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이야기

시골마당에서 여는 신선한 선거대책회의

농촌주민들이 직접 만든 후보의 선거운동, 어떻게 할까?

저는 지금 마산 진전면의 산골마을에 와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특별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주민들이 직접 추대한 주민후보가 이번 6·2 지방선거에 출마했기 때문입니다. 마산
삼진·구산 지역의 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강신억 후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강신억 후보는 삼진지역(진동, 진전, 진북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더불어사는내고장운동본부(약칭 '더불사')>의 본부장입니다. 

마산 진전면 대정리. 강신억 후보 선대본 회의가 열리는 미천마을로 가다 빛깔이 너무 고와 한 컷.


더불사는 이제 창립한지 갓 1년이 된 단체입니다. 그러나 이 단체는 어떤 단체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조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전면 레미콘 공장, 진북면 주강공단, 쓰레기 매립장 등 평화로운 농촌마을에 공해성 공단이나 유해시설을 설치하려는 마산시의 의도에 맞서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맞서 싸우면서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더불사이기 때문입니다. 


수의사 출신의 농부가 데모꾼을 거쳐 시의원이 되려는 까닭은?

그리고 또 더불사는 자기 마을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 이익단체가 아닙니다. 구산면 주민들이 수정만 매립지 문제로 몸살을 앓자 그쪽 마을에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단체이기도 합니다. 부패한 관료사회와 자기 배 불리기에만 급급한 기업의 결탁으로부터 피해 받는 모든 사람들은 한편이라는 생각으로 고통을 함께 나누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 더불사요 그 회원들입니다.

수의사 출신의 농부 강신억 본부장은 이미 70을 바라보는 나이입니다. 사실 저는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고, 70이나 되신 분이 무슨 영광을 보려고 나오셨을까?" 그러나 그런 생각은 더불사 총회에서 한 그분의 몇 마디 연설을 듣는 순간 접어야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시청과 기업들의 횡포에 마냥 투쟁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직접 시의원도 되고 시장도 돼야 되겠더라."

구산삼진지역 4개면 청년회 축구대회에서 참가 선수로부터 막걸리를 받는 모습


강신억 본부장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왜 시의원이 되려고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우리 주민들이 더 이상 데모 같은 거 그만 하고 않고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왜 우리를 이토록 피곤하게 괴롭히는가. 내가 나가서 여러분들 데모 좀 안 하고 살 수 있도록 만들겠다." 거기에 참석하신 어느 할머니도 그러시더군요. "우리가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가만 내비리만 도."


글쎄 이건 참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냥 가만 내버려 두라는 게 그분들의 요구였던 것입니다.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마을에 왜 레미콘이니, 주강공장이니, 쓰레기 매립장이니 하는 걸 만들어 사람을 괴롭히느냐는 것입니다. 뭘 잘해 줄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살던 대로 내버려두면 된다는 어느 할머니의 발언(!)이 제겐 실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시골집 마당에서 여는 신선한 선거대책회의, 유쾌한 선대본부장의 감동 선거운동

하긴 공기 좋은 농촌마을에 독가스를 내뿜는 공해공장과 쓰레기 매립장을 짓겠다고 하는 것이 농촌마을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요. 다 도시인들의 편리와 기업들의 이윤과 표가 많은 도회지 사람들이 눈치를 보아야 하는 선출직 시장과 시의원들 때문입니다. 인구가 적은 농촌마을의 민심이 그들에게 보일 리도 없습니다. 아무튼 저는 농촌의 민심이 직접 추대한 강신억 본부장을 보기 위해 진동면 그의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진전면 미천마을에서 선거대책본부 회의 모습


그러나 그는 사무실에 있지 않았습니다. 선거대책본부 회의를 하기 위해 진전에서도 깊숙한 산골마을 미천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미천마을로 들어갔더니 마침 강신억 후보 선대위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골마을 어느 집 마당에 둘러 앉아 있었는데, 저는 이런 선거대책회의를 예전에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보기 힘든 참으로 진귀한 광경이었습니다. 

사회를 보고 있는 사람은 경남대 안차수 교수였습니다. 그는 매우 젊고 유머가 넘치는 교수 같지 않은 교수라고 합니다. 그와 실제로 대화를 몇 번 해본 사람이라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정말 격의 없는 교수였습니다.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을 법한 권위나 체면 따위는 아예 안드로메다에 이주 보낸 듯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매우 매력적이고 유쾌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아마도 강신억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가 봅니다. 그러므로 저는 순간 그런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강신억 후보도 매우 훌륭하지만, 저렇게 유쾌한 분이 선대본부장을 맡고 있으니 안 될 일도 되겠군." 하하, 좀 난센스 같은 말이긴 합니다만, 재치 넘치는 안 교수의 유머들이 생각나서 저도 한 번 재미를 떨어봤습니다.

안 될 일도 될 것 같은 아름다운 광경들

아무튼, 이토록 정겨운 선거대책회의를 본 일이 있으십니까? 이렇게 선거운동 하면 정말 재미도 있고 밥맛도 좋아질 것 같지 않습니까? 딱딱한 책상보다 이렇게 시원한 자연 속에서 흙냄새, 풀냄새 맡아가면서, 그러다 저편 서녘하늘을 붉은색으로 수놓는 저녁노을도 보아가면서 '당선'을 논의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요? 실제로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매우 행복해보였습니다.


강신억 후보의 가슴에 "주민이 추대한 후보" 문구가 선명하다.


그러나 세상에, 이 회의가 끝나고 진전의 어느 한우소고기 전문점으로 식사를 하러 갔지 뭡니까. 갈비탕을 한그릇씩 먹었겠지요, 물론 소주와 맥주도 몇 병씩 들어 오고요. 진전마을의 소고기 식당들이 요즘 유명하다고 하더니만, 진짜 벅적벅적 하더군요. 저는 당연히 밥은 그냥 공짜로 주는 거다,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런데 돈을 만 원씩 거두지 뭡니까. 20명 쯤 되는 참석자들이 모두 돈을 만 원씩 내더군요. 


그리하여 '농촌주민들이 직접 만든 주민후보는 어떻게 선거운동을 하는지' 취재하러 갔던 저도 만 원을 각출당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여기 선거대책위원들은 밥 먹을 때도 이렇게 밥값을 따로 각출하나 보네. 야유, 밥 정도는 그냥 사주면 안 될까?" 덕분에 저도 계획에 없던 만 원을 내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참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선대본부장님도 참 유쾌한 분이고, 선대위원들도 저토록 자발적인 열의들이 대단하신 걸 보고 앞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더 하면 이렇습니다. "안 될 일도 되겠네!" 사람들의 표정은 무척 밝았습니다. 그들은 거꾸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 될 일이 아니에요. 이미 되는 일을 뛰어다니면서 확인시키는 게 우리 일이죠. 무소속이라고 얕보다간 큰 코 다친다는 걸 이번에 알 게 될 거예요."

"주민들이 직접 만든 후보의 힘이 어떤 건지 똑똑히 보게 될 거라 그 말이죠."