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대물>이 갈수록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네요. 이번 7회는 대물 아니라 소물도 못 되는 모습만 보여준 실망 그 자체였어요. 작가 교체에 이은 피디의 하차가 원인이었을까요?
그렇겠죠. 아무리 그렇지만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메가폰을 잡은 피디와 갑자기 선장이 된 피디가 차이가 없다면 그게 이상한 거죠. 만약 누가 피디가 되든 다른 점이 없다면 개나 소나 피디 해도 된다는 말씀이 되는데…, 이거 말이 지나쳤나요?
ABG닐슨미디어리서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주 28.3%였던 시청률이 25.5%로 떨어졌다고 하는군요. 3% 하락이면 상당히 큰 폭의 하락세라고 봐야죠. 아무튼 그거야 앞으로 또 잘하면 올라갈 수도 있는 거니까. 여론조사라는 게 또 그렇고 그런 거기도 하고 말이죠.
도덕선생 같은 교과서 연설에 웬 감동?
많은 네티즌들이, 연예신문사들이 어제의 장면 중에서 서혜림의 연설을 가장 감동 깊었던 장면으로 꼽았는데요. 저는 이것도 글쎄요, 제가 이상한 걸까요? 저는 영 감동이 안 오더라고요. 아, 물론 저도 서혜림이 눈물을 글썽이며 연설을 하니까 눈물이 돌긴 했지요.
저도 사람인데 여자가 우는데 눈물이 안 돌 수 있나요? 그러나 그뿐이었어요. 대체 서혜림이 하고자 하는 얘기가 뭐야?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정치인들이 잘못하면 회초리를 들어달라고? 물론 모두 옳은 말이죠. 그러나 그건 서혜림이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에요.
안 그런가요? 조배호든 강태산이든 토론회에 나온다면 그런 말 정도는 할 수 있지요. 아니 해야 하는 말이고 말고요. 아마 현실 정치인 중에 이명박 대통령,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 또 이정희, 조승수, 그 누구라도 그 상황에선 그렇게 말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그 ‘백 번 지당하신 말씀’을 두고 토론회 도중에 패널들이 기립박수를 치고 하는 게 저로선 도무지 마땅치 않거든요. 드라마라 그렇다고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하죠.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고요. 우선 서혜림의 연설(패널토론자가 연설?)을 뜯어보기로 하죠.
“우리 정치 바꿔야 합니다. 정치인들부터 몸을 낮추고 겸허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이 지당하신 말씀을 누가 반대할 수 있을까요? 다음….
“당 지도부 눈치를 보며 개인 소신을 굽힐 수밖에 없고, … 세대교체를 한다고 혈세로 지은 신성한 국회가 날치기 현장이 되는 비극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옳으신 말씀이죠. 대한민국 국회의원 중에 어떤 누구도 당 지도부 눈치 보며 자기 소신을 굽혔다고 말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당근 여기에 대해서도 어떤 안티도 있을 수 없지요.
“감히 고백합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국민 여러분을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섬기지 않고 오만불손한 데는 수수방관만 한 국민 여러분의 책임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라의 주인이며 정치인을 키워주신 부모이십니다. 사랑의 회초리를 들어주세요. 이 나라 정치를 바로잡아주십시오.”
짝짝짝~ 네, 딱 여기까집니다. 그저 박수 한 번 정도 받으면 그만인 지극히 옳으신 말씀일 뿐입니다. 토론회에서 주어진 질문에 답은 안 하고 엉뚱하게 이런 연설 몇 마디 했다고 패널들이 일어나 박수치고, 온 국민이 감동 받아 눈물 흘렸다니 참으로 참담합니다. 이 정도에도 감동해야 되는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일까요?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에도 감동 받는 한국 정치의 비상식적인 현실의 반영?
세상에 나라 걱정 안 하는 정치인 보셨습니까? 이명박 대통령도 자나깨나 나라 걱정일 것입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마찬가집니다. 오죽했으면 어제 나라를 위해 부자감세 철회하는 법안 만들겠다고 했다가 다시 오늘 부자감세 철회를 철회하는 해프닝까지 만들었겠습니까.
이거 너무 나가면 저도 어떻게 주체 못할 상황이 만들어질지도 모르니까 이 정도로 하고요. 아무튼 그렇잖아요. 서혜림의 그 감동적인 연설 중에 대체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 뭐가 있었을까요? 이 정도 말장난으로 시청자들이 감동받길 기대하고 시나리오를 짰다면 이건 정말 모독이죠.
이로써 제 의심은 거의 굳어지고 말았답니다. 결국 권력형 외압 때문에 애초 기획했던 시나리오가 결국 산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마 원래의 피디가 이 드라마를 계속했다면 이렇게 허약하고 순정적인 서혜림을 만들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는데요.
정치권 세대교체를 논하는 토론회에 나와 이 따위 교과서 낭독하는 것 같은 연설 따위를 만드는 코미디를 연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저의 확고해진 생각이에요. 2부였던가요?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강태산이 그랬죠. “쥐새끼들이 판치는 들판에선 풍년이 들기를 기대할 수 없다.”
최소한 이런 정도는 아니라도 뭔가 사실적이고, 구체적이고, 가슴을 확 틔워주는 그런 대사가 필요했던 시점 아닌가요? 그런데 뭡니까. 겨우 교과서나 읊조리고 있는 서혜림. 거기에 무슨 큰 감동씩이나 받았다고 기립 박수치는 패널들과 국민들.
세상에 토론회 열다가 단체로 박수치는 장면은 또 처음 보겠네요. 이건 리얼리티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죠. 그 자리엔 상대당 패널도 앉아 있을 텐데. 노회찬이나 유시민이 아무리 촌철살인으로, 유창한 달변으로 감동을 줬다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TV토론회장에서 박수 쳐주는 거 보셨어요?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대물, 진정한 대물의 길 찾아야
뭔가 임팩트가 사라진 대물,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작가도 바뀌고, 피디마저 교체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죠. 그러나 아무리 그렇지만 미리 준비된 기획안이 있을 텐데 이렇게 심하게 일그러진다는 건 좀 거시기하네요.
더 불평하다간 제 속만 버릴 것 같아서 이만 해야겠어요. <대물>, 너무 기대가 컸던 것일까요? 초반에 보여준 임팩트가 너무 거창했던 것일까요? 실망이 너무 크네요. 오늘 밤 한 번 더 기대를 가져보기로 하겠지만, 늘 잘해야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 가끔 실망도 줄 수 있는 거죠.
당론을 따르지 않고 소신을 보여준 서혜림의 태도는 매우 훌륭한 것이었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은데요. 그럴 거면 탈당해서 다른 당 가든지 하라는 싸가지 오재봉 의원의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거든요. 서혜림의 소신이라는 게, 글쎄요, 어디서 나온 소신인지 그게 불투명하거든요.
단지, 여야간 이전투구가 싫어서? 국회의 정기행사처럼 돼버린 패싸움은 분명 지양돼야 하는 게 맞지만, 그러나 자칫 서혜림의 태도는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소지도 다분히 있거든요. 아니면, 서혜림이 너무 눈물만 짜는 통에 그 소신의 출처를 제가 제대로 파악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하여간 이 부분은 기회가 된다면 따로 이야기를 한 번 풀어보기로 하죠. 어쨌거나 오늘 밤에는 어젯밤처럼 실망만 안겨주는 <대물>이 아니었음 하는 바람 간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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