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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동이' 지진희가 펼치는 왕 연기, 가장 왕답다

왕이라고 꼭 근엄하고 이상한 어투를 썼으리란 법이 있을까?  

저는 요즘 드라마 동이를 보면서 지진희야말로 가장 왕다운 왕을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왕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어쩐지 지진희가 보여주는 숙종이야말로 가장 실제에 가까운 왕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왕은 만인지상입니다. 누구도 왕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왕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에 관해서는 반드시 중신들과 의논을 거친 후에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불문율입니다. 내명부에 관해서도 왕은 관여할 수 없습니다.

조선은 어찌 보면 신권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당파싸움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그만큼 신권이 강했기 때문이란 역설을 증명하는 말입니다. 왕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면 파당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영조의 탕탕평평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은 역시 왕입니다. 왕은 무치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왕에게 거칠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왕이 어떤 특별한 어법에 얽매였을 리 없다는 추론도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껏 보아왔던 왕의 말투는 너무나 상투적이고 획일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사랑스런  왕의 부인들과 나누는 대화도 상투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전, 어찌 생각하시오?" "희빈, 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이오?" 얼마나 느끼하고 비현실적입니까? 아무리 왕이라지만 이래 가지고서야 어디 인생사는 맛이 나겠습니까? 


그보다는 "옥정아, 어디 보자, 아이고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대체 어떤 놈 때문이냐, 내 혼내 주마" 라든지, "동이야, 내 진짜 판관 나린 줄 알았지? 하하, 다 너를 놀려주려고 그런 것이란다. 재미있지 않니?" 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다정하고 현실적입니까? 

저는 지진희의 왕 노릇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 왕이라면 저랬을 거야. 왕이 굳이 이상한 어투에 짓눌려 살 필요는 하나도 없었을 거야. 신하들이 왕 앞에서 차려야 할 격식은 있겠지만, 왕까지 그래야 할 필요는 없었을 테지. 그랬다간 제 명에 살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므로 어제 장옥정 앞에서 보여준 동이를 걱정하는 모습도 정말 얼마나 자연스러운 왕의 모습이었던가 말입니다. "아, 이거 참 큰일이란 말이야. 걱정이 아니 될 수가 없어. 동이 걔가 말이야, 감찰궁녀가 됐거든. 그럼 곧 내가 판관 나리가 아니라 왕인 걸 알게 될 텐데 말이지." 

동이가 왕이 판관 나리가 아니라 왕이어서 섭섭하게 생각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든, 아니면 왕이 왕이어서 예전처럼 편하게 대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든, 그런 건 제 알 바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지진희가 굴어대는 왕 노릇이 사실은 가장 그럴 듯한 왕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런 왕이 정겨워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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