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지난주에 동이가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해 죽게 했다는 유력한 증험들인 인형과 여흥 민씨 패찰을 희빈 장씨에게 돌려준 것을 두고 혹시 꼼수가 아닐까 의심했었는데요. 그 유력한 증험들을 어제밤 다시 희빈이 동이에게 돌려주었군요.

물론 돌려준 이유는 동이가 내민 화해의 손을 거부한다는 의사표시인 것이죠. 한번 해보자 뭐 그런 선전포고인 셈인데, 저로서는 참으로 황망할 뿐입니다. 만약 제가 장희빈이었다면 그걸 돌려주기보다 불에 태워 증거를 인멸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장희빈도 꽤나 고지식한 사람인 모양이에요. 아니, 정직한 사람일까요? 마치 서부극의 건맨처럼 정정당하게 한번 승부를 내 보겠다? 그래서 동이를 찾아가 자신의 목을 겨눌 유력한 증험을 넘겨주었군요. 그리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동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목을 겨눌 증험을 돌려주는 장희빈, 이해가 안 돼

"너를 내 앞에 무릎 꿇리겠다. 그림자는 내가 아니라 너라는 것을 보여주겠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자기와 오라비를 죽게 만들고 나아가 세자의 안위마저 위태롭게 만들게 됩니다. 결국 나중에 왕이 된 세자(경종)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장희빈과 장희재가 죽고 없어진 마당에 세자를 보호할 세력이 미약했기 때문이란 해석도 가능한 것이지요.

실제 경종은 왕이 되자마자 신하들의 압력에 못이겨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고 심지어 (후에 거두어지긴 했지만) 대리청정까지 맡기게 됩니다. 엄연히 젊은 왕이 있는데 동생에게 대리를 맡긴다? 허수아비 왕이란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연잉군이 임금에 오르고 난 후에 탕평책을 쓴 이유도 끊임없이 나도는 경종독살설에 대한 나름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영조 4년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은 영조가 노론 일변도에서 소론 온건파와 나아가 남인까지 껴안는 정책을 취하도록 만들었지요.

그러나 과거에 입시한 선비들이 괴답안지를 제출해 영조의 경종독살설을 들추어 비난하는 사건이 있자 격노한 영조는 탕평책을 폐하고 다시 노론 일변도 정책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영조에게 그의 형인 경종의 죽음에 얽힌 논란은 두고두고 골칫거리였을 터입니다.

그런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며 연잉군과 세자의 우애를 본다는 것은 실로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작자는 일부러 그리 만든 것일까요? 참 얄궂기도 합니다. 동이는 인현왕후가 죽자 얼마 지나지 않아 숙종에게 장희빈을 고발했다고 합니다.

"전하. 희빈이 중전마마를 저주하기 위해 인형과 왕비마마의 패찰을 만들어 해괴한 짓을 하고 무당을 궐에 불러들여 굿을 벌였다 하옵니다."

'숙종은 이 말을 믿었을까? 그저 투기를 늘 가까이 의복에 달고 살 법한 후궁의 말 한마디에 세자의 모후요 한때 왕비의 자리에 있었던 희빈에게 사약을 내린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아니면, 희빈이 동이에게 돌려준 인형과 여흥 민씨 패찰 그리고 무당의 자백 같은 것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일까?' 

장희빈보다 더 무서운 동이, 이미 대세는 끝났다 

드라마는 동이파가 장희빈파를 제거할 모든, 확고한, 완벽한 증험을 쥐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지만, 실제 당시 역사에서도 그랬던 것인지는 전혀 알려진 게 없습니다. 다만, 숙종이 숙빈 최씨의 말을 듣고 희빈을 의심하고 내쳤다고만 돼 있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진실성 여부를 떠나 무언가 장희빈을 제거할 준비들이 있었겠지요. 드라마에서는 그 일을 서용기와 차천수, 감찰부 궁녀들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론의 편에 서서 드라마 동이를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희빈과 소론, 남인들이 억울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장희빈은 큰 실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페어플레이 정신이 투철하기로 자기 목을 겨눌 확실한 증험을 동이의 손에 다시 쥐어주다니요.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언제부터 장희빈이 그렇게 정직하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즐기는 사람이었습니까.

저주의 인형과 죽은 왕비의 패찰을 동이에게 도로 돌려주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아무 반응이 없는 장희재도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주의 인형을 화해의 손길이라며 장희빈에게 내어주는 동이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걸 다시 돌려주는 장희빈과 무반응 장희재는 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날 잡아 잡수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게다가 저는 매우 큰 배신감에 빠졌습니다. 아니 죽은 왕비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으로 간주될지도 모를 저주의 인형이 무슨 장난감입니까? 아니, 진짜로 장난감이었던 모양이지요? 그냥 재미로 희빈과 동이가 둘이서 서로 한 번씩 가지고 놀아본.  

나중에 동이가 숙종에게 희빈의 비행을 고변할 때 이 인형과 패찰을 내놓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죠. 거기에 희빈이나 취선당 나인들의 지문이 묻어있는 것도 아닐 테고. 혹 모르겠어요. 동이가 또 어떤 영험한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그걸 밝혀낼 지도…. 

또는 이 문제의 인형과 패찰은 이것으로 영원히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냥 하나의 에피소드만 제공한 걸로 만족하면서. 그럼 우리는 언제 그런 인형 따위가 있었냐며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들겠죠. 그러나 어쨌거나, 이후에 어떤 결론이 나든, 저는 장희빈이 참 멍청하단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떻든 드라마상에서 그 인형은 장희빈의 범행을 입증할 유력한 증거물이거든요. 자기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고 벌을 받을 것이 아니라면 그런 불길한 증험들은 재빨리 불태워 없애버리는 게 상책 아닌가요? 아니, 그런게 아니라고요? 원래 장희빈이 그렇게 정정당당한 사람이었다고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정정당당 장희빈 혹은 멍청한 장희빈?

제가 생각할 때도 우리가 알고 있는 장희빈은 많은 경우 왜곡된 측면이 많아 보입니다. 오히려 동이가 더 지독했을 수도 있어요. 그녀는 천민에서 정1품 빈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잖아요. 게다가 자기 아들을 왕의 자리에까지 앉혔죠. 이에 반해 장희빈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부잣집 딸로 편하게 살았던 여자죠.

아마도 그녀의 집안은 재벌가로 정치계에 돈을 대고 세력 꽤나 쓰는 그런 집안이었던 모양입니다. 숙종시대라면 이미 상권을 장악한 중인들이 상당한 세력을 떨치고 있던 시대였지요. 그나저나 거듭 죄송합니다. 예측이 빗나갔습니다. 희빈 손에 들어간 인형으로 인해 희빈이 궁지에 몰릴 거라는 예상.

그러나 인형을 다시 동이에게 돌려준 것은 명백한 실수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 대목에서 멍청한 또는 정정당한 장희빈을 위해 축배를 들어야 할지 위로의 잔을 들어야 할지 헷갈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불태워버리고 말죠. 

네? 제가 정정당당하지 못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죠. 정정당당 장희빈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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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