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구일중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구마준이 자기아들이 아니란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도둑질은 해도 씨도둑은 못한다'는 옛말을 빌어오지 않더라도 구일중은 구마준이 자기 아들이 아님을 알 수 있었을 것라고 생각합니다. 남자들이 다 바보는 아니거든요.

게다가 구일중은 서인숙과 한승재의 행적을 다 보고 있었을 겁니다. 자기와 서인숙의 당시 관계에 대해서도 물론 기억하고 있었을 테죠. 그러니 서인숙이 임신했다고 했을 때 이미 구일중은 낌새를 눈치 챘을 겁니다. "아니 이 무슨 일이야?" 하고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구일중처럼 예민한 감각을 지닌 사람은 순간적으로 한승재에게 의심의 눈길을 돌렸을 겁니다. 한승재가 서인숙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첫회부터 우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서인숙이 한승재를 안으면서 이렇게 말했죠. "사랑하는 여자를 친구에게 뺏긴 그 심정, 누구보다 내가 알아."


구일중이 참았던 것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들인데도 구일중은 마준에게 정을 주지 못햇습니다. 혹자들은 그런 구일중은 보고 나쁜 아버지라느니 냉혹한 사람이라느니 하며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습니까? 어떤 사람이, 어떤 남자가 자기 아내가 남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걸 예뻐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떤 혹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구일중이 서인숙과 한승재가 간통하여 낳은 아이가 마준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야말로 가증스럽지 아니한가." 여기에 대해 구일중은 마지막회에서 자기의 입장을 진술했습니다. 그는 사랑도 없이 결혼한 아내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참았던 것입니다.

그는 14년 동안이나 자기 아내와 한승재가 은밀히 만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구일중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내도 한승재도 구마준도 내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탁구에게 유독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고 나중에 회사까지 물려주려고 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이라면 그렇게 하시지 않겠습니까? 저라도 당연히 그렇게 합니다. 거성의 지분이 승계된 내용을 보면 대충 이렇습니다. 김탁구 42%(그의 생모 김미순이 준 3.5% 포함), 구마준 15.8%. 보니 딱 그렇습니다. 구일중의 지분은 모두 김탁구에게 상속됐습니다. 

서인숙의 지분은 모두 구마준에게 상속됐습니다. 서인숙의 지분이란 사실상 서인숙과 한승재의 공동지분입니다. 서인숙이 거성의 어떤 이사로부터 주식을 매입할 때 한승재가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주식이 김미순에게 담보로 잡혀 빼앗길 뻔 했을 때도 한승재가 깡패들을 동원해 찾아왔습니다.

구자경의 승리? 여성의 승리? 천만에 말씀

그러므로 구마준은 한승재와 서인숙의 유일무이한 상속자가 된 셈입니다. 그러니 구마준이 끝끝내 한승재를 아버지라 인정하지도 부르지도 않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그렇게 자존심을 내세우려면 15.8%를 상속받아선 안되는 겁니다.

아무튼, 구일중과 서인숙의 지분은 그렇게 두 남자에게로 갔습니다. 두 남자.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두 여자는 없습니다. 누구를 말하는 거냐고요? 물론 그 두 여자란 구자경과 구자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두 여자는 단 한 푼의 지분도 양도받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자경이 대표가 되었으니 된 거 아니냐고요? 해피한 엔딩 아니냐고요? 그래서 마침내 구자경의, 여성의 승리였다고요? 천만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자경이 대표가 된 것은 김탁구의 배려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 구마준이 동조했던 것이고요. 그렇습니다. 여전히 거성의 주인은 김탁구고 구마준입니다.

구자경은 그저 바지사장일 뿐입니다. 지분 하나 없는 사장이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건 현실입니다. 김탁구가 자기 지분을 자경과 자림에게 나누어줄 수도 있지 않냐고 반문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많이 다릅니다.


보통의 사람은 그렇게 선뜻 자기 걸 떼어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그걸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구일중과 서인숙입니다만, 그들은 각각 자기 아들을 선택했습니다. 구자경이 자기를 대표에 앉힌 두 동생들을 향해 "너희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며 감동의 핀잔을 할 때 아마도 마준이 이렇게 말했지요.

"그걸 할 수 있는 건 오직 우리들 뿐이니까."

탁구와 마준을 이어줄 끈은 구자경, 구자림 자매

듣기엔 매우 감동적인 말이었습니다만, 그러나 뒤집어 들으니 매우 섬뜩한 말입니다. "넌 우리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야." 이렇게 들을 수도 있는 말이지요. 그러나 어떻든 구자경이 대표가 된 것은 매우 좋은 일이고 다행한 일입니다. 구자경과 자림 자매는 김탁구와 구마준을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왜냐하면 자경과 자림은 김탁구의 아버지인 구일중의 딸이면서 동시에 구마준의 어머니인 서인숙의 딸이기도 하니까요. 탁구와 마준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지만 자경과 자림은 탁구도 동생이고 마준이도 동생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 자매야말로 탁구와 마준의 평화를 위해 중요한 인물들인 셈이지요. 

무엇보다 탁구의 마음이 중요하긴 합니다. 마준이 마지막에 외국으로 떠나겠다면서 탁구에게 말했죠. "난 네 동생이 아니야. 우린 형제가 아니라구." 그러자 탁구는 웃으며 자꾸 농담하지 말라는 식으로 너스레를 떨며 그럽니다. "자식, 누가 뭐래도 넌 내 동생이야. 그리고 이 형은 동생이 어려울 때 보살펴주기 위해 있는 것이고." 

서인숙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평정을 찾고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평화가 온 것이죠. 하지만 이 평화의 중심에, 이 평화를 만들어낸 핵심에 누가 있을까요? 김탁구의 변함없는 넓은 마음? 구마준의 회개? 김미순의 용서? 아닙니다. 이 모든 평화의 공로는 구일중에게 있습니다. 

그가 만약 처음부터 서인숙과 한승재를 용서하지 않았다면, 구마준이 자기 아들이 아님을 알면서도 모든 것을 덮어두고 비밀에 부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평화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자기 어머니의 죽음이 서인숙과 한승재 탓이었단 사실만 몰랐다면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가려 했을 것입니다. 

구일중이야말로 진정한 남자며 대인배

"나는 모든 것을 덮어두려고 했어. 14년 동안이나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보면서도 나는 참았어. 왜? 사랑도 없는 남편을 만나 고통 받는 내 아내를 위해서, 그리고 평생 곁을 지켜준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내 어머니는 안 돼. 그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 


그러나 역시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승재와 서인숙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을 품어주진 못해도 단죄하진 않겠다고 했습니다. 한승재가 철장에 갇힌 것은 순전히 그가 구일중의 호의를 무시하고 최후의 도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감옥에서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우는 아버지의 모습은 참으로 뭉클하더군요.  

구일중은 대인배였던 것입니다. 그는 모두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스스로 참기 어려운 고통을 참았던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저 같으면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그럼 저는 소인배가 되는 것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아니 모든 남자들은 구일중처럼 인내하지 못합니다.

몇 번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구일중처럼 할 수 있을까? 아내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을까? 결론은 "나는 절대 그럴 수 없어!"였습니다. 애석하지만 그게 현실이고 그게 저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일중. 당신은 진정한 대인배요. 모두의 행복을 위해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스스로 참을 줄 아는 그대야말로 진정한 남자요." 

김탁구. 시청률 50% 괜히 넘은 게 아닙니다. 정말 훌륭한 드라마였습니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못내 아쉽습니다. 아마도 여운이 꽤나 길게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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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