도 쌓을 수 있었죠. 그들은 한때 점심 먹으러 회사에 나온다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젠 진정한 직장인으로 다시 태어났어요. 그들은 승리한 것이에요. 그 승리의 주역 중에 목부장의 역할이 엄청 컸음은 두 말 할 필요가 없고요.

단순히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특별기획팀에서 일하다 죽겠다던 목부장이었지만, 그는 인생의 마지막을 정말 보람차게 장식하고 떠났던 것이에요. 그는 정말 멋진 인생을 살다 갔어요. 모두들 그를 그리워하는 것만 봐도 우린 알 수 있죠. 이쯤에서 목부장님의 명복을 아니 빌어줄 수가 없군요. 잠깐 고인을 위해 묵념~~~

그런데요. 역전의 여왕이 내일이면 끝나는데요. 제가 가장 슬플 것만 같은 일이 무언지 아세요? 다름 아닌 황태희와 봉준수가 다시 합친다, 뭐 그런 쌍투적인 스토리가 되는 거예요. 제가 상투적인이라고 하지 않고 쌍투적인이라고 불만을 표시하는 걸 보면 아시겠죠. 제가 이들의 재결합을 얼마나 반대하는지.

이들을 재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뻔한 건데요. 아이들 때문이죠. "하하하, 애들 때문에라도 얘들은 다시 합칠 수밖에 없어." 자신만만한 봉준수의 어머니가 그 중 한사람이에요. 황태희의 어머니도 별로 내키진 않지만 "애들 때문에 할 수 없지" 이런 태도거든요.

두 번째는요, 아니 이혼녀는 뭐 사람도 아닙니까? 왜 떳떳하게 자기 갈 길을 못 간단 말입니까? 아, 저도 처음엔 봉준수와 황태희의 이혼을 반대했던 1인입니다. 그러나 일단 이혼을 했고, 이혼 이후에 엄청나게 큰 사정변경이 생겼다 이 말입니다. 어쨌든 지금 황태희의 마음속엔 봉준수가 아니라 구용식이 들어있어요.

그런데 다시 합치라고요? 이건 황태희나 봉준수나 구용식이나 모두에게 불행이에요. 이래선 안 되지요. 그러고 황태희가 이혼녀라고 해서 구용식과 결혼 못할 이유가 또 뭐가 있죠? 아, 구용식은 재벌의 아들이고 사장이 될 몸이기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면 안 된다고요? 네, 그게 바로 주장의 요지 같은데요. 

▲ 구용식과 황태희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만약 그런 걸 빌미로 황태희와 구용식을 갈라놓는다면 이 드라마 작가는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만약에 이혼한 봉준수와 백여진이 결혼했다면 어땠을까요? 제가 보기엔 이 장면에선 그렇게 큰 저항이 없었을 것 같아요. 작가도 딱히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했을 거고요.  

일단 내일 지켜보기로 하지요. 구태의연하게 "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어" 하면서 구질구질한 재결합 모드로 가는지, 아니면 당당하게 각자의 마음이 정하는 대로 깔끔 모드로 가는지. 저는 물론 황태희가 어떤 압력이나 구속도 없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자기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거야 뭐 엿장수 마음이라는 말도 있듯이 작가님 마음이겠죠. 어차피 내일 하루뿐이니까. 끝나고 나서 누가 따질 일도 아니고.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