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단사란의 아파트 현관문을 누군가 쾅쾅 두드립니다. 자다 놀란 가족들, 아버지, 엄마와 두 딸이 모두 나왔지만 누구랄 것 없이 모두들 겁을 잔뜩 집어먹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단사란의 아버지는 남잔데도 겁이 무척 많네요. 하긴 뭐 밤중에 그러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저는 이 대목에서 임성한 작가가 과도한 소재를 써서 막장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중간중간에 집어넣는 일종의 극중 장치들은 매우 현실감이 있습니다. 실제 우리네 모습과 흡사한 점이 많다는 거지요.

전작 보석비빔밥에서도 그걸 느꼈지만, 특별히 선한 사람도 없고 특별히 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자기 행동에 대한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만, 선함과 악함 중 어느 한면이 도드라져 보일 뿐입니다. 사실 그리고 우리는 그 도드라져 보이는 부분을 가지고 이런저런 판단을 하는 거지요.


제가 볼 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악한 캐릭터는 바로 금어산의 아내, 금라라의 법적 어머니인 장주희입니다. 그녀는 시부모에 효도하고 딸(양녀)에게도 아주 잘하는 요조숙녀처럼 굴지만 실상 마음속은 질투와 분노, 파괴적 본능으로 가득한 까마득한 동굴입니다.

금라라의 실제 친부모인 금어산의 동생 내외가 보이는 추태를 보고 치가 떨리는 막장이라고 분노하는 분들이 많은가 봅니다만,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종류의 인간들을 우리는 심삼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 보면 오히려 같은 시간대의 욕망의 불꽃이 비교도 할 수 없는 막장에다 이해하기 힘든 인간형들이 많지요.

만약 우리나라가 방송의 임의적인 연령제한(저는 이걸 통행금지와 비슷하게 봅니다만) 같은 것이 없는 나라라고 치고 욕망의 불꽃과 신기생뎐 둘 중에 어느 프로를 자기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냐 하고 묻는다면, 당근 욕망의 불꽃이 금지대상입니다. 그 전에 스스로 무서워서 보지도 않겠지만.

아무튼, 전작인 보석비빔밥에서도 그랬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인간의 이중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그걸 드러내 보여주는 방법이 바로 상상신이나 독백신입니다.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면서도 행동은 반듯하게 체면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바로 우리들의 실제 모습과 똑같지 않나요?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모두들 "나는 그런 사람이 결코 아니야!" 하고 나온다면 저만 그렇고 그런 사람 되는 것이로군요. 하하. 저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신기생뎐에서 최고로 악한 캐릭터는 처음부터 장주희라고 판단했습니다만, 많은 분들은 단사란의 계모를 놓고 막장 논란을 시작하시더군요.

그러니까 대부분의 연예뉴스들도 마찬가집니다만, 신기생뎐의 막장코드를 단사란의 계모 지화자와 금라라의 생모 신효리에게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두 사람은 하는 짓이 꼴사납고 밉상이긴 해도 장주희에 비하면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드러나게 될 장주희가 저지른 천인공노할 악행에 비하면 이들이 보여주는 단순하고 이기적인 행동들은 그저 봐줄 만한 귀여운 밉상들일 뿐이라는 거지요. 물론 그들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들도 돈이 최고의 권력인 자본주의 사회의 한 조각들일 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 사회의 반영일 뿐입니다.

▲ 지화자와 단철수(단사란의 양부)/ 손자

 
다시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려야 할 듯싶군요. 아시다시피 손자는 단사란의 의붓동생 단공주의 친구입니다. 후배인가요? 어쨌든 문을 두드린 것은 손자였습니다. 이름이 왜 손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할머니의 손자라서 손자인가? 그 손자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겁니다.

잠을 자다 조용히 숨을 거두셨으니 세상에 이런 복도 없습니다. 사람이 숨을 놓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하긴 저도 모릅니다. 아직 죽어보지 않았으니. 그러나 손자에겐 청천벽력입니다. 자다가 홍두깨란 말이 손자에게 덮친거지요.

이 드라마에서 손자의 할머니가 등장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손자의 할머니가 등장했고, 등장하자마자 돌아가셨을까?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손자의 할머니가 등장한 것은 아니고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만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죠. 

모두들 겁이 나서 문도 열어주지 못하던 단사란네 가족들, 손자가 울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자 마치 내가 당한 일이라도 되는 양 함께 슬퍼합니다. 그중에서도 단사란의 계모(단공주의 엄마)가 가장 동작이 빠르네요. 119에 전화하라 시키고는 얼른 안방으로 뛰어들어가 옷을 입고 나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지화자도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지화자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한답니다. 우선 하는 짓이 재수가 없어보이잖습니까? 저도 다른 연예뉴스들과 똑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의 차원은 좀 다른 것입니다. 

지화자의 행동이 막장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는 어쩌면 아주 지극히 당연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라는 거죠. 우리 스스로의 모습도 사실 돌아보면 지화자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깨닫지 못할 뿐이죠. 심지어는 도둑조차도 정의를 말할 땐 목에 힘을 들어가거든요.

원래 이 포스팅은 오전에 발행할 예정이었지만, 오후 5시 24분부터 다시 쓰고 있습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외근을 다녀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앞에 무슨 말을 했는지 대부분 까먹었네요. 이거 참… 난감하군요. 그래서 대충 여기서 마무리지어야 할 거 같습니다.

어쨌든 제목처럼 이글의 주제는 "왜 갑자기 손자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거야 돌아가실 나이가 되셨으니 돌아가신 것일 테지만, 아무튼 갑자기 출연도 안 하시던 손자의 할머니를 돌아가시게 한 것은 이 드라마의 작가지요. 무언가 의도가 있는….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아,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거군요. 이제 생각났습니다. 작가는 모든 사람들은 이중성을 갖고 있다, 그걸 말하고 싶은 겁니다. 선과 악의 경계에서 상황에 따라 이리 넘어오기도 하고 저리 넘어가기도 하는 겁니다. 완전히 선한 사람도 없고 완전히 악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죠.

지화자도 그렇습니다. 그녀가 비록 돈에 한이 맺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일념에 지배당하고 있지만, 심성마저 악한 것은 아닙니다. 비록 '의붓딸이 부잣집에 시집가서 그 덕 좀 봐야겠다' 이런 욕심으로 이런저런 계략을 꾸미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녀의 심성은 본디 착하다는 것입니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겠죠. 임성한 작가는 그런 면에서 친절한 점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여러 장치나 계기를 통해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금강산의 아내요 금라라의 생모인 신효리도 맹하고 욕심만 가득찬 심술쟁이 같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착한 심성은 남아있습니다.

▲ 단사란의 생모 한순덕/ 금어산의 처 장주희. 이 둘 사이에 금어산도 모르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에 비해서 장주희는 현모양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가슴속에 비수를 품은 무서운 여자란 사실을 이미 우리는 1회때부터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성형외과에 몰래 다니고 있었다는 사실, 그걸 통해서 그녀의 이중적 면모를 미리 보여주었던 것이죠. 그녀는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그 가면 때문에 나중에 금시조 부부와 금어산이 받을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요. 또 그녀 때문에 친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았을 단사란과 엉뚱한 아이를 딸로 알고 거의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먼발치에서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한순덕의 한많은 삶은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요? 

저는 어제 부용각의 마담 오화란이 "어떤 사람은요. 성형을 해서 얼굴은 젊은 사람인데 목소리가 노인인 경우가 있어요. 아유 참." 그때 제가 옆에 있던 아내에게 물어보았죠. "어, 목소리는 거 성형이 안 되나?" "당연히 안 되지." 아마도 오화란이 한 말은 옆에 있던 장주희더러 들으라고 한 소리였겠지요. 

그렇다면 장주희가 동화에 할머니로 변장하고 빨간모자를 잡아먹으려고 산장에 나타난 늑대와 같다, 뭐 그런 말씀? 어쨌거나 손자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유는 "지화자도 알고보면 나쁜 사람이 아니다!"는 것을 일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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